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에 지인과 밥을 먹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작나무씨는 말하는 건 페미니스트 같은데 행동하는 건 아니야."
으엥? 머리나쁜 년이 골때리는 이론서를 허겁지겁 읽어대다 보니 그간의 언행에 모순이 있었던 것일까, 조마조마하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봤다. 대답은...
"요리도 잘 하고 살림도 잘 하고 남자도 잘 챙겨주잖아."
그러니까 페미니스트는 요리 못 하고 살림 못 하고 남자 깔아뭉개는 년이라는 전제가 바닥에 깔려있는 것이었다.
그분은 일종의 칭찬으로 그런 말을 하신 것인데, 사실 내가 좀 가정적이고-ㅂ-; 여성스럽고-ㅂ-;; 배려심이 많고-ㅂ-;;; 그렇긴 하지. 음헤헤. (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부디 믿으시고 잘 아시는 분들은 그러려니 해주세요.)
부연하자면 요리를 잘 하는 건 맛난 걸 먹기 위해서고...(내가 만든 게 젤 맛있음!) 살림을 잘 하는 건 재미있어서...(싱크대 손잡이 고치고 배선정리하고 먼지 닦으면서 성취감을 느낀다 'ㅂ';;) 그리고 남자를 잘 챙겨주는 건 남자를 좋아하니까 +ㅂ+/
2.
지인은 내가 마초남자들에게 맛있는 밥 먹이고 술 따라주고 재미없는 이야기 흥미진진하게 들어주고 하는 게, 몰몬교도들이 공짜로 영어 갈쳐주며 신앙을 전도하고 다음 선거를 앞둔 부녀회장이 동네 아줌마들에게 떡을 돌리는 것과 같은 고도의 술책, 페미니스트의 떡밥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밥짓는 뒷모습을 보고 무를 자르는 도마 소리를 들었을 뿐 숫돌에 썩썩 칼을 가는 손놀림은 보지 못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페미니스트 동지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내가 밥해주고 술사주고 오랄까지 해주면서-ㅂ-; 교화시킨 마초 남자가 한둘이 아니다. 물론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념전파의 도구로만 사용할 만큼 정치적인 인간은 못 되어서... 님도보고 뽕도따고 뭐 그런 거지.
일테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시위에 대해서 남녀평등, 근로권 따위로 논쟁을 시작하면 골수 마초남자들의 반응은 이렇다. "아줌마는 집에서 밥이나 하지!"
그런데 반대로 완전 감상적 방향에서 접근해보자. "우리 엄마는 집에서 살림만 하는데 허리가 아프셔서 그나마도 힘들어 하시거등. 비정규직 아줌마들은 살림하면서 밖에서 힘들게 일하는데 돈도 제대로 못 받는다니까 넘넘 안됐다." 고 인간 대 인간의 감성으로 접근하면 "기업주는 불쌍한 아줌마들 착취하는 씹새끼"라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직장여성의 육아문제도 비슷하게 접근하면 성공한다. 힘든 아줌마들, 가여운 아이들, 여기에 남편들의 무능력함까지 더해주면, 심지어 "같은 남자로서 미안해"하는 마초도 있다. 그럴 때 "남자는 무죄, 빌어먹을 신자유주의 사회가 문제"로 돌아서면 페미니즘에 사회주의 사상까지 심어줄 수 있다.
된장녀 이야기가 유행했을 때도 마초남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접근했다. "내가 아는 어떤 언니는 골수 페미니스트라서 절대로 더치페이, 모텔비도 반반 나눠내는 훈늉한 분이셔. 근데 대한민국 보통 여자들은 맨날 남자 등골 빼먹을 생각만 하고, 몽땅 군대같은 데 보내서 이년동안 페미니즘 교육 받아야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상대로부터 "페미년들도 제법 괜찮은 구석이 있군." 정도의 감화는 이끌어낼 수 있었다.
페미니즘은 체험의 이념이기 때문에 이론보다 중요한 건 실전이라 생각한다. 공적인 담론은 남성의 언어로 접근해야 성공하지만 개인적인 관계에선 맨투맨으로 가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 언니들이 남자랑 이야기할 때 너무 공격적인 자세를 취할 때가 많아서 안타까울 때가 있는데, <요리하는 페미니스트 - 밥으로 사랑을 나누고 잠으로 이념을 나누다.> 이런 에세이 하나 써버릴까보다. (맨날 말로만. =ㅂ=;)
3.
