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예전에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이런 메모를 남겼었다. <색안경을 쓴 여자는 백색의 실명 상태에서 눈을 뜨고 자신이 사랑을 이야기했던 대머리에 애꾸인 늙고 주름진 남자를 본다. 그 사람의 실체를 보고, 그의 곁에 있겠노라 말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끝까지, 그들이 모두 눈을 뜨지 말았으면, 볼 수 있었던 의사의 부인도 눈이 멀어버렸으면, 하고 바랬다. 눈을 뜨고 난 다음, 길거리에 널려있는 시체들과 폐허가 된 도시와 짐승과 다를 게 없는 자기 자신을 보고 난 다음에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좋을 것인가? 작가는 일차적인 모든 욕구에 관해서 서술했다. 식욕, 성욕, 수면욕, 배설욕. 이런 기본적인 욕구가 모두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없는 현실 -지옥과 비교해서 말한 '악취'가 가득한 현실을 경험한 이들이,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인간적인 것들을 자각하고 만다면, 실체를 다시 보게 된다면,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리고 싶었을 거라고, '눈이 멀지 않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눈을 뜨게 되면서 책장이 끝난다. 작가는 그 후의 일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가장 바람직한 결말, 즉 내가 바랬던 결말은 모두가 눈이 멀어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그들 중 일부는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백색의 실명 상태로 죽어버리는 것... 하지만 그들은 눈을 떴다. 우리의 추악한 실체를 모두 경험하고 다시 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의 그 후의 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아름다운 그 여인은 노인을 사랑하며 살 수 있었을까?>
사년 전에 나는 무슨 그 사람들이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때 나는 대체 어떤 눈으로 세상을 봤던 걸까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주세 사라마구 옵하-하악하악-의 후속작을 읽고 반성했다. 삶은 계속되고 사랑은 계속되고 살아있는 자들은 삶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중학생 독서감상문 같은 경건한 글귀를 적으며, 이런 온당한 결심을 이제야 하다니 대체 중학교 때 나는 뭘 했던 건지 다시 한번 과거를 반성한다.
그리고 죽음
한 부부가 바닷가에서 살해당한다. 이 부부의 죽음 이후에 벌어지는 자연의 섭리에 대한 서사와 함께 이들의 지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서술된다. 여행지에서 읽은 책이라 강렬한 인상을 받았는데 메모가 남아있지 않아...-_-;;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일독할 것이니 후에 첨언할지도.
스타워즈
스타워즈 시리즈를 모두 봐버렸다. 후에 만들어진 전편 삼부작보다 이전에 만들어진 삼부작이 더 재미있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쓰 베이더가 되었다가 다시 스카이워커라는 이름을 되찾는 과정에 대한 긴 서사인데, 어째서인지 그 캐릭터는 별로 정이 가질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캐릭터는 요다. 남친에게 요다 갖고싶어! 요다 사줘~ 피규어 말고 진짜 요다 사줘~ 막 이러고 떼썼다. 남친이 돈 많이 벌어서 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요다가 침대 머리맡에 앉아서 나를 악몽으로부터 구원해줄 그 날이 오리라 믿고 있다.
If I were you 3
인권위원회에서 단편영화 제작을 지원해서 만들어진 이 시리즈를 모두 흥미롭게 보아왔다.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이 영화들을 비판하며 공무원들의 나태안일함과 영화계의 담합과 수주(?)경쟁에 대한 비화를 얘기해준 적이 있으나, 그럼에도 결과물은 언제나 만족스러웠고 이번에도 그랬다.
전작에 비해 이슈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년의 잠수왕이었던 태국인 청년이 한국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며 겪는 일상적인 폭력과 차별 문제를 다룬 영화와, 백인 영어강사의 흑인 딸(아버지가 흑인이다)에게 아이들이 휘두르는 잔인한 폭력에 대한 영화가 인상적이었다. 나도 외국에서 타자로 살고있기 때문에 남 일 같지가 않더라. 보통 한국인들이 한국 내 외국인 문제-문제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까?-를 주목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외에도 한국 내의 독거 소녀가장의 사랑을 소재로 하는 작품, 가족 내 성역할 문제를 다룬 작품도 재미있게 보았다. 역시 남 일 같지가 않아서 말이다.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인식한 순간부터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일이 모두 내 일 처럼 다가오는데 의식적이든 아니든 이런 각성을 하기 전보다는 낫겠지.
