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가 되고 싶다. 땅에 뿌리 내리고 단단하게 버티고 서 있는 나무가 되고 싶다. 누구에게도 말 걸지 않고 누구도 괴롭게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누구의 사진도 찍고 싶지 않다. 누구의 슬픔도 기록하고 싶지 않다. 그저 바라보고 싶다.
그 때는 욕망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니콘에프엠투 카메라 외에는 가진 것이 없었지만 가지고 싶은 것은 많았다. 근사한 지프를 사고 싶었고 정원이 있는 집을 가지고 싶었다. 무엇보다 더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싶었다. 돈을 벌고 싶었고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싶었다. 지금 나는 갖고 싶었던 것을 모두 가졌다. 모두 가졌다고 생각했다. 모두 가졌지만 사람의 마음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믿었던 행복의 조건은 거짓이었다.
어린 시절이었다. 서른이 넘은 사람은 모두 아저씨라고 생각하는 그런 나이였다. 세상을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카메라 하나를 들고 집을 뛰쳐나와 세상의 모든 것에 렌즈를 들이대었다. 나의 렌즈 앞에 여인이 나타났다. 보는 순간 내 여자라고 느꼈다. 우리는 아침 해가 밝을 때까지 섹스를 했고 살을 맞대고 잠들었다. 눈을 뜨면 곁에 그녀가 있었다. 나는 셔터를 눌러 그녀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이미지는 거짓이지만 이미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때의 사진을 보면 나는 분명 그녀를 사랑했었다. 하지만 정지된 사진 속에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나를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녀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나에게 먹을 것과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주었다. 나는 그녀의 작은 집 좁은 욕실에서 암실작업을 했다.
“냄새가 지독해.”
그녀는 투정을 부렸다. 투정이 아니었다. 빛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도록 틈새를 틀어막아서 환기가 전혀 되지 않는 욕실에서는 언제나 지독한 현상액 냄새가 났다.
“나중에 큰 집으로 이사가자. 암실도 따로 꾸미고 커다란 스튜디오도 만들고 우리 침실에는 이 방보다 큰 침대를 놓는 거야.”
언제가 될지 모를 기약없는 약속의 말을 하면 그녀는 아이처럼 생긋 웃었다.
“정원이 있었으면 좋겠어. 난 한 번도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거든.”
부끄러운 듯이 그렇게 말했었다.
“마당이 있으면 관리하기 힘들어. 너 정원 손질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나는 그렇게 대꾸했다.
“그러면 손질하지 말고 내버려두면 되지. 그냥 집 앞에 뜰이 있었으면 좋겠어.”
“시골에서 커봐야 알지. 마당은 없는 게 속편하다니까.”
그녀와 나는 베란다도 없는 반지하 단칸방에 나란히 누워서 마당이 있는 집과 없는 집 중 어떤 집이 더 좋은지를 놓고 다투었다. 나는 어렸다. 너무 어려서 내가 가진 행복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우리는 밤새도록 섹스를 했다. 해가 뜰 때 쯤 나란히 누워 잠이 들었다. 반지하 방에는 낮에도 해가 들지 않아서 늦잠을 잘 수 있었다. 한낮에 눈을 뜨면 바로 옆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나보다 더 늦게까지 잠을 잤다. 그러면 나는 카메라를 꺼내서 잠든 그녀의 모습을 담았다. 조명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피곤한 그녀를 깨워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자연광 아래서 반사판을 받치고 그녀를 세워둔 채 셔터를 눌러댔다.
그렇게 작업을 하다보면 그녀가 일을 하러 갈 시간이 되었다. 그녀는 괜찮은 모델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사진작가의 전속모델은 역시 가난했다. 그녀는 주점에서 돈을 벌었다. 그녀가 일하러 가야하는 시간이 되면 나는 언제나 기분이 상했다.
“일찍 들어와.”
“알았어.”
“적당히 하고 일찍 일찍 다니라고.”
잘 갔다와. 그렇게 말했어야 했다. 다시 변명을 하자면 나는 너무 어렸다. 그래서 나의 필름과 인화지를 사기 위해 일하러 가는 그녀에게 잘 갔다오라고 말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돌아오는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어떠한 애정 표현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걸어나가며 손짓을 했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그녀는 나만큼 어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사랑했었다. 사랑했다고 믿고 싶다.
겨울이었다. 내가 찍은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아마도 특별한 손님이었을 누군가에게서 선물받은 그녀의 밍크코트를 팔아서 인사동의 작은 전시장을 빌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 주었다. 기대 이상의 성공이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헐값이지만 절반에 가까운 작품을 팔았다. 일간지의 문화란에 호평의 토막기사도 실렸다. 사진 관련 잡지에 리뷰도 나왔다. 여러 가지 일거리가 들어왔다. 나는 나의 사진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그녀는 전시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너무 불쌍해 보여서 싫어.”