요리하는 페미니스트는 내 이야기고, 많은 커플이 먹고사는 문제로 다투는 걸로 안다. 내가 보기엔 페미니스트가 아닌 여자들이 더 많이 싸우는 것 같다.(대개 페미니스트 언니들은 그런 걸로 안 싸울만한 남자랑 살던가 혼자 살더라)
남자가 기쁘게 집안일을 하도록 만들고 싶은 여자를 위한 팁.
부탁을 한다. 그리고 무조건 칭찬한다.
남자에게는 부탁해야 한다. 명령하면 남자는 반발한다.(여자도 그렇고 애들도 그렇다.) 그러니까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부탁, 나는 못 하지만 당신은 할 수 있을 거에효~ 해주세효~ 살짝 비굴하고 간사하게, 콧소리도 섞어서, 오키?
그리고 칭찬한다. 유리컵 하나 설거지하는데 십분 걸리면 깨끗하게 한다고 칭찬해주고, 기름묻은 접시를 물로 쓱 헹구고 끝내면 빠르게 잘 한다고 칭찬해줘라. 뒤집어진 양말을 세탁기에 넣고 세제를 콸콸 쏟아부어도 칭찬해주고, 빨래를 털지 않고 널어도 칭찬해주고, 청소기로 고속주행을 해도 칭찬해줘야 한다. 집안일 경험치가 떨어지니까 못하는 거지, 칭찬해주기 시작하면 칭찬받고 싶어서 잘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 엄마가 자식들을 조련한 방법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첫째, 진심으로 칭찬해줘야 한다는 것. 믿어지지 않겠지만 남자에게도 눈치란 게 있어서 거짓으로 칭찬하면 알아버린다. 그러니까 진심을 다 해서, 그 남자의 엉터리 집안일에서 장점을 발견해야 한다. 실제로 집안일에 재능이라곤 없는 남자에게도 뭐 하나 잘 하는 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둘째로, 절대로 남자가 마친 일을 나중에 수습하지 말 것. 남자가 개어놓은 수건 모양이 아무리 괴악하고 위태로울지라도(일단 그냥 두면 꺼내 쓰면서 남자도 자신의 문제점을 알게 된다.) 남자가 씻어놓은 컵이 아무리 더러울지라도(다른 컵 써라.) 남자가 청소한 선반에 먼지가 그대로 있을지라도(눈을 감으면 안 보인다.) 남자는 자신이 마무리한 일에 누가 손을 대면 불쾌해한다. 집안일은 협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간단한 사실을 남자가 깨닫는 데 수년이 걸릴지 수십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때까지 인내해야 한다.
칭찬하고 그냥 넘어가다 보면 결과적으로 집안상태는 불량해지겠지만 대신 평화가 찾아온다. 그까짓 집안일 뭐 대충 하고 살아도 되잖아? 라고 기준을 남자 수준으로 맞춰주면 피차에 편하다.
4.
현재 나와 안정적으로 이년째 살고있는 남자는 결코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 적어도 안티-페미니스트는 아니고 많은 정치적 사안에서 페미니즘의 이념을 지지한다.
그리고 그 남자는 잠에서 깨면 침대에 누운 채 눈도 안 뜨고, 물 좀 줘, 담배도, 라이터도, 재떨이도, 따위의 부탁을 한다. 나는 당연히 해준다. 왜냐면.... 나도 그러니까 -ㅂ-;
잠에서 덜 깨서 목이 마른데 물 마시러 나가기는 귀찮고 누가 물을 떠다주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건 누구라도 한번만 경험해보면 안다. 그러니까 우리는 먼저 일어난 쪽이 늦게 일어나는 쪽에게 서비스를 해주는 게 좋다는 합의를 한 셈이고 경쟁적으로 늦잠을 잔다. -ㅂ-;;;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의 등 밀어주고 남이 내 등 밀어주고 그럼 둘 다 시원하고 좋은데 여기서 째째하게 줄자 들고 등 넓이 재고 있으면 인생이 얼마나 깝깝한가. 그럴라면 혼자 살지. 남에게는 최선을 다하고 상대도 나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바라는 게 아니라) 것이 행복해지는 길인 것 같다. 나는 요리하는 페미니스트라 행복하다.
