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곰과 함께 했던 동면의 계절은 끝나고 이제 불면의 계절이 왔나보다. 지난 서너달 동안 하루에 열시간에서 열두시간 정도를 잤는데 며칠 전 앓아누운 이후로 잠을 길게 자지 못하고 있다. 어제 낮에 두세시간쯤 눈을 붙였으나 유혈이 낭자한 꿈을 꾸다 결국 잠을 포기하고 말았다. 몇번이나 날카로운 것에 찔리고 찌르는 꿈이었는데, 그 중 최악은 나에게 달려든 길고 날카로운 송곳 같은 것을 막으려고 했으나 그것이 나의 손바닥을 뚫고 팔로 들어가 결국 팔꿈치를 뚫고 튀어나온 장면이었다. 손바닥과 팔꿈치에서 피가 뿜어져나왔고 그 붉은 색이 선명했다. 어지간해서 꿈은 무채색으로 꾸는데... (고양이 양, 이 글을 본다면 해몽부탁해. 전통적 관점도 좋고 심리학도 좋아. 너무 끔찍해서 날것으로 내버려두기가 아파.)

잠을 자지 못하니 죽어라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사실 죽어라 써야 하는데 그러다간 정말 죽을까 겁나서 미적대고 있다. 사람은 이러다가 죽는 거겠지. 어쨌든

최근 읽은 책이나 영화에 대해 적어놓은 한 두 줄의 글이라도 블로그에 적어둬야 하겠다고 마음 먹고 접속했는데 그것들을 메모해 놓은 일기장을 뒤적이기가 귀찮아졌다. 그래서 지난주의 읽고쓰기는 공개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나는 그 카테고리를 없애야한다는 생각도 들어버렸다. 그 텍스트 배설물은 냄새가 나지 않고 아무리 싸대도 항문질환을 유발할 리 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단점은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얼마 전 이런 문장을 읽었다. <세상 사람들이 영악하고 잔인하게 보이지만 사실 그들 모두 다 따듯하고 뜨겁고 서러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 - 노매드(딴지일보 관광청)의 슈리슈바님이 쓴 글인데, 정확한 원문은 아닐 것이다.- 나도 따듯하고 뜨겁고 서러운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되어야 한다.

소주는 사람을 호기롭게 만들고 포도주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라고 곰이 말했다. 당시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와인은 나에게 기막히게 연비가 높은 술이라서 행복한 단계를 넘어 호기를 부릴 수 있는 수준까지 마실 수가 없었다. 그 날 우리는 포도주 한 병을 사이 좋게 비우고 섹스도 하지 않은 채 곯아 떨어졌다. 그런데 요즘은 몇 잔 마셔도 잠이 안 온다. 취하는 기분도 잘 모르겠다.

나의 요리솜씨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 예전에 친구가 Free Hug 운동에 대해, 다른 사람을 끌어안는 행동은 상대를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락하는 일이고 그것은 결국 경계를 허무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음식을 만들어 먹이는 일은 끌어안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심지어 음식은 인체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넘나든다.

by 작나무 | 2007/05/03 06:22 | 일상잡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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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핏빛고양이 at 2007/05/03 07:25
글쎄.. 어떤 사람은 꿈 속의 날카로운 형상을 전부 페니스에 들이대기도 하지. 하지만 작나무양 자지에 두려움이라도 생긴 거야? 아닐거라 생각;; 아니면 칼이나 검, 창과 같은 것을 이성이나 지성에 비유하는 유럽 쪽의 해몽방식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식이라면 중요한 도구적 기관(?)인 팔이 지성적 타격에 의해 손상입는다.. 이건 좀 이상하다.
한국에선 유혈낭자한 꿈을 꺼리는 편이 아니지만 언제나 중요한 건 꿈 꾼 사람의 기분이야. 엄청 공포스러웠다거나 매우 아팠다거나 하면 별로 좋은 건 아닌데. 하지만 의외로 어떤 일이 얼마간의 희생을 감수하고 통쾌하게 해결되다- 같은 의미일수도 있고.
찔리고 찔렸고 피를 흘렸다-라는 반복이라면, 그저 익숙하고 만만하게 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던가. 그냥 관계가 정도 이상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에 대한 압박이라던가 SM에 대한 욕망이라던가 보다 수동공격적인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자각이라던가 그런 건 어때+_+?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7/05/15 20:06
웅웅.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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