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a. 카페테리아 마리아, 절제의 끝.

카페테리아 마리아

모카포트에 진한 커피를 끓었어
마리아는 라바짜나 일리 커피를 대접하지
독처럼 진하고 유혹처럼 진한 커피
윽!
너무 진해서 물을 좀 섞어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중간쯤의 무언가를 만들었어
그래도 너무 진해 검은콩 두유를 넣었지
왜 우유를 안 넣었냐 묻는다면 우유가 없어서야
왜 설탕을 안 넣었냐 묻는다면 설탕이 없어서야
그렇다고 소금을 넣진 않는 것이 인지상정!
(사실 맛소금밖에 없거든)
검은콩의 잔향이 느껴지는 카페라테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진한 비린내
카페테리아 마리아에 놀러 오세요
두부시리얼과 말보로 멘솔을 드릴게요

추신 - 화장실에 슬리퍼 없습니다. 양말 벗고 오세요


마리아는 침대에 누워있다. 검고 긴 머리카락이 무심하게 하늘색 침대시트 위로 흩어져있다. 마리아는 온몸을 하늘색 담요로 꼭 감싸고 있지만 비죽하게 발끝은 밖으로 나와있다. 마리아의 발톱은 짙은 보라색으로 칠해져있다. 보라색 에나멜의 광택이 구멍처럼 빛난다. 마리아는 가늘고 긴 눈을 반쯤 뜬 채 세인을 바라보고 있다.

세인은 검정색 스툴 위에 두 발을 모으고 쪼그려 앉아있다. 세인의 밝은 노란색 머리카락이 불꽃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세인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의 두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난 듯 테이블 위에 놓인 담뱃갑을 집어들었다가 다시 밀어놓기를 반복하고 있다. 세인은 다시 자신의 손톱을 들여다보고 다시 담뱃갑을 보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마리아가 침대에서 일어나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세인은 신경질적으로 재떨이를 밀어주었다. 마리아가 세인을 향해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그냥 피지 그래?"

세인은 금연중이다. 정확히 13시간 전에 담배를 끊었다. 지난 8년 동안 충분히 피웠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나보다. 담배를 물고 뜨겁게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들이고 싶다. 세인은 횡설수설 말했다. "오늘 집에 오는 길에 강아지를 도둑맞았어. 범인은 틀림없이 고양이일거야. 그녀석을 잡으러 가야겠지? 응? 그렇지?"

마리아는 세인을 비웃었다. 세인은 초조하게 원룸의 철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피자는 왜 안 오는 거야. 30분만에 배달한다며."

1588-3082.

세인이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녀가 통화버튼을 누르기 전에 좁은 원룸에 날카로운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마리아는 피식 웃으며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껐다. 세인이 현관 문을 열었다. 피자가 왔다.

피자. 우리 모두를 살찌우는 피자. 저 윤기나는 치즈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젖소를 많이 키우는데 젖소가 뀌어대는 방귀가 지구를 둘러싼 막 어딘가에 구멍을 낸다고 하는 멋진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피자는 우주로 연결되는 구멍을 만들어낸다. 피자는 이디오피아에 사는 어린이들에게 간다면 유용하게 쓰일 고열량을 비만한 도시인들에게 제공한다. 심지어 도시에서는 피자를 사러 나갈 필요도 없다. 고열량은 열량이 넘치는 사람에게만 제공되는 것이니 우리로선 에너지를 낭비할 수 없다. 어쨌든 피자가 왔다.

세인은 감자가 올라간 포테이토 피자를 물어뜯었다.

"좀 먹어." 세인이 번들거리는 손가락을 핥으며 마리아에게 말했다.

마리아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마리아는 하루 종일 담배를 피웠고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만 마셨다(설탕을 넣지 않는 이유는 앞에서 설명했듯 설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마리아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담배와 커피(역시 앞에서 설명했듯 일리 또는 라바짜의 커피) 뿐이었다. 마리아의 키는 155센티미터 몸무게는 43킬로그램. 마리아는 군더더기 같은 3킬로그램을 제거하고 싶었다. 숫자 3은 8만큼이나 뚱뚱해보여서 불쾌했다.

"그것뿐이야. 3은 뚱뚱해보여서."

"0이 더 뚱뚱해 보이지 않아?"

마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3이 더 뚱뚱해."

마리아는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마다 세인에게 피자 쿠폰을 넘겼다. 쿠폰에는 원가 몇백원 짜리의 콜라나 맛없는 샐러드 따위를 준다든지, 새로 나온, 그 맛을 짐작할 수 없는, 이름이 복잡한 피자를 조금 싸게 할인해 준다든지 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영리한 세인은 쿠폰이란 미끼가 걸린 낚시바늘을 덥썩 문다. 세인은 덥썩 피자를 문다.

세인이 피자를 먹고 마리아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갑자기 행성 W-38의 외계인이 지구를 파괴해 버렸다. 그들은 지구의 젖소들이 배출한 메탄가스가 자신들의 비정형궤도 우주비행선과 행성 사이의 교신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지구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검은 행성이었고 이 행성의 가치를 생각해볼 필요도 별로 없었다. W-38의 외계인들은 피자를 먹지 않고 커피를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성 W-38에는 산소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런 경고도 통첩도 없이 (또한 양심의 가책도 없이) 지구에 초자기장 빔을 발사했다. 마침 새로 개발한 초자기장빔의 성능을 실험해볼 필요도 있었다.

카페테리아 마리아가 사라졌다. 피자를 먹지 않고 커피를 마시지 않으며 담배도 피우지 않는 W-38의 외계인들은 수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라고 이름 붙인 독특한 수영복이 유행하지도 않았다. 이로써 지구는 영원히 잊혀지고 말았다. 세인과 마리아의 욕구도 사라져버렸다. 그들 모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by 작나무 | 2006/04/20 18:24 | 손바닥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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