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인생론>을 읽고 있다. 가슴 깊이 느낀 한가지는 톨스토이 같은 대문호도 이따위 글을 썼구나 하는 점이다. 내가 쓰는 모든 잡문에 대한 면죄부를 얻은 느낌이다.
책 후기에 톨스토이의 간략한 전기가 실려있는데 그에 관한 몇가지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 톨스토이는 카잔 대학 동양어과를 다니고 있었지만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고 반년 뒤에 법과로 전과했다. 1847년 1월에는 병으로 인해(무슨 병일까?) 대학을 중퇴하기로 결심했고 4월 12일에 퇴학원을 제출했다. 법학과 퇴학의 여러 이유 중 이 말은 흥미롭다.
"형법과 법의 정신을 공부하고 있을 때, 그 책들은 나에게 독립 심적 발전에 새로운 분야를 계시(啓示)해 주었는데 대학에선 여러가지의 일을 요구하면서도 그 심적 발전에 힘을 빌려주지 않을 뿐더러 도리어 방해를 하는 것이다."
- 대학을 중퇴한 뒤에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웠다.
"1. 대학의 졸업 시험에 필요한 법과의 전과목을 습득할 것.
2. 임상의학과 의학원론의 일부분을 습득할 것.
3. 프랑스, 러시아, 독일, 잉글랜드, 이탈리아, 라틴의 말을 습득할 것.
4. 역사, 지리 및 통계학을 습득할 것.
5. 중등과의 수학을 습득할 것.
6. 학위 논문을 기초할 것.
7. 음악과 회화에 대한 연구를 철저히 할 것.
8. 언행록(言行錄)을 작성할 것.
9. 자연과학에 대한 얼마간의 지식을 얻도록 할 것.
10. 앞으로 습득한 모든 학과를 저술할 것."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과 자연과학에 대해서는 소박한 목표를 세웠다는 사실은 재미있다. 마지막 목표는 특히 흥미로운데 실제로 그는 자신의 <철학의 목적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고, <미래의 생활에 관한 비판에 대하여>, <시간, 공간 및 수의 판정>, <철학의 정의> 등의 주제로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 톨스토이는 23세까지 술과 노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보냈는데 1850년의 일기 중 노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돈을 많이 지니고 있는 사람과 노름을 할 것. 그 이유는 내가 설령 이긴다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하여 그다지 물질적 손실을 주지 않으며 그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또한 파산시킬 수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는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스타루이 율트에서 장교들과의 노름판에 끼어들었고 결국 거액의 빚을 지게되었다. 결국은 형 니콜라이와 체첸 출신의 친구 사도의 도움으로 빚을 갚을 수 있었다.
- 노름빚을 해결한 뒤에 톨스토이는 1852년에 최초의 소설작품인 <유년시대>를 탈고하고 원고를 <현대인>의 편집자인 네크라소프에게 보냈다. 편집자는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냈다.
"... 당신이 문단의 일시적인 방문객이 아니라면 머리 글자만을 딴 익명을 쓴다는 것은 삼가하시고 본래의 성명을 사실대로 발표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는 "L.N"이라는 익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 <유년시대>는 좋은 평을 얻었으나 원고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답신을 받았다.
"... 우리 나라의 일류 잡지사에선 처음 추천을 받은 신인작가의 처녀작품에 대해선 고료를 지불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인을 거쳐 문단에 나오게 된 사람들은 지금까지 모두 그렇게 해왔습니다. ... 그러나 앞으로 당신의 원고에 대해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문인들이 받고 있는 최고의 고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톨스토이도 처녀작의 원고료를 받지 못했었단 이야기. OTL
- 톨스토이는 1862년 9월 17일, 18세가 된 소냐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에게 청혼하면서 그녀에게 자신의 인생역정이 담긴 일기를 모두 읽게했다. (참으로 악취미다.) 그들은 야스나야 폴리야나에서 함께 살았다. 1863년 6월 18일 톨스토이의 맏아들 세루게이가 태어났다. 물론 세상에는 9개월만에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 톨스토이는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쓰기 위해 5년동안 자료를 조사했다. 1812년 당시의 회고록, 기록, 편지, 러시아 및 프랑스의 문헌 등. 심지어 당시의 신문을 보기 위해 매입광고를 내기도 했으나 구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나는 소설에 나오는 역사상의 인물이 행동하며 말하는 장면들은 모두 자료에 근거를 두고 일체의 창작을 가하지 않았다. 이 자료는 일이 진행됨에 따라 수를 더하고 최후에는 하나의 도서관이 될 정도가 되었다. 지금에 와서 그 서적 이름을 알리는 것은 무용지사라고 생각되나 나는 언제든지 내가 사용한 원문을 인용할 용의가 있다."
사실은 글의 힘이다. 모든 사람이 힘있는 글을 써야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기기 위한 글을 쓸 때는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 톨스토이는 노년에 객사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재분배하기를 원했으나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그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었다. 소유를 포기한 방랑과 죽음은 그의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말이지만 가족-가부장으로서 부양의 책임을 지고 있는 가족은 역시 저버릴 수 없는 도덕적인 의무였을 것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가계의 부를 모두 물려받은 유복한 상속인이었지만 자신의 재산을 모두 여자친척들에게 분배해주었고 자신은 대학에서 기거했다고 한다. 화장실에서 잠들면서도 그는 자신의 저작권료를 모두 사회로 환원하게 했다. 이런 식의 실천은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책 후기에 톨스토이의 간략한 전기가 실려있는데 그에 관한 몇가지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 톨스토이는 카잔 대학 동양어과를 다니고 있었지만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고 반년 뒤에 법과로 전과했다. 1847년 1월에는 병으로 인해(무슨 병일까?) 대학을 중퇴하기로 결심했고 4월 12일에 퇴학원을 제출했다. 법학과 퇴학의 여러 이유 중 이 말은 흥미롭다.
