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이야기.

1.

꼭 일년 전, 나는 한 남자와의 오랜 연애관계를 정리하고 나에게 지속적으로 '들이대었던' 다른 남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선택한 남자를 괴롭혀댔다. 일테면 둘만의 데이트 중에 뜬금없이, 나 그 사람 생각하고 있었어요, 같은 말을 하는 걸로. 그때 그는 급하게 차를 세우고 연달아 몇 개피의 담배를 피웠으며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일단 미안해요, 라고 말했다. 달리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별로 미안하지 않았다. 당신 때문에 (내가 사랑했던) 다른 남자가 아프게 되었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당신도 어느 정도는 아파야 공평하다고 믿었다. 어쨌든 나는 지갑 속에 현금이 얼마쯤 있는가를 생각했다. 교외로 차를 몰고 나갔기에 서울로 돌아올 택시비가 신경쓰였기 때문에. 몇만원 정도는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차에서 내려야지 결심했다.

차 문을 열기 직전에 그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 라고 말하면서 그는 심지어 웃음을 보이기 까지 했다. 엄마에게 단 한 번도 맞아본 적 없는 아이같이 환하게 웃고 난 뒤에 나에게 미안해 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별로 미안하지 않았고, 차라리, 당신 몫의 괴로움은 가져가버려, 우리는 아직 그런 감정을 공유할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말했다. 나는 정말 괜찮다니까.

말문이 막혀서 키스했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감사하며 삼십여분에 걸쳐 이전 남자친구와의 추억을 줄줄이 읊어대었다. 전 남자친구와 내가 반년전에 싸우고 화해했던 사연을 들으면서 그는 별로 괜찮지 않게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연애극기훈련장의 교관 같은 자세로 그를 위협하려 들었다. 하지만

상황은 곧 역전되었다. 모텔에서 내 옷을 벗기고 나를 침대에 들어 올리고 내 몸 위에 올라탄 뒤에 그는 나를 봐, 라고 말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동그란눈 까만눈동자 그 촉촉한 반짝임이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눈을 감지도 피하지도 못했고 떨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데 그가 갑자기 내 안으로 들어왔다. 무척 아팠지만 비명을 참고, 콘돔 써요, 라고 말했다.

그 전의 남자친구는 토마토를 먹지 못했다. 복숭아 알러지나 오이 알러지는 들어본 적 있지만 토마토 알러지라니 너무 이상했다. 샐러드에 들어있는 방울토마토를 조금 먹은 걸로 입술과 목구멍이 부어올랐다. 토마토 페이스트로 만든 이탈리아 음식은 손도 안 대고 심지어 케찹도 못 먹었다. 타고난 체질이란 이해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고 수용해야 하는 범주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토마토를 먹고 난 뒤에는 키스도 할 수 없는 그 남자는 어쨌든 이상했다.

전 남자친구의 이상한 알러지를 회상하며, 어쨌든 생은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아프게 내 속을 들쑤시고 있는 이 남자는 토마토를 먹을 수 있고 내가 토마토를 먹어도 키스해줄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말했다. 오빠, 콘돔 써야지.

그는 순순히 고개를 들고 콘돔을 찾아왔고 무성의하긴 했지만 나의 클리토리스와 애널을 핥았다. 나는 남자의 애무를 받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쨌든 생은 나아지고 있는 거야, 이 남자는 토마토를 먹을 수 있으니까, 이 남자는 괜찮은 차를 가지고 있으니까, 이 남자 페니스는 전의 남자 보다 조금 더 크니까. 어쨌든 이 남자가 현실이며 현재이니까.

수치감이 나를 자극했고 오르가즘을 느끼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토해냈다. 그렇게 모노가미 연애가 재구성되었다. 돌이켜 고백컨대 나는 일부일처제의 신화를 언제나 믿어왔다. 작년 여름,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렀다. 그날 밤도 이렇게 더웠던가? 그건 잘 기억나지 않는다.

2.

나는 그 여름 내내 빨간색 에나멜을 손톱발톱에 칠하고 다녔다. 토마토 같은 색에서 피 같은 색까지 미묘하게 다른 빨간색을 거의 다 발라보았다. 그래봤자 그건 그냥 빨간 색이었지만.

러브호텔에 입성하자 마자 남자의 옷을 벗기고 벌거벗은 그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빨간 손톱으로 그의 것을 움켜쥐어 보았다. 나는 그의 페니스 보다는 내 손톱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눈을 감고 페니스를 삼켰다. 붉은 혀로 핥고 휘감고 문지르고 빨아들였다. 단단하게 차오르는 느낌을 즐기다가 문득, 일정금액을 지불한 뒤에 받는 서비스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심술궂게 물었다. 술집아가씨들도 이렇게 해줘?

그는 나에게 창녀같이 굴지 말라고 했고 나는 어떤 창녀보다 붉은 손톱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말해줘, 어때, 어떻게 해주는데? 언니들이 해주는 대로 해줄게. 그가 답했다. 오빠 돈 없다.

나는 지갑이 가난한 남자의 페니스를 입에 물고, 어차피 연애질에 정정당당함 같은 것은 없어, 라고 생각하면서 이기적인 오럴서비스를 제공했다. 감질만 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부족한 테크닉으로. 그러다가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이건 정말 창녀 같잖아.

수치감이 나를 도발했고 나는 턱이 좀 아프고 목젖 부분에 얼얼한 느낌이 들 정도로 열성을 다해서 그의 페니스를 물고 빨았다. 그렇게 사랑을 호소하면서 나는 좀 더 평화로워진 것 같다. 어쨌든 내 손톱은 붉었지만.
by 작나무 | 2006/08/08 00:56 | 손바닥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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