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노의 이름.

석노(石魯 Shi Lu 1919-1982)

그의 본명은 풍아형, 석노라는 이름은 도(石濤 Shi Tao 1642-1707)와 노(魯迅 Lu Xun 1881-1936)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니까 석노라는 이름 두 글자는, 좌파라고 말하기엔 수용가능범위가 너무 넓은 지식인 노신의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명말청초의 승려화가 석도의 화풍을 계승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인 셈이다.

+ 魯

[봉건제도와 함께 무너져라] , 목판화, 31.2 x 22 cm, 1949
Published in: Julia F Andrews and Kuiyi Shen, A Century in Crisis:
Modernity and Tradition in the Art of Twentieth-Century China
(New York: Guggenheim Museum, 1998), Pl. 127.

석노는 실제로 좌익 계열의 정치노선에 열심히 참여했던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는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40년대에는 연안정부의 미술공작단에서 활동했다. 이후에는 군중일보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는 등 정치적인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1919년에 태어난 석노에게 봉건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이름의 높은 성은 타도의 대상이었다. 그는 민중의 힘으로 그 성을 무너뜨림으로 자유로운 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믿었다.

석노 [섬서성 북쪽의 전투(前戰陝北)] 1959
 
보통의 산수화같이 보이는 위 작품은 중국 공산당의 항일전쟁을 주제로 하고 있다. 화면 속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남자는 모택동으로 1934년에 섬서성 북쪽의 연안을 근거지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중국군이 승리했던 역사적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독립운동 당시 항쟁인지 피난인지 모호한 고난의 행군을 이끌며 대장정을 마친 모택동은 공산당의 연안정부의 지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 화면에서 모택동은 산 정상에 우뚝 서 있다.
 
석노의 작품에는 정치성이 짙게 뒤덮여 있음에도 그것이 예술성을 가리지는 않는다. 중국현대미술의 위대한 대가들의 작품에서 그러하듯 말이다. 위대한 화가들에게 이데올로기는 섬세한 예술정신이 세속의 몰이해라는 거친 바람에 퇴색되지 않도록 가려주는 휘장 같다. 특히 석노의 작품은 이념미술의 획일적인 주제와 구도를 뛰어넘는다. 대담한 화면 구성과 섬세하고 서정적인 풍광이 주는 감동은 그가 진정 위대한 화가였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일깨운다.
 
+ 石
 
그러나 그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시대가 요구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문화대혁명, 중국의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이 겪었던 수모와 고낸을 석노도 피해가지 못했다.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는 강렬한 먹색이 부르조아적 퇴폐미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고 석노를 포함한 일련의 '흑화화가'들은 자아비판과 고문과 강제노동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석노는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고 유랑하다 죽었다고 한다.
 
석노의 불운한 말로는 그가 성을 따온 승려화가 석도의 말년과 유사한 것 같다. 석도라는 화가는 명 말, 황실의 왕손으로 태어났으나 명이 청으로 교체되면서 신분을 숨기고 도망하여 승려가 되었다. 석도는 승려의 신분이었지만 세속을 완전히 떠나지 못했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을 계속했다. 아래의 작품은 석도의  것인데, 승려의 복장을 하고 소나무 아래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보리수 아래 앉아 깨달음을 구하는 석가모니를 연상시키게 하는 복장으로 표현되어있다. (석도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한 단행본도 나왔다.)
 

석도(石濤 Shi Tao 1642-1707) [석사종송도(石師種松圖)], 종이에 수묵채색, 1674

이름에는 어떤 주술적인 효과가 있는 것 같다. 풍아형이 그의 예명을 '석노'라고 정한 뒤로 그는 노신처럼 전투적으로 살려했고 석도처럼 불운하게 죽었다. 정신병으로 풀려난 석로는 방랑하며 습작을 여러 점 남겼는데 작품에서 정신분열증적 징후가 보이는 자잘한 면분할이 많다. 그는 떠돌다가 1982년에 죽었다. 석노가 죽었던 해를 잊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내가 태어났던 해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그림은 석노가 그린 매화, 비운의 화가가 귀기를 담아 그린 매화에서는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다.

[매화], 종이에 수묵 채색, 105x40.7cm, 북경 중국미술관

 

by 작나무 | 2007/04/01 02:04 | 그림과글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treeart.egloos.com/tb/308617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