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말청초의 위대한 예술가이며 명 황실의 친족이었던 팔대산인이 명조가 망하자 불교에 귀의한 까닭은? 혼란한 속세를 떠나려고? 황족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뭐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팔대산인 평전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오더군. "(만주족의 풍속을 따라) 변발을 하느니 차라리 삭발을 하겠다."

여튼 이런 옛날 이야기를 봐도 (한족) 중국인들이 청조말 근대사를 기술하는 데 부정적인 시선이 있을 거라 생각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화나 소설에서 청황실에 대한 묘사는 다분히 부정적이었다고 보는데. 서구열강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한 무능력함, 아편과 사치와 서구문물로 썩어들어간 부패함 그리고 일본군에 협조해서 만주국이라는 황당한 시츄에이션에 놀아난 멍청한 마지막 황제 부의까지 말야. - 여튼 무인 곽원갑에서는 왕조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으니까, 아님 말구.





여튼. 영화는 여기까지 보여준 뒤에, 30년 전 천진으로 돌아가. 곽원갑은 무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선천적으로 폐가 약해. 아빠가 무술하지 말라고 하지만 어깨너머로 배우고 뭐 그래. 찐순이란 친구가 있는데 얘가 대신 글공부를 하는척해주고 말이지. 그렇게 저렇게 연마하다가 결국 상당한 실력자가 되었나봐. 영화는 다시 1900년으로 이동.

영화는 이따가 이야기하고... 사실, 도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저 뒤에 노란색 채색자기를 보자마자, 이 영화는 이렇게 봐야겠다 싶었거든. 액션영화 중에 젤 괴로운 게 무협영화, 도자기라도 봐야겠다.

잘 보일랑가 모르겠는데, 위의 노랑 접시는 18세기의 징더전(景德鎭,Jingdezhen) 자기. 아래 노랑 접시는 16세기 작품이야. - 징더전, 경덕진은 양쯔강 이남, 그러니까 강남지역의 최대 요지였어. 곽원갑이 활약했던 천진이나 상해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 멀다의 개념은 우리랑 많이 다르자나. -0-;)
여튼 위의 작품부터 이야기해보께. 저런 스타일의 청대 도자를 분채(粉彩)라고 해. 강희제-옹정제-건륭제 대를 맞아서 분채가 더욱 발전했대. 겁내 화려하게 요란하게 분장해서 분채, 가루안료를 이용해서 미묘한 농담의 차이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분채.
아래 작품은 16세기의 것, 명대의 작품이야. 얼핏 보면 비슷한 색감이지만, 이런 자기는 오채(五彩)라고 해. 다섯가지 색을 썼다는 의미인데 꼭 다섯색은 아니고 걍 화려하단 뜻이야. 왜 오방색 이런 말 하자나. 그러니까 명대에 오채에서 발전했던 화려함이 청대에 절정에 이르른 거지.

오채에도 화려한 문양이 들어가지만 문양 내부를 자세히 보면, 단색의 명암에 불과하거든. 코발트 안료로 음영을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색의 변화는 없어. 분채는 훨씬 미묘하지.
더 문양이 화려한 자기랑 비교해보면 쉬울 거 같아. 영화에서 곽원갑이랑 곽원갑네 어무니 사이에 있는 화려한 채색자기도 보여? 요란뻑적지근하지. 완전 화려해.

비슷한 다른 도자기를 볼게. 아래 분채자기 두 점은 모두 18세기 작품이얌. 복숭아 문양 안에서 색깔 변하는 거 말야, 완전 화려한 채색이 돋보이지. 그 아래 작품에서는 아예 산수화를 그렸네... 이거 참. 도자기 표면이 종이도 아니고. 뭐 이렇게까지 화려해야 하는 거야? 그런 생각이 들 정도.





