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읽었던 책이지만 한글활자가 그리운 곳에서 다시 읽자 감동이 넘실넘실. - 모리 슈워츠의 정신병동 찾아볼 것.
- 극도로 화가 났을 때는 그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십시오. 항상 좋은 사람인 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좋은 사람일 때가 더 많은 사람이면 됩니다.
- 자신과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용서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억울한 생각을 없애 주며, 죄책감을 녹여 줍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나머지, 자신이 성취하지 못한 일들을 떠올리며 자신을 책망합니다. 이를 극복하는 첫 번째 단계는 꼭 해야 했던 일을 하지 않은 '자신'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러 저린 '자신'에 대해 용서하는 것입니다.
-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 새로 친구를 사귀거나 예전에 알았던 사람들과 다시 연락을 취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여러분이 상냥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아직 자신을 변화시킬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습니다.
- 여러분이 심술쟁이인 것은 심술쟁이처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만약 여러분이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처럼 행동한다면, 여러분은 언젠가 정말로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 자신과의 거리 두기
자기 자신의 목격자가 되십시오. 자신의 육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 상태를 관찰하는 객관적인 관찰자로 행동하십시오. 특별히 의미가 크거나 매우 감정적인 경험을 하게 될 때, 사람들은 그 경험에 지나치게 몰두하곤 합니다. 때로는 그 경험이 너무나 강렬하게 사람들을 끌어당겨 그만 압도당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경험에 대한 생각을 도저히 멈출 수 없게 됩니다. 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이런 문제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나는 심리 치료를 받을 때에도 나 자신을 관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심리 치료의 요체는 바깥에 서서 자신이 되풀이하는 행동과 생각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몇 가지 행동 패턴을 바꿔서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의 성공 여부는 뒤로 물러서서 자신의 내적 자아를 얼마나 잘 분석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는 명상을 통해서도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자신의 관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명상 중에 스쳐가는 감정, 생각, 느낌을 마음속에 새긴 다음 그것들을 흘려 보내고, 다음으로 찾아오는 감정과 생각을 다시 마음속에 새기는 과정을 되풀이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계속해서 관찰하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리를 둔다고 해서 아예 경험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시에 하건 순차적으로 하건 간에 관찰과 경험 모두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없다면, 조금 기다렸다가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 보면 됩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지? 내가 어떻게 그것과 거리를 둘 수 있지? 내가 거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렇게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자기를 관찰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 방법은 자기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뒤로 물러나서 그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이를 흔히 '타인의 역할 떠맡기'라고 부릅니다. 조지 허버트 미드는 1930년대에 쓴 자신의 책 [정신, 자아, 사회(Mind, Self, and Society)]에서 이런 종류의 역할 떠맡기를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 놓음으로써, 그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같이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뒤로 물러나서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을 잠시 설명해 보겠습니다.
내 자신을 바라볼 때, 나는 때때로 내가 혼자서는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반면에 가끔은 나 자신이 현명한 노인으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다른 사람이 겪고 있는 일을 바라보듯이 내게 일어나는 일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런 것을 겪고 있다면, 그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내 경험을 외부로 투사함으로써, 나는 병 때문에 겪고 있는 주관적인 경험과 나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지 않아도 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과 거리를 둘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종이에 적어 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종이에 적음으로써 우리는 객관성을 얻게 됩니다. 내가 느끼는 고통, 내가 잃어버린 신체적 기능 등에 대해 적어 가다 보면, 나는 나 자신의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내 병으로 인한 증상은 순수하게 주관적인 경험이라기보다는, 내가 분석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객체가 되는 것입니다. 아주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누구나 그 느낌에서 떨어져 거리를 두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나는 내 병과 관련된 중요한 변화들에게 나 자신을 조금 떨어뜨림으로써 그 변화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어딘가 다른 장소로 자신을 이동시키는 것도 눈앞의 경험과 거리를 둘 수 있는 방법입니다. 명상이 바로 그런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명상은 우리의 정신을 다른 공간, 또는 대안적인 현실로 옮겨 놓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같은 효과를 얻기도 합니다.
-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가 우리가 느끼는 것만큼 멀지 않다는 생각을 즐겁게 간직하십시오.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죽음과 계약을 맺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죽음에 대해 그처럼 소란을 떨고 필사적으로 이를 거부하고자 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태어난 것은 모두 죽습니다.
