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미술관] 버자이너 컬러로그 - 여성 성기의 색상에 대한 고찰 그림과글


Georgia O’Keefe [Gray Line with Black, Yellow, and Blue] 1923

보지의 독백

[버자이너 모놀로그(Virgina Monolog)]라는 연극이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보지의 독백. 무대 위에서 아랫도리의 입술이 위의 입술처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필자의 생각에 보지가 가장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는 역시 침대 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왕 보지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보지를 가진 인간 암컷인 필자가 수컷인 친구와 서로의 발가락을 핥으며 나누었던 베개담화 내용을 공개하겠다.

B(Boyfriend): 변했어.

M(Marilyn): 뭐가?

B: 보지 색깔이.

M: 그래?

B: 응. 처음 만났을 때는 분홍색에 갈색 줄이 있었는데 지금은 확실히 갈색이야.

M: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어봐.

B: (핸드폰을 꺼내서 촬영하고) 봐.

M: 진짜, 거의 머룬(밤껍질색)이네.

B: 섹스를 많이 하면 색이 변한다고 그러잖아.

M: 그런 말도 있지.

B: 하지만 M양은 나 만나기 전에도 많이 했었잖아.

M: 응.

B: 그러면 나랑 제일 많이 했나?

M: (무슨 말을 듣고싶은 걸까...) 그럴지도...

B: 음훼훼. ^________^ (의기양양하다.)

M: ("자기 자지가 커서 그런가봐!" 라는 사랑스런 멘트를 던질까 하다가 -지난 칼럼 [자지에 대한 이미지즘적인 고찰]을 보시라- 돌연 심각해진다.)

M: 내 보지가 갈색이라도 좋아?

B: 당연하지.

M: 검정색으로 변해도 좋을 거 같아?

B: 음... 그럼 립스틱 발라줄게. 핑크색으로.

M: ...... 펄 들어간 걸로 발라줘.

B: 크크. 야, 이거 장사 되겠는데. 보지용 립스틱.

M: 푸시스틱이네.

B: 좀 그렇다. 상표는 적나라한 거 안 좋아.

M: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

B: 그거 씨엠으로 딱이다. 광고모델은 마돈나로. 상표는 버지니아(Virginia)!

M: 오호호. 버지니아!

B: 색은 다양할 수록 좋지. 핑크, 레드, 엘로우, 브라운, 블랙도 넣지 뭐.

M: 이름도 그럴듯하게, 핫핑크, 블러디레드, 로열브라운 이런 식으로 말이지.

B: 완전 페티쉬로 포이즌블루는 어때?

M: 제대로 팜므파탈이네.

B: 자기 취향에는, 반디지드 퀸.

M: 케케. 에셈계에서 히트 치겠다.

B: 서양애들의 오리엔탈리즘을 긁어주는 기모노핑크페일 같은 것도.

M: 일본 시장에선 큐티밀크, 퓨어크림 이런 걸로. 으헤헤.

B: 기능성도 있어야지. 핫핑크는 핫젤처럼 뜨거운 느낌 나는 걸로.

M: 블러디레드는 생리 중에 하는 기분 나게 끈적끈적하니 피냄새도 나고...

B: 님하 그건 좀!

M: 생리할 때 하는 거 싫어?

B: (대답을 회피한다) 비아그라 버지니아는 어때?

M: 여성용 비아그라?

B: 아니. 남자가 커닐링구스하면서 자연스럽게 비아그라를 먹을 수 있는 제품.

M: 거 괜찮네. 약효가 나타날 때까지 매우 열심히 커니에 임하겠군.

B: 착색은 서너시간만 지속되면 되겠지?

M: 롱래스팅 제품군을 따로 만들어도 좋고. 워터프루프 여덟시간 지속형. 흐흐.

B: 포르노 배우들 한테만 팔아도 장사 되겠다.

M: 일반인들도 관심있는 사람들 많을 걸. 완전 대박감이다.

하여, 21세기형 코스메틱 사업 푸시스틱 [버지니아-Virginia]에 투자해서 떼돈을 벌어보실랍니까? 하는 이야기는 필자의 이야깃거리가 바닥나면 다시 하기로 하고, 일단 보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필자는 다리 사이의 비밀을 발견한 유년시절부터 정기적으로 보지를 관찰해 왔다. 거울을 들고 손전등을 비춰가며 다리를 벌렸다 오므렸다 앉았다 일어났다 했던 당시에는 호기심과 성적 흥분이 어우러진 재미있는 놀이쯤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신체를 파악하는 자료로 소중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키나 체중의 변화는 주위 사람들도 얼마든지 알 수 있지만 보지의 변화는 본인이 아니라면 잘 알 수 없는 것이다.

