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선생님은 보기만해도 알아.

1.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심하게 감기에 걸려서 이비인후과를 찾는데 병원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증상을 완화시킬 감기약을 처방받아야 할 것 같아서 내과로 들어갔다. 늙었지만 단정한 인상의 흰머리 의사선생님은 낡았지만 청결함을 유지하고 있는 책상 너머에서, 나에게 옷을 벗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는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내리면서 흥분하기 시작해서, 차가운 청진기가 가슴에 닿자 그만 젖어버렸다.
"숨 들이쉬고, 내쉬고."
의사선생님의 말에 따라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데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너, 담배 피우니?"
아. 경험이 많은 의사선생님은 숨소리만 듣고도 흡연여부를 아는구나 감탄하며, 이실직고했다.
선생님이 늘어놓는 흡연의 해악에 대한 일장연설을 경청한 뒤에,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옷에서 담배냄새 난다."

2.
우리 아파트 14층에는 한의사와 간호사 부부가 살고 있다.
어느날 아침, 엘레베이터에서 의사선생님과 마주쳤다. 나는 출근길이었고 피곤해서 정신이 없었기에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정도의 인사를 했다. 이웃집 의사선생님은 새삼스럽게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부끄러울만큼 찬찬히 얼굴을 살피더니 이렇게 말했다.
"요즘 술 많이 드시나봐요."
역시 한의학의 신비, 얼굴색만 보고도 몸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거로구나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네!"
의사선생님은 조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침부터 술 냄새 풀풀나네."

3.
의사선생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사선생님이 이해하는 방법을 이해해야 한다.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은 대부분의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의사선생님은 보기만해도 알아. 사람은 보기만하면 안다. 그렇다.
by 작나무 | 2006/05/11 01:15 | 일궈낸글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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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호란 at 2006/05/11 10:29
하하하 ^^ 맞아요ㅡ
의사라서 아는 게 아니고 보면 그냥 아는 거;
Commented by 레비 at 2006/05/12 04:32
이거 좋다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6/05/12 14:10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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