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동형론과 예술작품 속 인형놀이에 대해.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인류의 발달을 '자연세계와의 합일을 발견하려 했던 토테미즘 단계'에서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인공물) 우상을 숭배했던 단계'로, 그리고 '인간이 신에게 인간의 형태를 부여하여 신인동형(神人同型, Anthropomorphism)의 신(神)을 설정하고 이를 숭배하는 단계'로 구분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단계는 절대선인 신에게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에게 침투해서 합일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7, 개역개정)

인간 창조에 대한 성경구절은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따 인간을 창조했다고 말하지만, 겸손한 기독교 신자라면 결코 신이 자신과 동등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신의 형상과 인간의 형상이 일치한다고 해서 인간적인 모든 결점이 신의 결점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위의 구절만을 다시 읽어본다고 해도 신의 형상은 남자와 여자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지며, 하나이지만 둘(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가진 신은 전 우주의 에너지 자체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신인동형론은 유일신 사상에 반드시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이슬람의 경우). 그러나 기독교의 특수성은 신이 인간을 인간의 모습으로 창조하였다는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형상중심주의 시각중심주의가 서구 문명사에서 중요한 관점 중 하나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 예술가들의 인형놀이는 보다 의미심장한 것이 될 것이다. 신이 자신의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자신의 모습으로 인형을 창조했다. 그렇다면 이 인형들이 가지는 보다 열등한 속성은 과연 무엇일까. 신이 가지지 않은 결점까지 가지고 있는 인간들은 이 인형을 통해 어떤 모습을 표현하려 했던 걸까?

----- 라고 일단 쓰기는 했는데, 에리히 프롬이 무슨 말을 했던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되게 오래되고 번역도 개판이었던 책을 지난번 책정리 때 내다버린 것 같은데... OTL  이런 고전은 자료 삼아 둬도 절대 다시 안 보는지라 다시 살 생각도 없고. 에리히 프롬에 대해 잘 알고있는 것 같은 사람에게 문의했더니 대충 엇비슷한 것 같아서 그냥 써버렸다.

신인동형설과 예술작품 속 인형놀이에 대해 쓰려고 하는데, 신>인간>인형 이런 식의 논리를 전제로 쓰는 거 너무 뻔한가? (응, 뻔하디 뻔해!)

신인동형이란 말이 모더니즘-미니멀리즘(리터럴리즘) 논쟁 때 마이클 프리드 논문에서 나온 적도 있는데, 그 논쟁에서 프리드 아저씨는 리터럴리스트를 까대면서 니네 너무 신인동형적이야, 인간형태적이야, 연극적이야, 근데 왜 아닌 척 지랄이야, 그래서 예술성 엄써, 머 이런 주장을 했었던 거 기억난다. - 이 주장까지 연결시키면 너무 거대한 담론으로 가버리는 듯 싶은데... (아는 게 없으니 멀리 가는 게지!)

다른 관점에서, 인형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 예전에 레비가 루이스 부르조아 밀실 연작 발표하면서 언급했던 것 같은데, 프로이트였나 멜라니 클라인이었나 누군가의 이론이랑 접목해서... 역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대체 기억하는 게 뭐냐!) 그 외에 인형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파편화된 인형, 조각난 인형의 팔과 다리, "신의 인간에 대한 분노->인간의 인형에 대한 분노" 이런 식으로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언급하려는 작가는 작가는 한스 밸머와 우니카 취른의 작업, 신디 셔먼의 앱잭트 아트 시기 전후해서 나온 마네킹들, 그리고 루이스 부르조아의 헝겁인형 정도. 아이디어 있으면 덧글 부탁해요!
by 작나무 | 2006/09/19 17:58 | 그림과글 | 트랙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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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나무그림 at 2006/09/25 16:36

제목 : 한스 밸머와 우니카 취른 - Hans Bellmer..
한스 밸머와 우니카 취른. 상처투성이 인간들. doll 1935 Poupee in Hayloft 1935-36 The Doll circa 1936 The Machine-Gunneress in a State of Grace 2 1937 Idol 1937 여자 1935-56 Unica Zürn과 함께한 작업 1958 밸머와 취른 우니카 취른 ......more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6/09/19 19:40
시각적 인형:한스밸머-촉각적 인형:루이스 부르조아, 이건 어떨까 =ㅂ=;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6/09/19 21:02
마우리쬬 까뗄란이 아이들(마네킹)을 나무에 교수형시킨 건?
http://blog.naver.com/dogstylist.do?Redirect=Log&logNo=40024661150
Commented by 레비 at 2006/09/21 08:54
아침이라 모니터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흐흐. 루이스 부르주아 한건 이리가레 이론이었어. 프리드가 미니멀리즘을 비판한 가장 큰 이유는 연극적, 즉 시간성이 포함되었다는 거. 시각미술의 본질에 시간성은 포함될 수 없다고 보았으니까.
신->인간->인형으로 보는건 단순해보이긴 한다. 인형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우나 깊은 친밀감을 지닌 뭔가로 보는 경우도 있잖아. 아바타라던지, 페르소나라던지.
Commented by 레비 at 2006/09/21 09:01
마우리쬬 까텔란같은 경우는 인형을 매달 때 인형과 자신이 뭔가 관련이 있다거나 일련의 동질감이라던지, 이런게 있었다고 절대 볼 수 없지.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세지나, 센세이션 이런걸 생각하고 있었을 것 같아. 하지만 신디 셔먼의 인형이나 루이스 부르주아의 인형은 다르잖아. 인형 자체를 대하는 작가의 접근 방식 자체가 근본부터 다르다는 느낌? 음, 채프만 형제의 마네킹 아이들도. 나 한스 밸머는 잘 모른다. 있다가 작품 찾아봐야지;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6/09/24 16:47
레비양 고마워. 역시 마우리쬬 까뗄란은 좀 아닌 것 같아.
셔먼이나 부르주아는 어떤 느낌인지 대충 알겠는데 밸머는 어려워; 애인이랑 묶기 작업한 것도 있는데 그런 거 보면 극대상화의 느낌이 들기도 하고... ㅇㅇ;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6/09/24 16:49
http://treeart.egloos.com/2505371
한스 밸머 사진작업은 위 포스팅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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