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의 여백이 정말 아름답습니까?

1. 여백(餘白)의 미(美)?

여백의 미. 초등학교 미술교과서에 등장한 이후로 고등학교 교과과정까지 내내 따라와서 미술 과목 이론시험의 주관식 답안으로 지겹게 적어냈던 말이다. 하지만 "동양화는 여백이 있어 아름답다"는 점을 배우기는 했으나, "동양화의 여백이 아름다운 이유"에 대해서는 배운 기억이 없다. 어쩌면 아름다움은 배우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른 분들께도 묻고싶다. 동양화의 여백이 정말 아름답습니까?

 



만약 캔버스에 빈틈없이 두텁게 색색의 유화물감으로 다양한 인물 군상을 그린 서양화만을 봐왔던 사람이 얇은 종이나 비단에 단색의 먹으로 간략하게 대나무 한 줄기를 그려 넣은 그림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면, 그가 여백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차라리 미완성인 도안에서와 같은 부족함을 느끼지는 않을까?

2. 모든 동양화는 여백의 미를 가지고 있는가?

또한 동양화의 특징이 여백의 미라고 일반화해 버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대학에 들어와서였다. 청록색의 안료를 이용하여 빼곡하게 산과 나무를 그려 넣고 수면에 일렁이는 물결의 무늬까지 일일이 그려 넣은 고졸(古拙)한 산수화의 경우 여백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여백의 미를 느끼기 어려운 작품 역시 문인화와 마찬가지로 후대까지 전칭작이 제작되어 계승되면서 동양화의 한 계통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3. 여백이 아름다운 동양화 작품. 마원(馬遠)의 <월야상매도(月夜賞梅圖)>

남송(南宋)의 산수화가 마원은 대대로 화원화가를 배출한 직업화가 집안출신이다. 마원과 하규(夏珪)는 남송 산수화를 대표하는 마하파(馬夏派) 산수양식을 완성했다.  <월야상매도>에서 화면이 대각선으로 나뉘어져 경물은 왼편에 배치되어 있는데 마하파 산수의 특징인 변각구도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마하파의 변각구도는 북송(北宋)의 거비(巨碑)파 산수의 구도에서 한 발 나아가 여백의 공간을 확장시켰다. 이성이나 곽희의 작품에서 중경의 안개와 같은 공간 설정이 이제 한 귀를 차지하는 넓은 공간으로 나아갔다.

<월야상매도>에서 언덕 위에 앉아 있는 주인공은 매화가지 너머에 떠 있는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뒤에 소년이 금(琴)을 들고 서있다. 관람자의 시선은 화면 속 인물의 시선을 따라, 힘찬 필치로 그린 매화가지를 따라 대각선으로 이어진다. 대각선 끝에는 보름달이 떠 있고 오른쪽과 화면 상단은 여백으로 처리되어 있다. 보름달을 바라보는 인물의 시선을 따라 관람자의 시선이 향하며, 그림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무한한 공간이 연출된다.

4. 여백이 아름다운 이유 - 생략과 이상화

마원의 작품에서 자연은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표현된다. 화면 중심에 놓인 매화가지와 바위는 짙은 먹색으로 강렬하게 묘사되어 시선을 끈다. 반면 주인공인 인물과 뒤의 동자는 간략한 선으로만 표현되었으며 뒷모습을 제시했을 뿐이라 얼굴표정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산과 절벽은 옅은 먹으로 도안과 같이 평면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산과 바위의 묘사에 성실했던 북송대 거비파 산수와 비교해 보았을 때 커다란 변화라 할 수 있다. 마원은 자연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지 않고 생략함으로써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획득했으며, 먹색이 입혀지지 않은 여백으로 인해 공간은 더욱 확장되었다.

- 정서의 투영과 소통의 장으로서 여백

이상주의적 사실주의 정신에 입각한 생략의 효과로 여백으로 확장된 공간에 서정적인 분위기가 더해졌다. 선종화가 가지고 있던 소략한 여유로움으로 작가의 감정이 발산될 가능성이 확대되었다. 이에 관해 제임스 케힐(Cahill, James)의 설명을 인용한다.

“그는 그림 속에서 자연 자체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그의 정서적 반응의 투영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인간과 세계 사이의 고졸적 대화는 이제는 이 양쪽 모두 다 인간 자신의 명령을 받음으로써 하나의 독백이 되어버렸다. ”

전통적으로 기록으로서의 가치, 대중을 교화하기 위한 수단, 평면을 장식하는 그림 따위의 역할을 해왔던 회화가 부수적인 목적을 너머 개인의 정서를 말하는 작품, 즉 회화를 위한 회화가 되는 과정에서 여백의 효과가 미친 영향이 상당하리라 본다.

또한 여백은 작가의 정서가 투영된 공간일 뿐 아니라 보는 이가 상상으로 그 공간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작가의 사상과 감상자의 시선이 소통하는 공간으로서 여백은 또 다른 의의를 가진다.

5. 매체의 연구 - 삭제할 것.

형식적으로 보았을 때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여백은 대상이 아닌 면의 제시로서 매체의 질감 자체를 전달한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원(元)대에 이르러 사대가(四大家)로 대표되는 문인화가들은 채색 대신 수묵의 표현만을 선택했고 비단 대신 종이를 선택했다. 관직에 봉직할 수 없었던 문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비단에 비해 저렴한 비단을 선택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회화에서 매체의 질감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동양화에 대한 형식적인 분석이 활발하게 연구되지 않아 섣부른 의견일 수 있으나, 마원의 여백이 원 사대가의 매체연구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6. 마원의 <월야상매도>를 통해 본 여백의 의미

남송대의 화가 마원의 <월야상매도는> 변각 구도 양식으로 새로운 공간을 개척했다는 의의를 가진다. 여백은 이상주의적 생략으로 공간을 확장시키며, 그로 인해 획득된 서정성은 작가와 관람자가 소통하는 매개가 된다. 또한 영미 형식주의 이론으로 여백의 의미를 고찰해보았다.

여백의 빈 공간은 사실은 빈 공간이 아니며 채워진 공간도 아니다. 이러한 이중성과 복합성은 공(空) 사상 –또는 태극(太極), 무극(無極)-에서 설명하는 것과 유사점을 가진다. 여백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양의 예술 사상과 종교의 핵심적인 내용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 명가명(名可名) 비상명(非常名)” 노자의 도덕경 첫줄의 이 말은 그대로 여백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여백은 여백이라 설명하는 순간 더 이상 여백이 아니게 된다는 선문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 그림
마원 <월야상매도>, 남송, 비단에 채색, 25.1*26.7㎝,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 참고 문헌
박은화,『중국 회화 감상』, 예경, 2001.
제임스 케힐(Cahill, James), 조선미 역,『중국회화사』, 열화당, 2002.
마이클 설리번(Sullivan, Michael), 한정희, 최성은 역,『중국미술사』, 예경, 2000.

by 작나무 | 2006/07/19 20:24 | 그림과글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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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6/07/1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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