여튼 개인적인 관찰에 따르면 필자의 보지 색깔은 수시로 변했다. 성적인 흥분이나 긴장으로 충혈되었을 때에는 짙은 선홍색을 발하고 생리하기 직전에는 갈색빛에 가까운 빨강으로 변한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붉은 색에 가깝지만 몸의 균형이 망가졌을 때에는 탁한 회색빛으로 변한다. 그리고 위의 담화에서 보듯 현재의 남자친구를 만난 이후 갈색으로 변했는데 그의 주장대로 예전보다 훨씬 자주 많이 오래 섹스하는 것이 원인인지는 잘 모르겠다. 신체 전반의 노화에 따른 변화인지도 모르고 여름내 타이트한 옷이 하복부를 압박했기에 일어난 착색현상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시간을 두고 관찰해 보아야겠다.

필자가 어렸을 적의 고민 중 하나는 보지가 핑크색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최초의 기억에 보지는 탁한 선홍색이었고 소음순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짙은 갈색의 줄이 그어져 있었다. 당시 온갖 야설과 대체야설을 통해 처녀의 보지는 뽀샤샤한 핑크라고 굳게 믿고있었던 필자에게 소음순에 세로로 새겨진 갈색 줄은 저주받은 낙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자위행위를 일주일에 한번으로 줄이겠다고 다짐했으나 이 다짐은 쉽게 허물어졌고 보지의 갈색줄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어린 시절의 고민은 사실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보지의 색에 관한 베개담화 내용을 다시 공개한다.

M: 보지가 핑크색으로 돌아올 때까지 섹스는 중지! (물론 그럴 리가 없다.)

B: 야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억울한 표정으로 회유한다.) 내가 전에 포르노를 보는데 여배우가 완전 핑크색인거야. 그렇게 선명한 핑크색은 본 적이 없어서 찾아봤는데 1999년부터 2005년도 작품까지 있더라구. 여튼 가장 마지막 필름을 다운받아서 봤는데 여전히 똑같은 핑크였어. 2005년이면 벌써 6년차잖아. 그동안 영화 찍은 것만 봐도 얼마나 많이 했겠어. 많이 쓴다고 색이 변하는 건 아니라구.

M: 역시 그렇겠지? 그렇지?

B: 당연하지. 반대로 성경험이 전혀 없었는데 완전히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이었던 여자도 있었어.

M: 고민 많았겠다.

B: 글쎄. 그애는 자기 보지를 관찰하거나 하지 않았을걸.

M: 으흠... 그럴지도.

B: 지금은 변했지만 M양 보지를 처음 봤을 때는 클리토리스부터 항문 바로 밑에까지 완전 분홍이었거든. 내음순에 튀어나온 끝은 직접적인 자극을 받는 곳은 아닌데도 갈색이었고.

M: 응.

B: 그리고 자기는 자위할 때나 섹스할 때나 클리토리스 잘 만지잖아?

M: 응.

B: 클리토리스는 지금도 완전 핑크야. 표피가 늘어지지도 않았고 반투명한 핑크색 비닐처럼 딱 붙어있어. 존내 예뻐.

M: 나도 그렇게 생각해. 존내 이쁘지. 그런데 역시 핑크가 예쁜가?

B: 갈색과 핑크를 나누면 당연히 핑크가 예쁘지.

M: 나도 갈색 옷보단 핑크색 옷을 선호하지만, 보지는 옷이 아니잖아.

여성의 보지는 다양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아래의 그림은 여성자위운동가로 본 칼럼에서도 수차례 언급한 바 있는 페미니스트 화가 베티 도슨의 일러스트 작품이다.




베티 도슨 (출처: 여성자위운동의 명저 [네 방에 아마존을 키워라])

1970년대에 베티 도슨은 다양한 연령과 인종의 보지를 사진으로 촬영하고 삽화로 남기는 작업을 했다. 그림에서 보듯 모델이 된 여성들은 자신의 보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는데 이는 자기보지 사랑하기 운동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제작동기에 대해 도슨은 이렇게 설명했다. "다양한 남녀의 성기를 보면서 자랐다면 아무도 자신의 성기가 기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그림을 조금 더 빨리 보았다면 저주받은 갈색줄의 낙인으로 고통스러워 하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홍색 보지에 대한 환상은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이에 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보자.