일본은 도자기랑 그림까지 팔아치웠고. 우리는;; 우리는 그때 머했지;;; 갠차나, 그때 못한 교역을 20세기 들어서 열라 해댔고 지금은 수출대국 되었으니까. (어쩌면 18세기가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이 시기 도자 중에 분채를 중요하게 다루는 건 이 때 분채가 개발되었기 때문이야. 분채가 활발하게 제작되었던 18세기에도 다른 작품의 수요가 있었지. 이런 자기 뿐 아니라 단색자기도 있었지. 연지홍이나 노랑이나 파랑의 단색자기도 있었고, 완전 순백자나 청자도 있었고. 한마디로 다양했단 말. (다른 자기는 아래서 좀 더 써볼게)



첫 화면에서 보인 것처럼 당시부터 상해는 교역이 활발했던 국제 도시였어. 커피(카페이-)도 이때쯤에 들어왔나봐. 이때 중국에 유입된 다른 서양과 이국의 문물들이 영화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 좀 더 살펴보면...






여튼.
분채의 탄생도 서양문물의 유입과 관련이 있어. 앞에서 잠깐 말했지만, 유럽인 선교사들이 서양 동판화와 회화작품을 가져오기도 했꼬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거든. 서양화가 중국에 영향을 주게 된 거지. 그 예로 아래 그림을 바바. 이건 홍명제 부인의 초상이얌. 18세기 중순의 작품으로 추정하는데, 저 그림에서 의자와 옷의 천 주름 표현을 봐. 이게 어딜 봐서 전통 중국화의 음영처리냐구. 바닥 장식의 표현도 그래. 평면적인 문양으로 그려져 있지만 원근법을 알고 있는 사람의 처리방식이잖아. 물론 이런 기법은 중국화에서 독자적으로 개발된 것이지만, 서양회화의 영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말이지.

도자기도 다르지 않아. 분채에서 보이는 화려한 표현에서 서양회화의 영향이 보이지. 어떤 자극으로 어떤 표현기법이 발전했다는 단편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냐. 이 시기의 중국 도자기는 "분채 만세~ 모두 다 분채~"하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거든. 앞에도 썼지만, 18세기 중국도자의 발전은 엄청난 것이라서, 어떤 도자가 이 시기를 대표한다고 말하긴 어려울 거야. 다양성. 말야.
그럼 얼마나 다양한 도자기가 있었는지 함 볼까?
다시 영화로 돌아갈게. 앞에 나왔던 꽤 깔쌈한 일본남자애가 결투를 앞두고 곽원갑에게 차를 대접하는 장면이야.


다른 작품을 볼게. 아래 그릇과 접시도 청대의 청화백자 작품이야.


앞에서 분채 이야기했을 때 잠깐 징더전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도 징더진에서 만든 거야. 거기선 조낸 화려한 분채도 굽고 청화백자도 굽고 백자도 굽고 그랬어. 그래서 도자기의 성지라고 하는 곳인데, 지금도 도자기 많이 만든대.


그리고, 완전 깔끔한 단색 자기도 있어. 색이 너무 맑고 곱지. 아흣;


또 이런 자기도 있어. 요변유발항(窯變釉鉢缸)이라구 하는데, 우연의 효과를 노리는 기법이라서 이런 명품이 흔하지 않다고 해. 굉장하지. 대만애들이 중국에서 도망가면서 들고간 작품 중에 하나로 고궁박물원에 있대.