얼마 전에 지인과 밥을 먹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작나무씨는 말하는 건 페미니스트 같은데 행동하는 건 아니야."
으엥? 머리나쁜 년이 골때리는 이론서를 허겁지겁 읽어대다 보니 그간의 언행에 모순이 있었던 것일까, 조마조마하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봤다. 대답은...
"요리도 잘 하고 살림도 잘 하고 남자도 잘 챙겨주잖아."
그러니까 페미니스트는 요리 못 하고 살림 못 하고 남자 깔아뭉개는 년이라는 전제가 바닥에 깔려있는 것이었다.
그분은 일종의 칭찬으로 그런 말을 하신 것인데, 사실 내가 좀 가정적이고-ㅂ-; 여성스럽고-ㅂ-;; 배려심이 많고-ㅂ-;;; 그렇긴 하지. 음헤헤. (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부디 믿으시고 잘 아시는 분들은 그러려니 해주세요.)
부연하자면 요리를 잘 하는 건 맛난 걸 먹기 위해서고...(내가 만든 게 젤 맛있음!) 살림을 잘 하는 건 재미있어서...(싱크대 손잡이 고치고 배선정리하고 먼지 닦으면서 성취감을 느낀다 'ㅂ';;) 그리고 남자를 잘 챙겨주는 건 남자를 좋아하니까 +ㅂ+/
2.
지인은 내가 마초남자들에게 맛있는 밥 먹이고 술 따라주고 재미없는 이야기 흥미진진하게 들어주고 하는 게, 몰몬교도들이 공짜로 영어 갈쳐주며 신앙을 전도하고 다음 선거를 앞둔 부녀회장이 동네 아줌마들에게 떡을 돌리는 것과 같은 고도의 술책, 페미니스트의 떡밥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밥짓는 뒷모습을 보고 무를 자르는 도마 소리를 들었을 뿐 숫돌에 썩썩 칼을 가는 손놀림은 보지 못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페미니스트 동지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내가 밥해주고 술사주고 오랄까지 해주면서-ㅂ-; 교화시킨 마초 남자가 한둘이 아니다. 물론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념전파의 도구로만 사용할 만큼 정치적인 인간은 못 되어서... 님도보고 뽕도따고 뭐 그런 거지.
일테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시위에 대해서 남녀평등, 근로권 따위로 논쟁을 시작하면 골수 마초남자들의 반응은 이렇다. "아줌마는 집에서 밥이나 하지!"
그런데 반대로 완전 감상적 방향에서 접근해보자. "우리 엄마는 집에서 살림만 하는데 허리가 아프셔서 그나마도 힘들어 하시거등. 비정규직 아줌마들은 살림하면서 밖에서 힘들게 일하는데 돈도 제대로 못 받는다니까 넘넘 안됐다." 고 인간 대 인간의 감성으로 접근하면 "기업주는 불쌍한 아줌마들 착취하는 씹새끼"라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직장여성의 육아문제도 비슷하게 접근하면 성공한다. 힘든 아줌마들, 가여운 아이들, 여기에 남편들의 무능력함까지 더해주면, 심지어 "같은 남자로서 미안해"하는 마초도 있다. 그럴 때 "남자는 무죄, 빌어먹을 신자유주의 사회가 문제"로 돌아서면 페미니즘에 사회주의 사상까지 심어줄 수 있다.
된장녀 이야기가 유행했을 때도 마초남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접근했다. "내가 아는 어떤 언니는 골수 페미니스트라서 절대로 더치페이, 모텔비도 반반 나눠내는 훈늉한 분이셔. 근데 대한민국 보통 여자들은 맨날 남자 등골 빼먹을 생각만 하고, 몽땅 군대같은 데 보내서 이년동안 페미니즘 교육 받아야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상대로부터 "페미년들도 제법 괜찮은 구석이 있군." 정도의 감화는 이끌어낼 수 있었다.
페미니즘은 체험의 이념이기 때문에 이론보다 중요한 건 실전이라 생각한다. 공적인 담론은 남성의 언어로 접근해야 성공하지만 개인적인 관계에선 맨투맨으로 가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 언니들이 남자랑 이야기할 때 너무 공격적인 자세를 취할 때가 많아서 안타까울 때가 있는데, <요리하는 페미니스트 - 밥으로 사랑을 나누고 잠으로 이념을 나누다.> 이런 에세이 하나 써버릴까보다. (맨날 말로만. =ㅂ=;)
3.