보지를 바라보는 눈

여성의 보지는 남성의 자지에 비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타자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김난영의 설치작품 [너도 한 번 볼래?]는 보지와 보지를 바라보는 눈의 관계를 풍자한 작품이다.

실물보다 조금 큰 엉덩이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고 엉덩이 사이로는 보지와 항문의 모양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는데 500원 짜리 동전을 넣으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동전을 넣고 들여다보면 두 개의 구멍을 통해 상반된 이미지가 나온다. 한쪽은 노골적인 포르노 영상을 편집한 것이고 다른 한쪽은 부처의 모습이다. 너도 한 번 볼래? 라는 도발에 넘어가 대가를 지불한 관객은 성(性)과 성(聖)의 공존에 당황하거나 실망하거나 웃음을 터뜨렸을 듯. 그것을 보았을 때 기대하는 것과 기대를 배반하는 것이 동시에 있으니 말이다.


김난영 [너도 한 번 볼래?] 1997

그렇다면 보지를 바라보는 눈과 보지의 색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분홍색 보지가 갈색의 보지보다 우월한 유일한 점은 상대방의 시선에 노출되었을 때 나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꽤 많은 성경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전반적인 보지의 색이 밝은 편이라는 데에 일종의 우월감 내지는 자부심을 느끼고있었고 색이 갈색빛으로 변한다는 데 공포를 가지고있었다. 심지어 보지의 색이 어두워진 시기에는 섹스를 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분홍이든 갈색이든 보지는 언제나 오르가즘을 얻는 통로였고 만족을 주었다.

여기서 보지의 역할에 대해 물어보자. 보지는 자지를 발기시키기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보지의 주인에게 오르가즘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가? 포르노그래피 반대운동으로 유명한 미국의 페미니스트 매키넌은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 성적인 것인가? 남자를 발기시키는 것이다.” 타자의 시선에 노출된 보지는 자지의 발기시키는 역할을 하며 삽입을 위한 구멍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타자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은 대부분의 시간에 보지는 여성의 자기중심적인 색욕을 위한 도구이거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신체의 일부분으로 존재한다.

조금 다르게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보지는 이타적인가, 아니면 이기적인가? 여성이 섹스를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는 도구나 상대에게 오르가즘을 주어서 자신의 성적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경우 보지는 지극히 이타적인 기관이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너도 한 번 볼래?"라고 도발하는 여성이 이를 통해 섹스 외의 다른 이익-다만 500원짜리 동전일지라도-을 원한다면 전적으로 이타적인 목적의 기관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여성이 -상대가 있든 자위행위 중이든- 욕정의 해소나 자기만족을 위해서 스스로에게 몰입할 경우에 보지는 분명 이기적인 기관이다. 물론 이런 이분법에 정답은 없다. 보지는 이타적이며 동시에 이기적인 기관이라는 말이 가장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보지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보지에 부여된 이타적인 역할이 이기적인 본래의 목적을 압도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기에 분홍색 보지에 대한 환상은 다만 성적인 취향이나 선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분홍색 보지의 우월성이 다양한 개인의 신체적 특징을 무시한다는 점, 그리고 개별 여성의 성기를 등급화한다는 점에서 이런 취향이나 선호는 위험하다. 여성의 신체와 생식기를 기계적으로 해석하고, 심지어 이런 기준을 성적 순결성 내지는 도덕성에 대한 판단근거로 적용하기도 한다는 점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각양각색 보지 파티

주디 시카고의 작품 [디너 파티]는 다양한 보지를 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종합예술작품이다. 1974년에 시카고는 ‘여성의 역사’라는 주제로 이 작품을 제작했다. 5년에 걸쳐서 서구사회에서 여성의 역사-정확히는 페미니즘의 역사-를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설치를 계속했다. 사진에서 보듯 작품은 삼각형으로 배치된 테이블로 구성되었다. 테이블 위에는 위대한 페미니스트의 이름이 각각 새겨진 식탁보가 깔려있고 그 위에는 보지와 자궁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접시가 놓여있다.


