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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신화. 천지개벽 또는천지창조. 읽기쓰기

여자의 동굴과 남자의 나무.
"하늘:땅, 남자:여자, 나무:굴, 좆:씹"(p.14)

천지개벽과 천지창조
"언제부터 천지창조라는 말이 사용되었을까? 중국을 비롯해서 본래의 한자문화권에서 천지창조라는 말은 그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뚜렷한 역사적 정황과 더불어 그 말은 새로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다. 그 정황은 말할 것도 없이 중국에 기독교가 전래되고 성경이 번역되면서부터이다. 동양에서는 하늘과 땅이 서로 붙어 있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서 서로 떨어져 우주가 이루어졌다는 소위 '천지개벽'을 믿어 왔다. 따라서 동양에서는 고래로 천지개벽형 신화는 있었지만, 천지창조형 신화는 없었다."(p.41)

천지창조,라는 단어의 사용이 기독교의 전래와 성경의 번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납득할 수 있음. 그러나 천지개벽형 신화의 예는? 중국에서 반고의 시신에서 비롯한 자연생태계의 생성, 같은 화소로 구성된 인도의 푸르샤, 그 외에 어떤 예가 있을까? ㅡㅡ 그리스신화에서 티탄족이 카오스로부터 세상을 분리해냈다는 이야기도 같은 구조가 아닌가? 여와가 딘흙으로 인간을 창조했단 이야기는 바빌로니아나 유대교의 창조신화와 너무 유사하고.

동서양의 신화를 천지개벽 또는 창조라는 기준으로 나누기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다만 용어의 사용으로 보았을 때, 천지창조 단어가 한자문화권에 처음 나타난 시기를 정확히 찾아보는 작업은 의미가 있을지도. 

나경수, 마한신화, 민속원, 2009. 


선릉역 납치사건. 손바닥글

5월 16일의 꿈을 기록한 내용이다. 육도윤회에 대한 생각과 전날 저녁 선릉역 지하철에서 연인과 인사했던 기억이 합쳐져 생겨난 이야기 같다. 영원히 멈추지 않는 고통의 열차에 대해서 다시 써보고 싶다. 

연인과 함께 지하철 선릉역에서 분당선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로에 죄수들을 싣고 가는 기차 차량이 지나갔다. 기차는 역내에서 속도를 늦추었지만 완전히 정차하지는 않았다. 

죽은 죄수의 시체가 플랫폼에 던져졌다. 시신은 자루 같은 것에 담겨 있었고 제대로 봉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역무원이 치우러 오기 전에 얼굴을 보았다. 퍼렇게 부풀어오른 시체였다.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보통의 지하철 차량이 역내로 들어왔다. 나는 연인의 손을 놓고 안녕, 인사하고 열차에 탔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흔들리는 좁은 방, 죄수들을 싣고 가는 감금 열차 속이었다. 나의 오른쪽 손톱은 모두 부러져 있었고 온몸은 얻어맞은 듯 아팠다. 침상 같은 것에 가슴이 묶여 있어서 꼼짝할 수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고개를 이리 저리 돌려 내부를 살펴보았다. 내부는 비좁았고 더러웠다. 뚜껑이 잠긴 변기통 같은 구멍 하나가 발치에 있었다. 그 작은 구멍이 밖으로 연결된 유일한 통로였다. 

순간 알게 되었다. 이 열차는 결코 멈추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나는 시체가 되어 열차 밖으로 내던져지기 전까지 계속 이 좁은 공간에서 고통받게 될 것이다. 내가 빠져 나갈 수 있는 길을 한 군데 찾았지만 문을 열 방법은 찾아내지 못했다. 

불면의 밤. 일상잡설

그 일이 있기 전날 밤, 나는 잠을 전혀 자지 않았다. 밤새 어떻게든 끝내야 할 급한 일을 마무리한 뒤, 비몽사몽 흐린 정신으로 오전에는 상담을 했고, 오후에는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도서관에 갔다왔다. 하루종일 제대로 먹은 것이 없었는데 식욕도 없는 날, 저녁으로 볶은 애호박과 요거트를 먹고 일찌감치 침대에 누웠다. 

