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페니스를 기억해.

나는 남자의 단단한 페니스가 내 몸으로 밀려 들어올 때마다 그것을 저주했다. 모든 섹스는 강간당하는 기분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남자가 가지는 힘과 권력과 성적인 의지를 존중하고 동경하면서, 상대적인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의 흥분한 감탄사는 씨발놈아 그만쑤셔,라는 애원이기도 했고 개자지를 잘라버릴거야, 라는 협박이기도 했다. 나는 굴욕적인 삽입섹스의 시간을 저주했다. 페니스가 단단하고 크고 만족스러운 것일수록 분노와 저주도 더했고 말이다.

하지만 오르가즘의 순간에 저주는 축복과 같은 것으로 바뀌게 된다. 고백하건대 나는 크고 단단하고 위대한 페니스가 일궈주는 그 쾌락을 얻기 위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굴었고 사랑을 팔았으며 진실한 감정을 위장했다. 그리고 나는 단 한번도 개자지를 잘라버리겠다는 식의 위협을 했던 적이 없다. 아아-아, 라는 의미를 상실한 소리를 내질렀을 뿐. 내 경우에 섹스는 굴욕적일수록 자극적이었다. 남자가 강하고 무심할수록 나는 그에게 매달렸다. (이런 쌀쌀맞은 친절함 때문에 여러 남자를 아프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페니스의 발기과정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발기는 성적인 자극으로 인해 성기가 충혈되어 단단해지는 현상에 불과하지만, 인간은 발기한 페니스에 남성성, 힘, 저돌성, 공격적인 의지, 따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지만 페니스는 본래 말랑말랑한 조직인 것이다. 발기하지 않은 보통의 페니스는 부드럽고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조직이다. 말랑말랑한 페니스는 말랑말랑한 보지와 입술과 같은 종류의 세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페니스가 상처받기 쉬운 예민한 곳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연약한 페니스를 나무라거나 외면하는 일이 얼마나 나쁜 폭력이었는지 반성해야겠다. 말랑말랑한 페니스를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by 작나무 | 2006/08/07 02:18 | 일궈낸글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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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6/08/07 07:1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6/08/07 11:33
비공개님: 사실 어떤 권력도 일방적인 건 아닐테니까요.
그나저나, 위에 언급한 말랑말랑한 페니스 이야기는 스티븐 핑커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었습니다. 호호호; 밤에는 어디서 봤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낮에 추가!
Commented by 원뺀 at 2006/08/07 13:20
아침에 여친이 저의 이쁜이(우린 서로의 성기를 '이쁜이'라 부른답니다)를 만지작거렸고, 그것이 발기하는 과정을 보면서 마냥 '신기해'했죠. '여기에 피가 몰려서 그런거라구?' 라고 물으면서 말이죠. 저는 '스트레스로 어깨가 딱딱해지는 현상이랑 같아' 라고 덧붙였습니다...

라는 식의 짧은 덧글을 달기도 쑥스러운데, 작나무님은 어쩜 이리도 솔직하고 힘찬 표현들이 쏟아져 나올까요. 늘 부럽습니다 :)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6/08/07 14:49
스트레스로 어깨가 딱딱해지는 현상이라니 독특합니다. >ㅂ</
Commented by 핏빛고양이 at 2006/08/11 14:58
완전히 딱딱해지지 않는 자갸의 자지를 사랑했었어. 하지만 그건 나를 만나기 전 여친에게 빼줄만큼 빼주고 와서 였던듯-_-; 몸안의 존재감은 충분하면서 거칠게 질벽을 자극하지 않는 백인남자의 부드러운 자지도 사랑했었어. 나는 니가 말하는 단단한 페니스가 위대하다 느껴져 본 적은 없는 것 같아;;
-> 나도 이런 줄 몰랐는데, 딜도인지 바이브인지(나 이거 정확히 구분 못해) 하여간 그딴걸 집어넣어봤더니 난 바로 다치더라고. 콘돔을 씌웠는데도 말야. 단단하고 딱딱한 굶주린 자지 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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