Judy Chicago [The Dinner Party] 1974-1979

이 작품은 '여성적인 이미지'나 '여성적인 감수성'을 재발견하려 노력했던 1970년대 페미니즘 미술운동의 진원이라는 평을 듣는다. 삼천포 미술관이니 슬쩍 돌아가 간단히 이야기해보자. 초기 페미니스트는 여성성에 대해서 성(sex)는 생물학적인 것이고 젠더(gender)는 문화적인 것이라 정의하여 이를 생물학적 결정론에 귀결되는 한계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들의 뒤를 이은 2세대 페미니스트는 '여성성의 고정화된 기호'에서 연속성과 변화를 보려고 시도했다. 거칠게 요약하면 남성중심의 구조에 기반해서 영원불변하는 여성성의 정수를 포착해내는 게 아니라, 고정되지 않는 여성성의 변화에 주목한다는 말이다. 주디 시카고의 [디너 파티]는 이런 움직임을 알리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6개국에서 16회 전시되었으며 백만명 이상이 관람하는 등 성황을 누렸다.

신체의 주권을 가지지 못한 여성들에게는 스스로의 신체를 재현할 도구 역시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인정한다면, 여성이 여성의 보지를 형상화한 이 작품은 수 세기 동안 재현의 대상이었던 그들 자신을 주체로 인정하고 재발견하려는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보지를 연상시키는 형상은 개별 여성의 정체성-성적 정체성을 포함한-을 드러낸다.


버지니아 울프의 테이블

- 금새라도 부서질 듯 연약하고 섬세한 모양이지만,
얇은 틈 사이로 그 내부가 속속들이 드러나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작품이 그랬듯이 말이다.

아름다운 우리들의 보지

사드의 소설에는 여성의 보지가 흉하다고 생각하고 경멸하는 남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항문에만-여성의 것이든 남성의 것이든- 자신의 자지를 삽입했다. 범접할 수 없는 변태들의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동시대를 살고있는 사람들 역시 여성기의 주름진 모양이나 색깔 따위에 집착하는 것 같다. 그런 집착과 환상이 얼마나 근거 없고 위험한지 앞에서 충분히 썰을 풀었으나 역시 보지자지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라 차라리 이런 조언이 더 의미있을 지도 모르겠다.

만약 어떤 남성이 당신의 보지가 분홍색이 아니라고 해서 싫어한다면 스스로의 보지를 원망하지 말고 그와 섹스하지 않는 편이 낫다. 세상에는 매끈한 분홍색 보지가 아니라 상대가 그곳을 통해 소통하며 흥분하고 쾌락을 느끼는 모습을 보고싶어 하는 남성들도 많은데 이런 남성을 만나서 섹스를 나누는 일이 그렇잖아도 외로운 삶에서 고통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분홍보지에 대해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남성과는 섹스를 나누지 말자는 과격한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무한한 사랑을 나눠주는 보살님이 속세에 오신다면 미천한 중생인 필자로서도 대환영이다. 다만 세상에는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남자도 있다는 거다.

"보지의 주름진 틈에는 살색 갈색 분홍색 빨강색 검은색이 섞여있어. 홀로그램처럼 어떻게 보든 신기하고 아름다워."


Judy Chicago [Georgia O’Keefe Plate] 1979

남자친구 자랑으로 칼럼을 마무리하고 싶지만 염장질의 염도를 희석하고자 작품 이야기를 한마디 더한다. 이 조각은 주디 시카고의 작품 중 하나로 미국의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를 위한 테이블에 놓인 접시이다. 이 복잡하고 섬세한 도자기조각은 그릇처럼 어떤 것을 담을 수 있지만 무언가를 담는 기능이 이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의 전부는 아니다. 복잡한 곡선과 미묘한 색채가 어우러져 만드는 각각의 형태는 그 자체로 모두 아름답다. 우리들의 보지가 -그리고 세상의 모든 자지가- 그렇듯이 말이다.

* 본 기사는 남로당(www.namrodang.com )에서 제공합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덧글

  • FA 2010/09/13 00:32 # 삭제 답글

    ㅋ 재미 있었습니다 .진실되고 ㅡㅡㅡㅡ
  • 작나무 2010/09/15 10:32 #

    아주 오래된 글인데 덧글이 달렸네요. 반갑습니다.
  • 하.. 2013/08/11 00:51 # 삭제 답글

    정말 글잘 쓰시네요. 핑크색 보지를 동경한 남자로서 생각을 고쳐먹은 1인입니다. 제여자친구도 검은갈색이라 겉으로내색은안했지만. 이런생각을 한 제가 부끄럽군요. 좋은 글 잘 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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