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나무: 네가 염색해준 손수건이야.
제제: 색 바래니까 더 예쁜데.
작나무: 눈물닦고 코풀고 그래서 헤헤.
제제: 똥만 닦지 마.
작나무: 응. 만원짜리 비벼서 닦는 한이 있어도.
제제: ... 만원짜리는 좀 생각해보자.
(2005.12.03 01:33)
내 친구 제제는 나를 뽀르뚜가라고 부른 적이 있다. 나는 그 이름이 너무 자랑스러웠지만 이제까지 말한 적이 없다. 언젠가 내가 정말 외로워지면 위로받으려고 일기장에 적어두기만 했다.
나의 제제가 연두색과 분홍색의 염료로 물들인 부드러운 손수건을 만들어준 적이 있다. 그 손수건은,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는 일이지만, 바스콘셀로스의 제제가 만들어낸 종이풍선 보다 훨씬 유용했다. 나는 제제의 손수건을 눈물닦고 코푸는 것 뿐 아니라 이렇게 더운 날씨에 흘러내린 땀을 닦을 때도 쓰고 있다. 아직까지 그걸로 똥을 닦을만큼 위급한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다.
나의 제제는 그림을 그린다. 그녀는 창작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90%는 잘 견뎌낸 것 같다. 나머지 10%에서 내가 필요하다면 나는 언제라도 그녀에게 갈 것이다. 전차가 빠른 속도로 나를 위협할지라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뽀르뚜가가 처럼 근사한 자동차를 준비해 놓아야 할까? 그럴지도 모른다.
나의 제제는 다 자란 라임오렌지 나무를 잘라버리지 않았다. 그녀의 강함을 생각하면, 어쩌면 나는 뽀르뚜가가 아니라 라임오렌지 나무 일지도 모른다. 상상 속에서 노래하는 새 일지도 모르고 노래책을 파는 아리오발도 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삶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모른다.
보다 분명한 과거의 일을 말하자면, 제제와 나는 오랜 친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