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위(自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혼자 하는 섹스 그리고 나를 위하는 섹스.
그러나 자위행위에는 여러모로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masturbation은 어원은 라틴어 masturbare로 '손으로 더럽히다'라는 뜻이고
성경 속에서 자위는 저주받을만한 행위였다.
- 유다는 오난에게 이르기를 형수에게 장가들어 시동생으로서 할 일을 하여 형의 후손을 남기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고 오난은 형수와 한 자리에 들었을 때 정액을 바닥에 흘려 형에게 후손을 남겨 주지 않으려 하였다. 그가 한 이런 짓은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이었으므로 야훼께서는 그도 죽이셨다. (창세기 38:8-10 공동번역 성서)
가엽게 죽임당한 오난의 이름은 오나니즘(onanism)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독교에서 섹스의 유일한 목적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계명을 위한 것으로
이 목적에 부함하지 않는 '자위는 강간보다 나쁘다'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했다.
종교적 압박에서 벗어난 사회에서도 자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더 많은 것 같다.
자위로 정액이 낭비되기 때문에 키가 크지 않는것은 아닐까 고민하는 남학생도 있고,
자위로 인해 성기 모양이 휘어진 것은 아닐까 추측하는 성인 남성도 있다.
정액의 소모를 막기 위해 사정의 쾌감을 억제해온 습관 때문에
결국 지루증상을 갖게 된 남성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자위에 대해 함부로 말한다.
스스로의 성욕을 절제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 파트너를 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자위를 한다고 말하기도.
개인의 무절제와 무능력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도 자위행위는 공격당한다.
파트너와 함께 하는 섹스가 일종의 대화라고 한다면, 자위행위는 혼잣말이며,
따라서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의 독백은 사회적으로 의미 없는 배설행위라는 것이다.
(이 논리를 따른다면, 떼씹이 사회적으로 가장 의미있는 소통방식일 것이다.)
또한 자위행위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것이라는 생각,
자위에 집착하는 사람은 현실 속의 정상적인 성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생각,
이런 생각은 자위를 즐기는 사람에게 죄책감을 심어준다.
하지만 나는 자위를 즐긴다.
혼자 하는 섹스는 깨끗하고 간편하고 안전하다.
스스로를 위한 섹스는 편안하고 자유롭고 완벽하다.
여성으로서 나에게 자위는 이런 의미도 가지고 있다.
내가 남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섹스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덜 수 있다.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은 채로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사실 남성과 느끼는 오르가즘과 혼자 느끼는 오르가즘은 아주 다른 종류의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고 완전히 홀로 즐거울 수 있다.
내 상상 속에서 무슨 짓이든 해버릴 수 있다.
물론 우리 모두 섹스를 그만두고 자위를 합시다,라고 주장할 마음은 없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방에 처박혀서 자위를 하는 사회가 과연 더 나은 사회일까?
서로에게 피해주지 않는 사회. 관계맺지 않는 사회가 더 좋을까?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다.
그러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회 역시 그리 좋지 않다.
나의 보지는 많은 타인과 관계를 가지고 소통한다.
그 관계와 소통이 의미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의 보지와 소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