- 극도로 화가 났을 때는 그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십시오. 항상 좋은 사람인 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좋은 사람일 때가 더 많은 사람이면 됩니다.
- 자신과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용서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억울한 생각을 없애 주며, 죄책감을 녹여 줍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나머지, 자신이 성취하지 못한 일들을 떠올리며 자신을 책망합니다. 이를 극복하는 첫 번째 단계는 꼭 해야 했던 일을 하지 않은 '자신'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러 저린 '자신'에 대해 용서하는 것입니다.
-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 새로 친구를 사귀거나 예전에 알았던 사람들과 다시 연락을 취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여러분이 상냥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아직 자신을 변화시킬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습니다.
- 여러분이 심술쟁이인 것은 심술쟁이처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만약 여러분이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처럼 행동한다면, 여러분은 언젠가 정말로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 자신과의 거리 두기
자기 자신의 목격자가 되십시오. 자신의 육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 상태를 관찰하는 객관적인 관찰자로 행동하십시오. 특별히 의미가 크거나 매우 감정적인 경험을 하게 될 때, 사람들은 그 경험에 지나치게 몰두하곤 합니다. 때로는 그 경험이 너무나 강렬하게 사람들을 끌어당겨 그만 압도당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경험에 대한 생각을 도저히 멈출 수 없게 됩니다. 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이런 문제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나는 심리 치료를 받을 때에도 나 자신을 관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심리 치료의 요체는 바깥에 서서 자신이 되풀이하는 행동과 생각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몇 가지 행동 패턴을 바꿔서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의 성공 여부는 뒤로 물러서서 자신의 내적 자아를 얼마나 잘 분석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는 명상을 통해서도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자신의 관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명상 중에 스쳐가는 감정, 생각, 느낌을 마음속에 새긴 다음 그것들을 흘려 보내고, 다음으로 찾아오는 감정과 생각을 다시 마음속에 새기는 과정을 되풀이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계속해서 관찰하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리를 둔다고 해서 아예 경험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시에 하건 순차적으로 하건 간에 관찰과 경험 모두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없다면, 조금 기다렸다가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 보면 됩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지? 내가 어떻게 그것과 거리를 둘 수 있지? 내가 거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렇게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자기를 관찰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 방법은 자기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뒤로 물러나서 그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이를 흔히 '타인의 역할 떠맡기'라고 부릅니다. 조지 허버트 미드는 1930년대에 쓴 자신의 책 [정신, 자아, 사회(Mind, Self, and Society)]에서 이런 종류의 역할 떠맡기를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 놓음으로써, 그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같이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뒤로 물러나서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을 잠시 설명해 보겠습니다.
내 자신을 바라볼 때, 나는 때때로 내가 혼자서는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반면에 가끔은 나 자신이 현명한 노인으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다른 사람이 겪고 있는 일을 바라보듯이 내게 일어나는 일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런 것을 겪고 있다면, 그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내 경험을 외부로 투사함으로써, 나는 병 때문에 겪고 있는 주관적인 경험과 나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지 않아도 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과 거리를 둘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종이에 적어 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종이에 적음으로써 우리는 객관성을 얻게 됩니다. 내가 느끼는 고통, 내가 잃어버린 신체적 기능 등에 대해 적어 가다 보면, 나는 나 자신의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내 병으로 인한 증상은 순수하게 주관적인 경험이라기보다는, 내가 분석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객체가 되는 것입니다. 아주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누구나 그 느낌에서 떨어져 거리를 두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나는 내 병과 관련된 중요한 변화들에게 나 자신을 조금 떨어뜨림으로써 그 변화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어딘가 다른 장소로 자신을 이동시키는 것도 눈앞의 경험과 거리를 둘 수 있는 방법입니다. 명상이 바로 그런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명상은 우리의 정신을 다른 공간, 또는 대안적인 현실로 옮겨 놓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같은 효과를 얻기도 합니다.
-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가 우리가 느끼는 것만큼 멀지 않다는 생각을 즐겁게 간직하십시오.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죽음과 계약을 맺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죽음에 대해 그처럼 소란을 떨고 필사적으로 이를 거부하고자 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태어난 것은 모두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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