그런데 현실의 문제를 드러내고 조명하고 지적하는 영화의 결말에서 모호한 아쉬움을 느꼈다. 잠수왕이었던 외국인 노동자가 허름한 공중목욕탕 욕조에서 바닷 속을 보며 헤엄을 친다든지, 혼자 살아왔던 소녀의 집에 불이 났는데 소녀는 곰이 되었다든지 하는 식으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마무리된 작품이 눈에 밢혔다. 현실의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하기 불가능하다는 좌절을 겪은-또는 그저 현실을 잘 알고 있는 동시대 작가들 중 일부는 너무나 치열하게 초현실의 세계로 돌진하는 것 같다.
스톤 다이어리
캐론 쉴즈의 소설. 여성적인 글쓰기란 어떤 것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한 미국-캐나다인 여성의 탄생과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적어가는데 인물과 상황에 대한 묘사가 얼마나 치밀한지 연신 감탄하며 읽었다.
이모의 포스트모던라이프, 아이들의 훈장, 가가서리, 그산, 그 사람, 그 개 - 중국영화 찾아보고 있는데, 생각나면 다음에 메모할 것.
검의 대가
작가의 전작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작품은 예상보다 별로였다. 캐릭터를 구축하는 힘은 대단한다 이야기를 긴밀하게 엮어가는 재주는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소재도 독특하고 역사적인 고증을 거친 서사가 나쁘지는 않은데, 문제는 이야기가 맥빠진다는 것이다. 추리소설을 읽는데 서론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다면 그게 무슨 재미람.
칼은 칼집에 들어있을 때 무서운 것이다. 칼을 뽑았을 때는 무수한 방패와 화살과 검을 상대할 각오를 해야 한다. - 지인의 지인이 했다는 말인데 정말 명심해야 할 듯. 잘 삭이고 제대로 뽑아서 들이대야지 허술하면 죽는다.
예전에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이런 메모를 남겼었다. <색안경을 쓴 여자는 백색의 실명 상태에서 눈을 뜨고 자신이 사랑을 이야기했던 대머리에 애꾸인 늙고 주름진 남자를 본다. 그 사람의 실체를 보고, 그의 곁에 있겠노라 말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끝까지, 그들이 모두 눈을 뜨지 말았으면, 볼 수 있었던 의사의 부인도 눈이 멀어버렸으면, 하고 바랬다. 눈을 뜨고 난 다음, 길거리에 널려있는 시체들과 폐허가 된 도시와 짐승과 다를 게 없는 자기 자신을 보고 난 다음에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좋을 것인가? 작가는 일차적인 모든 욕구에 관해서 서술했다. 식욕, 성욕, 수면욕, 배설욕. 이런 기본적인 욕구가 모두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없는 현실 -지옥과 비교해서 말한 '악취'가 가득한 현실을 경험한 이들이,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인간적인 것들을 자각하고 만다면, 실체를 다시 보게 된다면,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리고 싶었을 거라고, '눈이 멀지 않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눈을 뜨게 되면서 책장이 끝난다. 작가는 그 후의 일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가장 바람직한 결말, 즉 내가 바랬던 결말은 모두가 눈이 멀어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그들 중 일부는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백색의 실명 상태로 죽어버리는 것... 하지만 그들은 눈을 떴다. 우리의 추악한 실체를 모두 경험하고 다시 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의 그 후의 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아름다운 그 여인은 노인을 사랑하며 살 수 있었을까?>
사년 전에 나는 무슨 그 사람들이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때 나는 대체 어떤 눈으로 세상을 봤던 걸까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주세 사라마구 옵하-하악하악-의 후속작을 읽고 반성했다. 삶은 계속되고 사랑은 계속되고 살아있는 자들은 삶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중학생 독서감상문 같은 경건한 글귀를 적으며, 이런 온당한 결심을 이제야 하다니 대체 중학교 때 나는 뭘 했던 건지 다시 한번 과거를 반성한다.
