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과 우상.

박노자 선생님이 쓰신 "불상 (佛像)은 과연 신상 (神像)이어야 하는가" -<월간 인물과 사상> 제10호에 투고할 예정에 있는 미완성 (초고)-을 읽고 밑줄 그은 부분만 발췌.

 

종교 미술이란,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는 초월적인 이상을 재현하여 우리 앞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권력 관계를 배경으로 하여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 현실적 권력 관계를 신성화시키기도 한다. 그러한 면에서는, 8세기의 군주 경덕왕이 투자해서 만든 종교 미술품을 20세기의 군주 박정희가 다시 한번 ”국위선양”을 위하여 썼다는 것은, 과연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인가?

원칙상 이들 종교 미술품들이 생사를 초월하여 중생들에 대한 무한한 자비심을 갖는 존재인 석가모니, 관세음 등을 상징할 뿐이지 흔히 말하는 ”우상”, 즉 그 자체로서의 초자연적인 힘을 갖는 대상물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수많은 신도의 머리 안에서는 ”상징”으로서의 미술품이 곧 초자연적인 ’영험’을 일으키는 ”물신” (物神)으로 쉽게 둔갑한다.

불상 그 자체를 신앙 대상화, 신비화시키는 우리 불교의 보편적인 의식∙태도 등과 직결돼 있다는 것은 바로 화근일 것이다.

한용운은, 부처님의 그림이나 조각을 숭배적인 태도로 대한다는 것을 반대했으나 불교 미술품이 신행 (信行)을 위해 쓰인다는 것 자체를 불가피한 것으로 이해했다.

길흉화복을 점치고 제사 지내는 등 기복 신앙의 대상이 된 지 오래된 나한, 칠성, 명부시왕, 신중상 등을 일체 철폐하고 여러 부처님과 보살의 대표로 오로지 석가모니 부처님의 상(像)만을 장엄하게 만들어 예배하면서 그의 사적을 생각하고 그의 감화를 다시 느끼고 그의 교화와 사상을 행동으로 옮기자는 것은 한용운의 제안이었다.

한용운과 많은 측면에서 상당히 가까웠던 또 한 명의 위대한 종교 개혁자인 톨스토이 (1828-1910)도 비슷한 차원에서 종교미술을 제한적으로 긍정했다.

초기 불교 공동체에서는 인간 붓다에 대한 일종의 ”향수”의 분위기가 강했던 것을 여러 문헌에서 엿볼 수 있다. 물론 한편으로는 붓다 자신이 ”한 번 가버린 뒤에는 깨달은 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바람에 꺼버린 불이 없어져서 더 이상 ’불’로서 존재하지 않듯이 한번 신체를 벗어난 깨달은 이는 없어지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가고 없어진 이를 더 이상 재볼 수 없다 (…) 모든 요소들이 소멸되고 나서는 더 이상 이야기될 만한 부분도 없다”

같은 자비 관련의 미담들이 순박한 그림으로 새겨져 있는 석탑은, ”예배의 장소”이기 이전에 하나의 불교의 교과서이었다. 합목적 (合目的)의 종교 미술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초기 불교의 도덕적 열정을 뿜는 그 최고 (最古)의 석탑 미술에서도 불교 그 자체와 굳이 관련이 없는 모티브들이 꽤 많이 보인다는 부분이다.

연기 (緣起), 공 (空), 그리고 자비 중심의 붓다 가르침은 교리상 기존의 인도 종교, 신앙과 명확하게 구분되지만, 많은 재가 불자의 입장에서는 종교로서의 불교는 이미 초기 단계부터 기존의 신앙 형태들과 혼합되기도 했다. 하기야, 붓다 자신도 신사 (神社)에 대한 공동체적 숭배를 정치 공동체 화합의 중요한 조건으로 제시하지 않았던가? 불교는 기존 종교의 초자연적 힘에 대한 인식을 자기 가르침의 중심으로 삼지 않았지만, 정면으로 반박하지도 않고 일단 시인하긴 했다. 그러기에 불교적 신앙이 비(非)불교적 신앙과 점차 습합돼 가는 것은, 어쩌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결과이기도 했다.

불교 미술의 기능과 형태의 변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결국 국가 권력과 종교의 관계의 변화이었다.

간다라 (Gandhāra)에서 최초의 불상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나서도 그 모습의 변천 과정이 정치 권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신의 존재를 필요로 했던 권력과 결탁한 불교 신앙 공동체는, 진리를 깨달은 한 인간을 사후에 미술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신적 존재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붓다의 신격화 경향은, 바미안의 대불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그것을 파괴하려 했단 탈레반 정권이야 야만을 저질렀지만, 우리가 굳이 ”힘”을 상징하는 커다란 부처님의 모습 앞에서 자비의 가르침을 배울 필요가 있는가?

by 작나무 | 2006/09/20 13:01 | 공부하자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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