새벽 한 시가 넘어서 미스터곰의 전화를 받았다. 부고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그리고 장례식장은 목동 홍익병원이라고 했다. 일단 전화를 끊었다. 지도앱을 켜서 분당에서 목동으로 가는 방법을 검색했다. 멀구나 생각하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미스터곰은 아주 빠르게 변명하듯 말했다. 잠 깨워서 미안해, 지금 빈소에 가야 한다는 얘기도 아니고 같이 가자는 말도 아니야, 그냥 지금 너무 힘들어서. 말을 나눌 상대가 필요하긴 나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그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쉬움과 죄책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환하게 웃는 얼굴이 기억에 선한데,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던 느낌이 생생한데,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 역시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오빠, 철 좀 들어,라고 했던가, 언제 철 들래,라고 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술자리 농담으로 너무나 무례한 이야기. 

몇 번을 뒤척이며 돌아 누웠으나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이팠고 현기증이 나고 속이 쓰렸다. 그 상태로 오전을 버텨내야 했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울고 싶은 기분이 들어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무언가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빈소에 도착했을 때 모여있는 사람들은 잉여로운 한량 술꾼들 뿐이었다. 나 역시 그 무리에 속했다. 우리는 얼굴이 벌개지도록 술을 마셨고 눈이 붉어지도록 울었다. 그가 좋아했던 술과 담배를 언급했다. 그와 함께 겪었던 일들을 회상했다. 

우리들 중 누구도 고인의 단점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중 최소한 대여섯 명과 그에 대한 뒷이야기를 했었다. 그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중상모략에 동참했었다. 그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런 취급을 당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다루어져도 좋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너무 늦게 알았다. 

그의 여자친구에게 안부를 묻자 그녀가 도리어 내게 물었다. 정말 죽었나요, 그 사람? 
나는 확신 없이 답했다. 모르겠어요. 아마도. 
죽고 싶어 했어요. 늘 죽음과 맞닿아 있었어요. 잘된 일이에요. 
그분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존중하지 못해도 남겨진 사람은 힘이 없으니까요. 내 몫이 아니니까요. 
남겨진 사람의 몫이 있으니까요. 남아야죠. 자기 몫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고마워요. 노력해볼게요. 
...
운명이라는 건 참 편리해요. 자기가 자기 운명을 짐작하고 그대로 행동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운명을 거스르려 하니까 힘든 거잖아요. 그 사람은 편하겠죠. 죽고 싶고 죽어야 할 때를 선택해서 죽은거니까. 
...
나로 인해 살았고 내 덕에 죽었어요. 삶을 결정하고 죽음을 도왔으니 내 박복한 사주에 가장 큰 일을 끝낸 거겠죠.
그래요 덕분에, 정말 덕분에 갔으니, 그의 삶에 대해서는 충분히 하셨어요. 충분히 했어요. 보내주기만 해요. 

그를 보내는 마지막 의식은 쓸쓸하지 않았다. 한낮부터 우두커니 앉아 자리를 채우고 있어야 겠다고 결심했던 게 부끄러워질 정도로 많은 문상객이 몰려와 빈소를 가득 채워서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친구들은 모두들 사람이 많아 다행이라 했다. 그들 역시 나와 같은 걱정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정말로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한 줄도 쓸 수 없을 것 같다. 그가 죽고 난 뒤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했던 일을 묘사하는 작업이 대체 죽은 이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쓸 수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써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그가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내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불면의 밤이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 지금도, 결국 한숨도 못잤다. 오빠가 남긴 글을 천천히 읽었다. 시리도록 외롭다. 그는 온전히 혼자였다. 시간은 그 사람 편이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그의 외로움에 대해 화를 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문장은 트위터에서 내일 술 한 잔 마시자는 친구의 이야기에 대한 대답이었다. 

내일이 올까? 내일까지 살아봐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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