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곤 실레 (Egon Schiele, 1890-1918)
Forest with Sunlit Clearing in the Background (1907)
Sunflower II (1909)
Field of Flowers (1910)
Autumn Tree with Fuchsias (1909)
Autumn Tree in Movement (1912)
Bare Tree behind a Fence (1912)
Autumn Sun I (1912)
Winter Trees (1912)
Little Tree (1912)
Four Trees, oil on canvas (1917)
아르노화랑의 전시회 포스터 (1914) 67x50 cm
(여기 저기 찔려도 쓰러지지 않는 자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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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와 모델의 관계는 언제나 흥미롭다. 직업적인 누드모델이 계약 조건에 따라 일하는 요즘 세상에는 별로 흥미로운 일이 아니지만, 백여년 전에는 그랬다. (그 중에도 구스타프 클림트는 다수의 모델과 난잡한 관계를 가졌음으로 유명하다.) 이곤 실레는 네 살 아래인 누이동생 게르티의 누드를 그렸다고 한다. 누이동생과 오래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운운하는 아침 드라마가 생각나지만, 천재화가의 마음을 우리같은 범인이 어찌 알겠는가.
실레는 많은 드로잉을 남겼다. 자화상을 제외한 대부분은 어린이들의 누드드로잉이다. 하지만 로리타 컴플렉스를 가진 변태였구나 라고 생각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1912년 보수적인 마을 노이렝바흐 주민들은 실레가 어린 소녀들을 유괴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실레는 21일동안이나 유치장에 갖혀있다가 '무죄'로 풀려나왔다. 실레의 모델이 되었던 어린 소녀들은 대부분 고아들이었고 약간의 돈과 빵을 위해 스스로 모델일을 택한 것이다. 가난한 화가가 소녀들에게 충분한 보수를 지급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실레는 그들을 납치하거나 옷을 벗기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수적인 마을사람들은 이 화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했다. 결국 포르노그래피라는 이유로 실레의 그림이 불태워졌다. 얼마나 지랄맞은 이야기인가.
결국 실레는 시골에서 대도시 빈으로 돌아온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포르노그라피 소동으로 실레는 더욱 유명해졌다. (그러나 실레는 자신의 작품이 포르노그라피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여튼 실레는 예술가협회라든지 하는 단체에서 활동을 했고 개인전이 열렸으며 유명세를 몰아갔다. 그리고 1915년 모델이었던 발리 노이질과 헤어지고 곱게 자란 중산층 처녀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한다.
실레는 클림트의 소개로 발리 노이질을 만나게 되었는데 발리 노이질은 실레를 따라다니며 계속 모델이 되어주었다. 그녀는 모델이었을뿐 아니라 헌신적인 연인이자 심부름꾼이었다. 실레가 에디트에게 쓴 청혼의 편지를 전해준 사람도 발리 노이질이었다. 만약 주위의 어떤 여자가 화가(중에도 천재 화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녀를 가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실레는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하고 사흘만에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1차대전이 발발하고 1년이 지났을 때였다. 살벌한 상황에서 실레가 전방에 배치된 것은 아니었다. 실레는 프라하의 군수물자 창고에서 계속 그림을 그렸고 전쟁기념전시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성공은 계속되었다. 전시장에서 실레의 작품은 모두 팔려나갔고 주문이 쇄도했다. 더 이상 담배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하지만 이 성실한 화가의 인생은 황금빛으로 끝나지 않았다.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을의 목숨을 빼앗아간 전염병이 돌았다. 실레의 아이를 가진 에디트는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했다. 28살에 아내를 잃은 실레는 장례식에 많은 꽃을 주문했다. 그리고 사흘 뒤, 1918년 10월 31일에 실레도 같은 병으로 영면했다.
실레는 오스트리아 사람으로 빈 분리파(Secession)의 대표적인 화가이며 지독한 골초였다. 어머니가 보내준 최소한의 생활비로 모두 담배를 사버려서 정작 먹을 것이 없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흡연을 예술성과 연관시킬 필요가 있을때 유용한 선례가 될 것이다.