사진 속에서 그녀는 초췌한 맨 얼굴로 지저분한 뒷골목에 서 있었다. 잠자리에서 끌려나와 멍한 얼굴로 화면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친 몸으로 벽에 기대서 추위에 떨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불쌍하게 보였다. 가여움에서 은근하게 성적인 매력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런 그녀를 사랑했다. 웃음을 팔고 몸을 팔아 번 돈으로 무능력한 남자를 부양하는 조건 없는 희생을 원했다. 그녀가 쉴 수 있는 공간을 현상액의 악취로 점령하고 그녀가 잘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아 카메라 앞에 서게 하는 나의 폭력을 남들에게까지 과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독한 자아도취였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했노라고 말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전시가 끝나고 팔리지 않은 사진을 집으로 가져왔다. 정말로 불쌍한 모습이었다. 성적 매력마저 거세되어 연민 외에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지독하게 가학적인 사진이었다. 그녀는 그 사진 속의 자신을 보면서 조금 울었던 것 같다. 확실히 알 수 없다. 나는 그녀의 감정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시 변명하지만 그 때 나는 너무 어렸다. 또 다시 변명한다. 지금의 나는 어렸을 때의 내가 싫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녀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감정에 무관심했던 것처럼 그녀의 행동에도 무관심했다. 몸을 떨거나 춥다고 중얼거리는 이상한 행동도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예전만큼 자주 그녀를 모델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곧바로 돈이 되는 다른 일거리도 끊이지 않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유명한 모델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제대로 된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수 있었다. 바빴다. 그래서 나는 아주 가끔씩 그녀와 함께 거리로 나갔다. 그 때마다 그녀는 조금씩 더 가여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예전처럼 밤새워 섹스를 하지도 않았고 한낮이 되도록 몸을 맞대고 늦잠을 자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늦게까지 초조해하며 그녀의 귀가를 기다리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암실작업을 하던 중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인화지에서 가장 순수한 연민을 보았다. 심장이 멎을 만큼 가여웠다. 갑자기 그녀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사진 속에 있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이 여자는 누구일까?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전신주 아래 웅크리고 앉아있는 이 여인은 누구일까? 내가 사랑했던 그녀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여인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그제서야 그녀를 보았다.
내가 그녀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의 가는 몸은 완전히 무너져있었다. 산산히 부서져서 바람에 날려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부서진 몸뚱이에서 흩날리는 먼지 한 조각이라도 붙잡아 두고 싶었다. 셔터를 누르고 싶은 욕구를 억눌렀다. 죽어가고 있는 나의 여자에게 감히 카메라를 들이댈 수는 없었다. 그 이미지는 지금까지도 내 머리 속에 남아있다.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도록 각인되어 버렸다.
약물중독으로 피폐해진 그녀에게 내가 해 줄수 있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나를 부르지도 않았고 보지도 않는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가 입원시켰다.
방에서 라식스가 나왔다. 이뇨제를 먹기 시작하면 얼굴이 창백해진다. 피곤하고 나른해진다. 아마도 처음에는 다른 여느 모델들이 하듯이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전시를 하고 난 후로는 다른 이유가 더해졌으리라. 그녀는 다른 약을 삼켰고 점점 더 마르고 초췌해졌다. 내가 원하는 모델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 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그녀가 나를 사랑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녀가 나를 사랑했다고 믿고 싶지만 그녀가 선택한 방법이 사랑인지는 언제나 의심해왔다. 그녀를 알지 못하고 그녀의 방법을 믿지 못하는 나에게 그녀를 사랑했노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녀가 죽어가도록 방치했다. 그녀가 죽음의 길을 걷도록 내몰았다.
그녀는 지난 팔년동안 병원에 있었고 지난 겨울에 죽었다.
나는 여자 모델은 찍지 않는다. 메마른 여자는 필름에 담지 않는다. 나는 이미 가장 순수한 연민을 보았다. 그녀 하나로 충분했다.
아직도 그 때의 니콘에프엠투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더 좋은 카메라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멋진 지프와 정원이 있는 집도 가졌다. 많은 돈을 벌어들였고 명성도 얻었다. 가지고 싶었던 것을 모두 가지고 나서야 알았다. 행복에 조건은 없다.
* S의 이야기에서 시작한 것. [롤리팝~]의 한 꼭지로 넣었다가 다시 써봤다. 사진은, S가 도쿄에서 찍은 것, 카메라는 니콘FM2가 아니라고 알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