"형법과 법의 정신을 공부하고 있을 때, 그 책들은 나에게 독립 심적 발전에 새로운 분야를 계시(啓示)해 주었는데 대학에선 여러가지의 일을 요구하면서도 그 심적 발전에 힘을 빌려주지 않을 뿐더러 도리어 방해를 하는 것이다."
- 대학을 중퇴한 뒤에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웠다.
"1. 대학의 졸업 시험에 필요한 법과의 전과목을 습득할 것.
2. 임상의학과 의학원론의 일부분을 습득할 것.
3. 프랑스, 러시아, 독일, 잉글랜드, 이탈리아, 라틴의 말을 습득할 것.
4. 역사, 지리 및 통계학을 습득할 것.
5. 중등과의 수학을 습득할 것.
6. 학위 논문을 기초할 것.
7. 음악과 회화에 대한 연구를 철저히 할 것.
8. 언행록(言行錄)을 작성할 것.
9. 자연과학에 대한 얼마간의 지식을 얻도록 할 것.
10. 앞으로 습득한 모든 학과를 저술할 것."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과 자연과학에 대해서는 소박한 목표를 세웠다는 사실은 재미있다. 마지막 목표는 특히 흥미로운데 실제로 그는 자신의 <철학의 목적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고, <미래의 생활에 관한 비판에 대하여>, <시간, 공간 및 수의 판정>, <철학의 정의> 등의 주제로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 톨스토이는 23세까지 술과 노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보냈는데 1850년의 일기 중 노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돈을 많이 지니고 있는 사람과 노름을 할 것. 그 이유는 내가 설령 이긴다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하여 그다지 물질적 손실을 주지 않으며 그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또한 파산시킬 수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는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스타루이 율트에서 장교들과의 노름판에 끼어들었고 결국 거액의 빚을 지게되었다. 결국은 형 니콜라이와 체첸 출신의 친구 사도의 도움으로 빚을 갚을 수 있었다.
- 노름빚을 해결한 뒤에 톨스토이는 1852년에 최초의 소설작품인 <유년시대>를 탈고하고 원고를 <현대인>의 편집자인 네크라소프에게 보냈다. 편집자는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냈다.
"... 당신이 문단의 일시적인 방문객이 아니라면 머리 글자만을 딴 익명을 쓴다는 것은 삼가하시고 본래의 성명을 사실대로 발표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는 "L.N"이라는 익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 <유년시대>는 좋은 평을 얻었으나 원고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답신을 받았다.
"... 우리 나라의 일류 잡지사에선 처음 추천을 받은 신인작가의 처녀작품에 대해선 고료를 지불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인을 거쳐 문단에 나오게 된 사람들은 지금까지 모두 그렇게 해왔습니다. ... 그러나 앞으로 당신의 원고에 대해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문인들이 받고 있는 최고의 고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톨스토이도 처녀작의 원고료를 받지 못했었단 이야기. OTL
- 톨스토이는 1862년 9월 17일, 18세가 된 소냐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에게 청혼하면서 그녀에게 자신의 인생역정이 담긴 일기를 모두 읽게했다. (참으로 악취미다.) 그들은 야스나야 폴리야나에서 함께 살았다. 1863년 6월 18일 톨스토이의 맏아들 세루게이가 태어났다. 물론 세상에는 9개월만에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 톨스토이는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쓰기 위해 5년동안 자료를 조사했다. 1812년 당시의 회고록, 기록, 편지, 러시아 및 프랑스의 문헌 등. 심지어 당시의 신문을 보기 위해 매입광고를 내기도 했으나 구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나는 소설에 나오는 역사상의 인물이 행동하며 말하는 장면들은 모두 자료에 근거를 두고 일체의 창작을 가하지 않았다. 이 자료는 일이 진행됨에 따라 수를 더하고 최후에는 하나의 도서관이 될 정도가 되었다. 지금에 와서 그 서적 이름을 알리는 것은 무용지사라고 생각되나 나는 언제든지 내가 사용한 원문을 인용할 용의가 있다."
사실은 글의 힘이다. 모든 사람이 힘있는 글을 써야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기기 위한 글을 쓸 때는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 톨스토이는 노년에 객사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재분배하기를 원했으나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그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었다. 소유를 포기한 방랑과 죽음은 그의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말이지만 가족-가부장으로서 부양의 책임을 지고 있는 가족은 역시 저버릴 수 없는 도덕적인 의무였을 것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가계의 부를 모두 물려받은 유복한 상속인이었지만 자신의 재산을 모두 여자친척들에게 분배해주었고 자신은 대학에서 기거했다고 한다. 화장실에서 잠들면서도 그는 자신의 저작권료를 모두 사회로 환원하게 했다. 이런 식의 실천은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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