그리고 죽음
한 부부가 바닷가에서 살해당한다. 이 부부의 죽음 이후에 벌어지는 자연의 섭리에 대한 서사와 함께 이들의 지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서술된다. 여행지에서 읽은 책이라 강렬한 인상을 받았는데 메모가 남아있지 않아...-_-;;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일독할 것이니 후에 첨언할지도.
스타워즈
스타워즈 시리즈를 모두 봐버렸다. 후에 만들어진 전편 삼부작보다 이전에 만들어진 삼부작이 더 재미있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쓰 베이더가 되었다가 다시 스카이워커라는 이름을 되찾는 과정에 대한 긴 서사인데, 어째서인지 그 캐릭터는 별로 정이 가질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캐릭터는 요다. 남친에게 요다 갖고싶어! 요다 사줘~ 피규어 말고 진짜 요다 사줘~ 막 이러고 떼썼다. 남친이 돈 많이 벌어서 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요다가 침대 머리맡에 앉아서 나를 악몽으로부터 구원해줄 그 날이 오리라 믿고 있다.
If I were you 3
인권위원회에서 단편영화 제작을 지원해서 만들어진 이 시리즈를 모두 흥미롭게 보아왔다.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이 영화들을 비판하며 공무원들의 나태안일함과 영화계의 담합과 수주(?)경쟁에 대한 비화를 얘기해준 적이 있으나, 그럼에도 결과물은 언제나 만족스러웠고 이번에도 그랬다.
전작에 비해 이슈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년의 잠수왕이었던 태국인 청년이 한국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며 겪는 일상적인 폭력과 차별 문제를 다룬 영화와, 백인 영어강사의 흑인 딸(아버지가 흑인이다)에게 아이들이 휘두르는 잔인한 폭력에 대한 영화가 인상적이었다. 나도 외국에서 타자로 살고있기 때문에 남 일 같지가 않더라. 보통 한국인들이 한국 내 외국인 문제-문제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까?-를 주목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외에도 한국 내의 독거 소녀가장의 사랑을 소재로 하는 작품, 가족 내 성역할 문제를 다룬 작품도 재미있게 보았다. 역시 남 일 같지가 않아서 말이다.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인식한 순간부터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일이 모두 내 일 처럼 다가오는데 의식적이든 아니든 이런 각성을 하기 전보다는 낫겠지.
그런데 현실의 문제를 드러내고 조명하고 지적하는 영화의 결말에서 모호한 아쉬움을 느꼈다. 잠수왕이었던 외국인 노동자가 허름한 공중목욕탕 욕조에서 바닷 속을 보며 헤엄을 친다든지, 혼자 살아왔던 소녀의 집에 불이 났는데 소녀는 곰이 되었다든지 하는 식으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마무리된 작품이 눈에 밢혔다. 현실의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하기 불가능하다는 좌절을 겪은-또는 그저 현실을 잘 알고 있는 동시대 작가들 중 일부는 너무나 치열하게 초현실의 세계로 돌진하는 것 같다.
스톤 다이어리
캐론 쉴즈의 소설. 여성적인 글쓰기란 어떤 것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한 미국-캐나다인 여성의 탄생과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적어가는데 인물과 상황에 대한 묘사가 얼마나 치밀한지 연신 감탄하며 읽었다.
이모의 포스트모던라이프, 아이들의 훈장, 가가서리, 그산, 그 사람, 그 개 - 중국영화 찾아보고 있는데, 생각나면 다음에 메모할 것.
검의 대가
작가의 전작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작품은 예상보다 별로였다. 캐릭터를 구축하는 힘은 대단한다 이야기를 긴밀하게 엮어가는 재주는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소재도 독특하고 역사적인 고증을 거친 서사가 나쁘지는 않은데, 문제는 이야기가 맥빠진다는 것이다. 추리소설을 읽는데 서론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다면 그게 무슨 재미람.
칼은 칼집에 들어있을 때 무서운 것이다. 칼을 뽑았을 때는 무수한 방패와 화살과 검을 상대할 각오를 해야 한다. - 지인의 지인이 했다는 말인데 정말 명심해야 할 듯. 잘 삭이고 제대로 뽑아서 들이대야지 허술하면 죽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