'알코올과 예술가'라는 책이 있는데 이와 유사하게 '흡연과 예술가'라는 제목의 책을 쓰면 재미있지 않을까? (책표지에 '건강을 해치는 담배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라는 문구를 집어넣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담배는 숭고하다'라는 책이 나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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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다른 칼럼에 연재했던 것을 기초로 썼음.











(여기 저기 찔려도 쓰러지지 않는 자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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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와 모델의 관계는 언제나 흥미롭다. 직업적인 누드모델이 계약 조건에 따라 일하는 요즘 세상에는 별로 흥미로운 일이 아니지만, 백여년 전에는 그랬다. (그 중에도 구스타프 클림트는 다수의 모델과 난잡한 관계를 가졌음으로 유명하다.) 이곤 실레는 네 살 아래인 누이동생 게르티의 누드를 그렸다고 한다. 누이동생과 오래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운운하는 아침 드라마가 생각나지만, 천재화가의 마음을 우리같은 범인이 어찌 알겠는가.
실레는 많은 드로잉을 남겼다. 자화상을 제외한 대부분은 어린이들의 누드드로잉이다. 하지만 로리타 컴플렉스를 가진 변태였구나 라고 생각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1912년 보수적인 마을 노이렝바흐 주민들은 실레가 어린 소녀들을 유괴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실레는 21일동안이나 유치장에 갖혀있다가 '무죄'로 풀려나왔다. 실레의 모델이 되었던 어린 소녀들은 대부분 고아들이었고 약간의 돈과 빵을 위해 스스로 모델일을 택한 것이다. 가난한 화가가 소녀들에게 충분한 보수를 지급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실레는 그들을 납치하거나 옷을 벗기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수적인 마을사람들은 이 화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했다. 결국 포르노그래피라는 이유로 실레의 그림이 불태워졌다. 얼마나 지랄맞은 이야기인가.
결국 실레는 시골에서 대도시 빈으로 돌아온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포르노그라피 소동으로 실레는 더욱 유명해졌다. (그러나 실레는 자신의 작품이 포르노그라피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여튼 실레는 예술가협회라든지 하는 단체에서 활동을 했고 개인전이 열렸으며 유명세를 몰아갔다. 그리고 1915년 모델이었던 발리 노이질과 헤어지고 곱게 자란 중산층 처녀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한다.
실레는 클림트의 소개로 발리 노이질을 만나게 되었는데 발리 노이질은 실레를 따라다니며 계속 모델이 되어주었다. 그녀는 모델이었을뿐 아니라 헌신적인 연인이자 심부름꾼이었다. 실레가 에디트에게 쓴 청혼의 편지를 전해준 사람도 발리 노이질이었다. 만약 주위의 어떤 여자가 화가(중에도 천재 화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녀를 가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실레는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하고 사흘만에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1차대전이 발발하고 1년이 지났을 때였다. 살벌한 상황에서 실레가 전방에 배치된 것은 아니었다. 실레는 프라하의 군수물자 창고에서 계속 그림을 그렸고 전쟁기념전시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성공은 계속되었다. 전시장에서 실레의 작품은 모두 팔려나갔고 주문이 쇄도했다. 더 이상 담배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하지만 이 성실한 화가의 인생은 황금빛으로 끝나지 않았다.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을의 목숨을 빼앗아간 전염병이 돌았다. 실레의 아이를 가진 에디트는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했다. 28살에 아내를 잃은 실레는 장례식에 많은 꽃을 주문했다. 그리고 사흘 뒤, 1918년 10월 31일에 실레도 같은 병으로 영면했다.
실레는 오스트리아 사람으로 빈 분리파(Secession)의 대표적인 화가이며 지독한 골초였다. 어머니가 보내준 최소한의 생활비로 모두 담배를 사버려서 정작 먹을 것이 없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흡연을 예술성과 연관시킬 필요가 있을때 유용한 선례가 될 것이다.
'알코올과 예술가'라는 책이 있는데 이와 유사하게 '흡연과 예술가'라는 제목의 책을 쓰면 재미있지 않을까? (책표지에 '건강을 해치는 담배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라는 문구를 집어넣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담배는 숭고하다'라는 책이 나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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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다른 칼럼에 연재했던 것을 기초로 썼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