요리하는 페미니스트는 내 이야기고, 많은 커플이 먹고사는 문제로 다투는 걸로 안다. 내가 보기엔 페미니스트가 아닌 여자들이 더 많이 싸우는 것 같다.(대개 페미니스트 언니들은 그런 걸로 안 싸울만한 남자랑 살던가 혼자 살더라)
남자가 기쁘게 집안일을 하도록 만들고 싶은 여자를 위한 팁.
부탁을 한다. 그리고 무조건 칭찬한다.
남자에게는 부탁해야 한다. 명령하면 남자는 반발한다.(여자도 그렇고 애들도 그렇다.) 그러니까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부탁, 나는 못 하지만 당신은 할 수 있을 거에효~ 해주세효~ 살짝 비굴하고 간사하게, 콧소리도 섞어서, 오키?
그리고 칭찬한다. 유리컵 하나 설거지하는데 십분 걸리면 깨끗하게 한다고 칭찬해주고, 기름묻은 접시를 물로 쓱 헹구고 끝내면 빠르게 잘 한다고 칭찬해줘라. 뒤집어진 양말을 세탁기에 넣고 세제를 콸콸 쏟아부어도 칭찬해주고, 빨래를 털지 않고 널어도 칭찬해주고, 청소기로 고속주행을 해도 칭찬해줘야 한다. 집안일 경험치가 떨어지니까 못하는 거지, 칭찬해주기 시작하면 칭찬받고 싶어서 잘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 엄마가 자식들을 조련한 방법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첫째, 진심으로 칭찬해줘야 한다는 것. 믿어지지 않겠지만 남자에게도 눈치란 게 있어서 거짓으로 칭찬하면 알아버린다. 그러니까 진심을 다 해서, 그 남자의 엉터리 집안일에서 장점을 발견해야 한다. 실제로 집안일에 재능이라곤 없는 남자에게도 뭐 하나 잘 하는 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둘째로, 절대로 남자가 마친 일을 나중에 수습하지 말 것. 남자가 개어놓은 수건 모양이 아무리 괴악하고 위태로울지라도(일단 그냥 두면 꺼내 쓰면서 남자도 자신의 문제점을 알게 된다.) 남자가 씻어놓은 컵이 아무리 더러울지라도(다른 컵 써라.) 남자가 청소한 선반에 먼지가 그대로 있을지라도(눈을 감으면 안 보인다.) 남자는 자신이 마무리한 일에 누가 손을 대면 불쾌해한다. 집안일은 협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간단한 사실을 남자가 깨닫는 데 수년이 걸릴지 수십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때까지 인내해야 한다.
칭찬하고 그냥 넘어가다 보면 결과적으로 집안상태는 불량해지겠지만 대신 평화가 찾아온다. 그까짓 집안일 뭐 대충 하고 살아도 되잖아? 라고 기준을 남자 수준으로 맞춰주면 피차에 편하다.
4.
현재 나와 안정적으로 이년째 살고있는 남자는 결코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 적어도 안티-페미니스트는 아니고 많은 정치적 사안에서 페미니즘의 이념을 지지한다.
그리고 그 남자는 잠에서 깨면 침대에 누운 채 눈도 안 뜨고, 물 좀 줘, 담배도, 라이터도, 재떨이도, 따위의 부탁을 한다. 나는 당연히 해준다. 왜냐면.... 나도 그러니까 -ㅂ-;
잠에서 덜 깨서 목이 마른데 물 마시러 나가기는 귀찮고 누가 물을 떠다주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건 누구라도 한번만 경험해보면 안다. 그러니까 우리는 먼저 일어난 쪽이 늦게 일어나는 쪽에게 서비스를 해주는 게 좋다는 합의를 한 셈이고 경쟁적으로 늦잠을 잔다. -ㅂ-;;;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의 등 밀어주고 남이 내 등 밀어주고 그럼 둘 다 시원하고 좋은데 여기서 째째하게 줄자 들고 등 넓이 재고 있으면 인생이 얼마나 깝깝한가. 그럴라면 혼자 살지. 남에게는 최선을 다하고 상대도 나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바라는 게 아니라) 것이 행복해지는 길인 것 같다. 나는 요리하는 페미니스트라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