다양한 도자기는 여기까지 보고, 다시 영화로 돌아가볼게.
영화를 보면서 내내 국수주의적 국제협력을 지향하는 중국정부의 입장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어. (청 말의 영웅) 곽원갑=중국이라는 대유법은 뻔하고 말야. 곽원갑은 황비홍처럼 실존했던 걸출한 무인이었다고 하는데 영화에서 개인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었어. 곽원갑이 소수민족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도, 중국정부의 소수민족 끌어안기 정책의 일환으로 보였을 정도. 어쨌든 함 써보면 더 분명하겠지.
"중국은 서양과 일본에 맞서서 싸울 힘이 있었어. 사실 서양애들은 덩치만 컸지 중국이랑 대등하게 싸워보지도 못했고 쌈도 잘 못하더란 말이지. 여튼 중국은 서양하고 열심히 싸워서 거의 이겼는데, 결국엔 일본에 조낸 얻어맞았엉. 근데 중국이 약해서가 아니라 일본이 치사하게 물에 독을 타는 바람에 중독되어서 쓰러진 거라구. 중국은 원래 존나 크고 쎄서 정당하게 싸우면 일본한테 졌을 리가 엄써!" -> 이런 국수주의적 선동을 북치고 박수치고 하면서 열심히 하더라구. 여기까지야 늘 하는 말이니까 그렇다 치고.
서커스장에서 곽원갑이랑 싸우다가 죽을뻔한 덩치 큰 양놈이 자기 목숨을 살려준 곽원갑에게 감사하고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장면도 그렇고, 서사의 시작이자 끝을 장식한 일본무사와의 결투 장면에서 일본인이 의리를 지키는 내용도 그렇고, 이런 부분들은 확실히 국제협력에 대한 대중선동의 냄새가 느껴져. "서양애들도 우리가 잘 해주면 우리 편이 될 꺼여, 일본애들 중에 물에 독을 타는 치사한 색퀴도 있지만 의리를 알고 무사정신을 아는 좋은 넘도 있거등... 외국놈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거등." -> 이런 단순한 스토리로 아주 확실하게 전달이 되더라니까.
어쨌든, 이런 정치선동적인 영화에서 예술(이라봐야 도자기 몇 점)과 문화사 따위를 찾아보는 작나무양의 의도는 뭘까. 이런 헛짓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재미있기를 바래서일까. 글쎄 다시 다양성에 대해서 지껄여볼게.
다양성은 풍성한 문화적 기반의 전제조건인 것 같아. 청 말에 국제교역을 하면서 서양과 외국의 문물이 유입되면서 분채라는 새로운 기법이 발전하게 되지. 이건 수출을 위해 서구적인 미감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만은 아닐거라 생각해. 서양화법의 유입은 중국인들에게 자극이 되었고, 다양한 시각문화의 발전에 기폭제가 되었을 거야. 서양화법의 유입만이 그럴까? 아니, 낯선 인간, 다른 존재를 만나면서 사고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기 때문이겠지.
정치적인 입장에서 나는 국제화와 세계화에 반대하는 입장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전세계에 가해지는 제국주의적인 침탈과 착취에 반대하는 거지. 하지만 앞에서 청대 도자기의 예에서 봤듯이 국제교류는 예술을 발전시키고 문화적인 자극이 되는 게 분명해. 예술과 문화 따위와는 무관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중동애들이 중국이랑 전쟁하믄서 종이 맹그는 기술을 알아간게 유럽까지 전해져서 유럽애들이 종이에 책 찍어냈고 성경책이 보급되고 그러니까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거고. 정치 역사 따위 넘어가고, 앞에서 나온 커피만 해도 그러차나. 아랍권에서 마시던 건데 유럽으로 전해지고 중국으로 전해지고 뭐뭐 그러다 보니 지금 글 씨부리는 작나무도 하루에 커피를 1리터 이상 마시는 카페인 중독자로서 행복하게 살고 있거든. 이런 예는 들다보면 끝도 없겠다. 여튼, 문제는 문명의 전파 과정에 대개 폭력이 개입된다는 거야. 영화 무인 곽원갑은 개인 대 개인의 폭력으로 국가 대 국가의 폭력을 보여주고 있고. 다양성의 문제는 늘 어렵지.
일단은, 영화평이니까 별점을 남길게. ★★☆☆☆ 무협영화에 별 한개 이상 준 건 처음이야.
* 본문에 사용한 작품도판 출처는 ART HISTORIA misoolsa.cyworld.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