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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그 마이가든



여행의 목적. 손바닥글

여행지에서는 얼마든지 바보같이 굴어도 좋다. 두리번대며 길을 걷다 결국 길을 잃고, 교통신호를 이해하지 못해 횡단보도 앞에서 망설이고, 처음 보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웃고,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나는 과일을 관찰하다 하나를 고르고, 어린아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다고 감탄해도 괜찮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면 노화의 진행속도가 느려지는 것 같다. 

하지만 여행 중에 겪는 가장 큰 문제는 바보같이 굴어도 괜찮은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 바보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낯선 곳의 말은 알아듣기 어렵고 낯선 사람들의 풍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믿었던 가치관이 흔들리고 그동안 쌓아올린 경계가 무너진다. 어쩌면 그렇게 바보가 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인지도 모른다. 

자식이란. 일상잡설

엄마의 관절과 디스크에 문제가 생겨서 요즘 병원을 오가며 고생 중. 엄마는 나를 향해, 너도 엄마 같이 나중에 고생하지 말고 젊었을 때부터 몸 관리 잘 해, 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을 들은 아빠는, 얘는 할머니 체질이라 골격하고 관절이 튼튼하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엄마가 건강에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고 아빠가 미리부터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하는 의도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분이 딸의 체질이 엄마를 더 닮았는지 아빠의 엄마를 더 닮았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상황은 조금 곤란하다. 엄마는 딸이 엄마를 닮지 무슨 할머니를 닮느냐고 주장했고, 아빠는 여자아이가 친탁을 하고 반대로 남자아이가 외탁하는 경우가 많다고 응수했다. 구체적인 예로 엄마는 나의 피부 색과 민감도가 당신과 흡사하다고 했고, 아빠는 나의 코 형태가 할머니와 흡사하다는 점을 제시한 뒤 내 손목과 발목의 두께가 엄마보다 훨씬 두껍다는 점을 근거로 엄마의 주장을 반박했다.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나는 엄마의 가느다란 체형을 닮고 싶다. ㅠ)

나의 유전자가 엄마와 아빠의 것이 정확히 반반, 일 대 일로 한 쌍을 만들어 이루어졌다는 과학적인 사실을 근거로 두 분의 논쟁에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족의 농담 같은 논쟁을 듣다 보면 자식을 두고 유전적 지분을 주장하고자 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우리의 이기적 유전자가 시킨 일이라면 그 결과물의 모습에서 자신과 가까운 유전적 특징을 찾는 이유도 납득할만 하다. 허나 엄마아빠의 농담 같은 논쟁이 유전자의 명령만은 아니지 않을까, 사회심리적인 면에서도 분석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빠가 이 글을 본다면, 엄마아빠 할 때, 왜 엄마가 먼저 오고 아빠가 뒤에 나오는지, 불만스러운 질문을 던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체질은 엄마가 좋은가 아빠가 좋은가 하는 유년기의 가장 곤란한 질문과는 달리 선호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내가 대답할 필요가 없다. 그저 두 분의 대화를 들으면서 설거지를 하면 되는 일이다. 부모가 서로를 원망하며 자식이 나를 닮지 않고 당신을 닮았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이 나를 그렇게 취급하지 않아 주어 고맙다. 그러니까 아픈 엄마를 대신해 주방으로 고고싱. 

모두가 이젤을 옮긴다.  손바닥글


작년 여름에 일할 때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를 준비했던 적이 있다. 우리 단체에서 활동한 내용을 찍은 사진을 이젤에 얹어서 전시장을 꾸미기로 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 친구들이 미리 와서 많은 일을 도와주었는데 접이식 이젤(그림을 그릴 때 화폭을 올려 놓기 위해 쓰는 일종의 삼각대 같은 것)을 펼쳐서 조립하고 사진액자를 고정하는 일도 봉사자들의 몫이었다.

먼저 이젤을 펼치고 사진을 주제에 따라 적당히 배치한 뒤에 봉사자들은 다른 일을 도우러 갔다. 그런데 다른 일을 하던 봉사자들이 이 전시공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사진의 배치를 바꾸기도 하고 조금 삐뚤게 놓인 이젤의 각도를 돌려놓기도 하면서 이젤을 옮겼다. 봉사자만이 아니라 행사장을 관리하는 직원들도 지나가는 길에 한 번 씩 이젤을 옮겨놓았다. 심지어 행사장을 찾은 어린이나 어른들도 가끔은 이젤을 움직였다. 벽면이나 쇼케이스 안에 고정된 사진이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젤을 건드리면 흔들리기도 하고 삐딱해지도 하는데 꼭 그런 상황이 아닐지라도 사람들은 이젤을 옮기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민주주의 투표제도는 이젤 옮기기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황을 조금 더 낫게 바꾸려는 시도는 그것이 아주 대단한 변화가 아닐지라도, 적어도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젤을 옮긴다면 결국 무언가 변하기는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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