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이북에 대한 추억.

예전에 대학다닐 때, 휴학하고 본격적으로 로맨스 소설을 썼던 적이 있다. 선고료 땡겨받으면 훌쩍 떠났다가 돌아와서는 다시 후루룩 쓰면 되는 속편한 한량생활에 맛들였던 거다. 반년동안 세 권을 쓰고 세 번 여행을 갔었다. (여행 안 가고 그 돈을 모아서 성형수술을 했으면 남편 직업이 달라졌을까?ㅎㅎ) 국배판 이백오십페이지 정도(삼백페이지 넘어가면 안 팔린단다..-ㅂ-;)의 글을 쓰는데 한달이면 족했으니 이건 날림이다.

그런데 아무리 날려 쓴 이야기라도 내가 쓴 글이라 생각하면 애착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실수해서 애아빠도 모른 채 낳아버린 자식새끼나 벼르고벼르고 쌩돈들여 만든 수정란아기나 내 자식이긴 마찮가진 것처럼. 그래서 가끔은 인터넷 서점에서 내 책 검색해보고 좋은 평이 담긴 덧글은 추천도 하고 그랬다. 차마 내 손으로 리뷰는 못 쓰겠더라. (아이 부끄러, 근데 다들 그럴걸?)

피디에이를 바꾸고 이전 기종과 운영체제가 바뀌어서 동호회에서 이것저것 검색을 하던 중 링크를 타고 "e-book 공유" 게시판에 접속을 하게 되었다. 절판된 책도 있고 미처 구해보지 못한 베스트셀러도 있고 그 정보의 바다에서 허겁지겁 다운로드를... 했다. 부끄럽지만 덕분에 피디에이로 이거저거 잡다하게 많이 읽었다.

그 공유 게시판에서도 예전의 버릇이 발동했다. 혹시... 싶어서 검색을 했는데 하나가 걸렸라. 아이쿠! 그 아래에는 "찾고있던 자료인데 감사합니다" 라든지 "재미있게 읽었어요" 등의 덧글이 몇 개 달려있었고 악평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은 원래 공짜에는 관대해지는 법이다, 생각하면서도 되게 흐뭇했다.(아아아아 부끄러워.)

텍스트 파일을 다운로드 받는 데 1초나 걸렸을까. 아마 다운받은 파일을 찾아서 클릭하는 내 손이 더 느렸을 것이다. 여튼 파일을 열어서 본문을 읽어봤는데... -_- 씨파.............. 이건 아니자나!!!!!

텍스트 인식 프로그램 같은 걸로 돌렸는지 오타는 별로 없었지만 쌩뚱맞게 문장 사이사이에 페이지 수가 씌여있질 않나 페이지 넘어가면 문단이 뚝뚝 끊어지고 가독성이 엉망인거다. 이거 업로드한 색휘는 정리 좀 해서 올릴 것이지 이래서 어디 읽어보겠나... 하면서, 내 손은 문단을 편집하고 있었다. =ㅂ=;

어차피 재판 찍을 일 없는 소설이고 기왕에 공유사이트에 올라간 거, 보기 좋게 편집을 한 다음에 텍스트,한글,워드 문서로 만들어서 운영자에게 기존에 있던 거 지워달라 부탁하고 이걸 올려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 아파트 팔고 전세로 옮겼다는 출판사 사장님 얼굴이 떠올랐고 결국 파일을 살포시 지워버렸다.

테트리스 하다 생각나서 한 꼭지. 그런데

만약 정식으로 출판된 책을 그 책의 저자가 인터넷 등을 이용해서 무료로 공개해버리면, 출판사에서는 저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어떤 정신나간 작가가 그런 짓을 하겠냐면... 난 먹고 살만큼 돈 벌면 해보고 싶은걸.-ㅂ-;

반대로 인터넷 상에 먼저 공개된 뒤 인기를 얻어 종이책으로 출판하게 된 경우에는 아마 출판계약 조건이 조금 다르겠지만.

내가 도장 찍어본 계약서에는 작가가 지금 계약하는 출판물과 내용이 같거나 비슷한 저작물을 출판하면 안된다든지, 작가의 저작권이나 출판사의 출판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을 때는 서로 동의를 구해야 한다든지, 하는 내용은 있었는데, 웹으로 공개하는 것도 웹출판이니까 문제의 소지가 있을까나... 흠. 흠. 잘 모르겠다.


by 작나무 | 2008/01/05 14:40 | 일상잡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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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맑음뒤흐림 at 2008/01/07 14:22
출판계약서에 '출판권의 존속기간'에서 '을의 출판권은 계약체결일로부터 몇년간 존속한다'라는 조항이 있었을 거에요. 그 기간이 지나면 저자는 그 글을 다른 출판사와 계약해서 책을 내도 되는 거죠. 물론 온라인상에 마구 배포도 가능하구요.
Commented by 미스채 at 2008/01/20 21:14
오랫만에 왔어. 여기까지 보고 놀다가. 잘 지내지? 나도 잘지내. 보고싶어.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1/22 01:12
우앙. 오랜만에 역주행이네!! 나 정말 잘 지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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