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을 자격.

귀여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귀여움이 자신에게는 전혀 매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기도 했다. 귀엽다는 사실만으로 사랑에 빠지다니, 다들 왜 그렇게 겸허한 것일까.
- 에쿠니 가오리, 도쿄타워

병원에서 한참을 웃었던 구절. 귀여운 여자친구와 매력적인 연상의 유부녀를 번갈아 만나고 있는 스무살 소년의 독백이다. 나 역시 스무살 때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도 귀엽다는 사실만으로 사랑에 빠지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자랑스럽지는 않다.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사랑에 빠졌을 때 나는 나에게 관대했고 상대에게 냉정했다. 상대방이 주었던 사랑과 관심 덕분에 나 자신에게 관대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오만한 자신감으로 쌓은 벽은 아무리 허술한 것일지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오만한 성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타고 넘어와줄 사람은 없다. 나는 더 이상 무모하여 용기있는 사랑이 갑자기 나에게 올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런 무모함은 대개 계산된 용기일 때가 많고 그런 사랑은 소유욕으로 충만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스스로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이런 나 이지만, 사랑해줘.'라는 태도는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모했던가. 설령 내가, '그런 당신, 그런 당신이지만, 사랑해요.' 라고 단언할 수 있을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기에,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은 세상의 모든 사랑을 주고받는 일과 같다. 그러니, 사랑에 빠진 자는, 더, 겸허해져야 한다.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해야 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썼다.


사랑받을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 만약 이러한 표현이 참기 어려울 정도로 불쾌하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말해도 된다, -누구나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더욱이 자신이야말로 그렇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빼고-라고. 사랑은 무릎을 꿇고 받아야 할 기적이며, 그것을 받는 이의 입술과 마음에 담아야 할 말은 Domine, non sum dignus '주여, 우리에게 그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해야만 한다. - 옥중기

자, 그러니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딱 하나다. 겸허한 자세로 사랑하자? 그게 되면 사람이니? 장난하니? 꿈꾸니? 소설쓰니?

사랑받을 자격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by 작나무 | 2006/06/01 20:36 | 읽고쓰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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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레비 at 2006/06/02 03:03
난 왜 작나무양 글만 읽으면 팍 하고 오는게 있는걸까. 미술치료고 뭐고 그냥 블로그하는게 나을지도.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6/06/02 23:30
크응 ;ㄱ; 미술치료와 글쓰기치료를 병행하는 한편으로 연애치료도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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