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어로 <차이나>라는 말은 중국을 의미하며, 도자기를 부르는 때에도 쓰인다. 다른 유럽어는 모르겠지만, 아랍어의 경우도 <씨니아>라고 하면 중국, 중국의 것,이라는 뜻이고, 귀한 도자그릇을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고 한다.
마이센에서 최초의 도기-석기-를 개발하기 전까지 유럽인들은 중국의 도자기를 탐했다. 아름다운 금속기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중앙아시아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중국의 도자기를 사들였다. 이십세기 전까지 세계의 은과 금이 중국으로 흘러들어왔고, 중국의 도자기는 전세계로 흘러갔다.
2.
중국에서 도자기가 발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질좋은 태토-고령토-라는 천연자원, 고온의 화력을 낼 수 있었던 기술력, 다양한 기형을 창조하고 엄청난 수량을 제작할 수 있었던 인력까지 갖춰진 중국이 세계도자의 중요 산지로 발전할 수밖에. 여기에 조금 더 일상생활과 밀접한 이유를 하나쯤 더하자면, 중국인들이 차를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도자기의 발전은 차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물이 좋지 않은 중국에서 식수는 대개 차를 끓여 음용하는 방식으로 조달되었는데, 송대에 이르러는 국가가 차 산업을 독점하기에 이르렀다. 송나라 때의 도자발전과 차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북송대의 카이펑은 오십만 인구가 거주하는 대도시였다. 카이펑에서는 서민들도 일상생활에서 도자기를 사용했고, 그 도자기로 차를 마셨다. 중국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국가의 관리 아래에 차를 재배하는 지역이 확산되고 생산량이 증가되었다.
* 카이펑[開封(개봉)]시대가 북송(北宋)대, 1126년 정강(靖康)의 변(變)으로 강남(江南)으로 옮겨 임안(臨安:항저우 杭州)에 천도한 뒤를 남송(南宋)대라 한다. - 좀 외워라 -_-;
한 예로, 푸젠성 [福建省(복건성), Fujian] 중부의 도시 난핑 [南平(남평), Nanping] 은 송대의 대표적인 차 산지이며, 동시에 대중적인 도자기 제작지이기도 하다. 난핑 지역에서는 현재까지 당시의 도자제작 방식이 이어지고 있는데, 도자의 굽과 굽이 닿는 안쪽의 유약을 긁어내어 달라붙지 않게 한 뒤에 그릇을 포개어 쌓아굽는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그릇 안쪽에는 유약이 발라지지 않은 원형의 고리가 생기고 바닥의 굽에도 태토 그대로의 질감이 드러나게 된다. 도자기의 질은 떨어지지만 한 가마에 여러 장을 구울 수 있으니 생산량은 증가하는 방식이다.
* 복건성 도자기 참고자료 - Chinese Art from Fujian Site : http://www.yimentang.com/index2.asp
3.
이외에도 송대에 국가가 관리했던 주요 도자산지-5대 관요-와 각 산지의 도자기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여요[汝窯] ; 허난성 [河南省(하남성), Henan]에 위치. 북송 말기인 정화(政和) ·선화(宣和) 연간에 궁중의 어용품(御用品)을 구워낸 도요. 여요의 청자는 한국 고려청자를 닮은 분청색(粉靑色)이 특징. 매우 정교한 기형이나 무늬는 거의 없다.
- 균요[鈞窯] ; 뤄양[洛陽]과 카이펑[開封] 사이 남쪽에 위치. 북송 말에서부터 금,원 대에 걸쳐서 허난성 각지에서 제작. 불투명한 유약인 실투유(失透釉)를 입힌 도기가 특징. 진사(辰砂)를 이용해서 청자유 밑에 붉은 반점의 무늬, 자줏빛과 붉은빛이 나는 유약을 입히는 등 유약변화 실험을 극대화한 현대적인 미감을 보여준다.
- 정요[定窯] ; 화북지역의 가마, 유일하게 유백색의 백자 도자기를 생산했던 곳이다. 유백색의 몸체에 음각무늬를 넣는다.
- 가요, 관요 ; 흙과 유약의 팽창수축정도 차이로 빙렬 강조. 빙렬을 표현하기 위해 유약이 점점 두꺼워진다.
4.
이렇게 여러 도요에서 다양한 색과 디자인의 도자기가 발전했다. 예술이 발전하면 평론도 발전하기 마련이다. 이미 당나라 시대(760년 경)에 육우(陸羽)가 쓴 <다경[茶經]>이라는 책이 간행되었을 만큼 차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송대에는 <청자나 백자냐?>를 가지고 논쟁이 벌어진다.
도자의 발전을 기준으로 보자면 백자는 청자의 뒤를 잇는 기술혁신의 자기라고 할 수 있다. 가마의 온도도 이백도 이상 높고, 따라서 유약 속 석영이 투명한 백색을 낼 수 있다. 그러나 기술혁신이고 뭐고 황제가 한마디 하면 따라가는 거다. 휘종은 청자를 원했다.
우과천청(雨過天靑), 즉 비가 갠 뒤의 하늘과 같은 푸른색이 나는 청자가 제일이라는 황제의 말에 청자의 새로운 기법이 발전하게 된다. 궁중에 도자를 납품했던 여요에서는 재유약 위에 마노, 장석, 석회 등을 갈아넣는 방법으로 유리질을 두껍게 했다. 유리질이 두꺼워질수록 푸른 색감이 더욱 깊어진다.
자기에서 푸른색이 선호된 이유는 옥기와 청동기의 색깔이 푸르기 때문이다. 유교-성리학-의 지배체제 하에서 송대의 중국인들은 전통적인 기형과 색감으로 돌아서게 된 것 같다. 당나라 시대의 화려한 다채의 유행은 끝나고, 차분한 푸른색이 대세가 된 것이다.
대세를 따라 고려에서도 청자가 유행했는데, 하늘같은 푸른빛(비색翡色) 청자가 그것이다. 특히 두가지 태토를 이용해서 만든 상감기법은 도자기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인정한 독창적인 기법이다. 서로 다른 흙의 성질을 이용해 아름다운 무늬를 새겨넣었던 고려시대 도공들의 미감을 생각해보면, 당시 한반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사회는 지금보다 포용력있는 사회였다고 주장하는 건 조금 오바.
5.
차는 아열대성 식물이라 한반도의 기후는 차를 재배하기에 좋지 않다. 전라남도 일대에 몇 군데 산지가 있을 뿐 차가 대중적으로 소비된 역사는 길지 않다. 고전소설에 차를 약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또한 우리 할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설,추석 명절에 차례(茶禮)를 지낼 때, 큰 제사에 가보면 제삿상에 차를 끓여 내었다고 하는데, 역시 서민들이 여유롭게 차를 마시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남자친구가 말했다. 정약용의 호 다산(茶山)은 굉장히 사치스러운 이름이네. 선비가 소박하게 차를 마시는 게 아니라 부유함을 과시하는 것 같아. 검색해보니 다산이라는 호의 유래는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했던 전라남도 강진의 만덕산에서 차가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대적으로 변형된 당초문이 그려진 서양식 기형의 백자 도자기에 차를 우려 마시면서 여유롭게 차와 도자기에 대한 긴 글을 정리했다. 예전에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면서 메모했던 내용이 일기장에 남아있길래 별 생각 없이 써내려갔는데, 한자 찾아가며 변환하느라 고생했다. 한자문맹은 언제나 벗어나려나, 대략 틀린 부분 있어도 할 수 엄따. -_-; 이미지도 붙여넣고 싶지만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아 이미지 검색은 불가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