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지도 꺼내놓고 여기저기 뒤져보다가, 지난 여행사진을 들춰보았다.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낯선 거리의 모습, 낯선 나의 모습.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나에게는 거의 맞는다. 기록하지 않은 것은 거의 기억나지 않아서, 전에 했던 이야기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그래도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이야기 내용을 기록해두지 않는 이상 말이다. 나름 장점이라면, 한물간 오래된 농담도 다시 하면 낄낄대고 웃을 수 있다는 점과, 술취한 남자가 군대 이야기를 반복해도 별로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다는 점. ... 그래, 여행지에서의 기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서, 그곳에 다시 가도 새롭게 놀라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구나.
2005년 연초의 베이징에 대해, 남아있는 얼마 안 되는 기록을 보며 기억을 추스르다.
그날, 밤새 맥주를 마시며 유대인 아저씨와 터키의 쿠르드족 탄압에 대한 수다를 떨었는데, 아침까지 잠이 안 와서 첸먼(前門)으로 산책하러 나갔었다. 덜덜 떨면서 어슬렁대고 있는데, 그 새벽에 사람들은 이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한무리의 자전거 물결을 보면서 저렇게 빨리 달리면 춥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지단지아삥(鷄蛋夾餠)은 달걀(鷄蛋)전병에 납작한 곡물(아마도 밀이었을 것이다)튀김을 올리고 샹차이(香菜)와 파(또는 부추) 다진 것을 넣어서 감싼 음식이다. 새벽에만 나오는 노점에서 1위엔(한화 130-150원 사이)에 팔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길거리 천원 토스트에 해당하는 음식인듯 출근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사먹고 있었다. 마침 나도 출출해서 사먹었는데, 한 입 가득 샹차이의 강렬한 향내와 기름냄새가 났다. 어쨌든 끝까지 먹었고, 배고파서 잠이 안 온다고 투덜대다 방으로 들어간 유대인 아저씨를 위해 하나 더 싸달라고 부탁했다.
위의 사진은 지단지아삥을 만드는 과정을 연사로 활영한 것이다. 시진찍어도 될까요? 라고 허락받고 싶었는데 말이 잘 안 통하니 그냥 사진기를 들이대었다. 처음보는 사람에게 무례한 짓은 하고싶지 않아서 좀 망설였으나 주인 아주머니는 흔쾌히 촬영에 임해주셨다. 목까지 치켜올린 패딩조끼의 지퍼를 살짝 내려서 얼굴을 내보여주었고 웃는 표정을 지어주기 까지. 그러나 내가 관심있었던 건 이것을 만드는 과정이었는지 아줌마에 대한 기록은 흔들린 사진 한 장 뿐이다. 그때는 저 만드는 과정이 무척 신기했었다. 배고프고 졸린 새벽에는 오리가 주둥이로 귀를 후벼 주겠노라 나서도 별로 신기해하지 않기 마련인데. 아줌마가 전병을 얇게 돌려펴던 테크닉을 보면서 나도 지단(얇은 달걀부침)을 만들 때 저렇게 해봐야지, 하는 생각도 했었더랬다.
지단~ 하니까 또, 생각난다. 레비양과 중국어 수업을 들으면서, 지단탕, 지아오즈, 차오판, 같은 단어를 성조에 맞춰 연습했던 기억. 2005년 여름, 나는 막 시작한 연애상대 남성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고, 레비는 놀이터에서 만난 남성이 감행했던 막무가내의 감성공격을 귀찮아하는 한편으로 즐기고 있었다. ... 어쨌든 우리는 중국어 단어를 암기하다가 담배를 들고 한강이 내다보이는 옥상으로 올라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지난 기억을 뒤져보면 더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지단에 얽힌 기억은 일단 여기까지. 여행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