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의 코끼리 섬 꼬 창에는 인디펜던트 보-INDEPENDENT BO- 라는 이름의 요란한 방갈로가 있다. 처음 그곳에 도착했을 때 만난 사람은 피오나였다. 방이 있냐고 묻자 그녀는 우리를 이끌고 복잡한 계단을 지나 요란한 문을 열어보였다.

나무로 만든 허술한 방갈로에는 구석구석 원색적인 그림이 채워져있었다. 피오나가 보여준 방의 전면에는 나무가 한 그루 큼직하게 그려져있었고 다른 벽에도 야자수와 대마의 생생한 줄거리와 잎이 짙은 초록색으로 그려져있었다. 얇은나무로 된 창문에 하늘이 그려져있고 그 아래로 작은 도마뱀-게코 한마리를 그려넣었다.

나는 이 요란한 그림에 매료되어서 허술한 시설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머무르겠다고 결심했다. 게다가 그 방의 숙박비는 유흥지인 이 섬에서 드물게 저렴했다.
짐을 풀고 나가자 피오나가 숙박부를 내보이며 말했다. 내 이름은 피오나, 당신의 이름을 적어줘. 풀네임을 적을 필요는 없어. 내가 부를 수 있는 이름이면 족해. 숙박부는 화려하게 장식된 실내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회색 표지의 노트였다. 어느 사무용품점에서나 쉽게 구입할 수 있을 단순한 장부.
내가 이름을 적자 그녀는 다시 말했다. 맥주는 여기 냉장고 안에 있어. 소프트드링크는 저쪽 냉장고에 있고. 원하는대로 꺼내 마시고 장부에 기입하면 아침에 내가 체크할 거야. 방값과 함께 지불하면 돼. 그녀의 발음은 영어교재 테이프에 녹음되어도 좋을만큼 분명했고 말하는 속도는 그보다 훨씬 느렸으며 사용하는 어휘는 거의 기초적인 단어였다. 나는 그녀에게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었다. 스코틀랜드.
피오나는 다시 유행이 돌아오려면 삼십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은 두꺼운 청바지와 청재킷을 입고 있었다. 짧게 자른 붉은 머리카락은 어딘가 부스스했고 깊숙한 눈매에는 굵은 주름이 잡혀있었다. 작고 마른 얼굴과 가늘고 날카로운 콧날 아래로 찌푸린듯한 얇은 입술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잡혀있었다. 그녀는 두꺼운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장부에 적힌 이름을 보고 읽었다. Mari.
나는 무언가 먹을 것을 주문할 수 있겠느냐 물었다. 그녀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는데 그녀의 가는 입술에서 튀어나온 impossible이란 답은 너무나 단호해서 나는 내가 절대 부탁해서는 안 될 것을 부탁한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고 말았다. 그녀의 뒤이은 말은 몹시 친절했다. 저녁 여섯시쯤에 함께 할 디너가 준비될 거라고, 그리고 그건 무료라고. 나는 기꺼이 서너시간의 배고픔을 참기로 했다.
방갈로는 해변의 중심지에서 한참 떨어져 외진 곳에 있었다. 방갈로 앞으로 나름 프라이빗 비치라고 할 수 있는 작은 백사장이 있었지만 남자 둘이 누워 선탠을 한다면 다른 사람이 지나갈 수 없을만큼 협소한 공간이었다. 게다가 밀물때에는 그나마의 모래도 물에 잠기고 말았다. 땅으로 치면 좁은 곳이었지만 바다로 치면 너른 곳이었다.

영롱하게 파란 바닷물에 잠겨서 헤엄을 치고 햇살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방갈로로 올라왔다. 정확히 여섯시 십분 전이었다. 방갈로의 식탁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앞에서 보기에 방갈로는 매우 작은 규모였는데 어디서 그렇게 많은 투숙객이 나온걸까 의아할만큼.
맥주를 한 병 꺼내들고 프랑스인 부부 옆자리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아줌마가 말을 걸었다. 비쩍 마른 몸에 갈색 반점이 있는 창백한 피부 때문에 예민하고 성마른 사람일거란 느낌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친근하게 굴었고 연신 웃어대었고 지나치게 수다스러웠다.
나는 언제나 프랑스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일이 곤혹스러웠는데 이 아줌마의 경우는 조금 더했다. 그녀는 프랑스인 특유의 비음 섞인 발음으로 아주 빠르게 이 섬의 아름다움과 태국여행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그랬을 거라고 추측한다.) 내가 정확히 이해했던 이야기는 그녀가 이년전에 이 섬에 왔을 때도 이 방갈로에 묵었는데 그때보다 지금의 규모가 훨씬 커졌다는 사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스모킹이 매우 쉽다는 것이었다. 스모킹이 담배를 의미하는 건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숨을 쉬었다. 분명히 톡쏘는 자극적인 냄새가 어디선가 풍겨왔다.
식사는 튀긴 닭과 채소, 태국식의 야채볶음과 밥이었다. 둘러앉은 여행자들은 다들 무척 많이 먹었다. 배낭여행자들은 누구나 궁기가 들리는지 공짜로 제공되는 음식은 미친듯이 먹어대었다. 물론 배고픔을 참으며 몇시간동안 바다에서 헤엄을 쳤던 나도 그랬고 말이다. 그 테이블에서 가장 적은 양의 음식을 집어들고 그나마도 남긴 사람은 프랑스인 아줌마였다. 아줌마는 음식이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느라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그 음식은 물론 허기진 나에게는 매우 맛있었지만 그녀의 말처럼 great나 wonderful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배부르게 먹었으니 술을 마실 시간이었다.
나의 배낭에는 100 PIPERS 라는 이름의 스카치위스키가 한 병 있었다. 이름의 파이퍼는 스코틀랜드의 파이퍼, 포장상자에는 파이프를 불고있는 스코틀랜드 남자들이 그려져있다. 전에 깐짜나부리에 머무를 때는 늘 BLUE라는 이름의 몰트위스키를 마셨다. 그런데 6주정도 머무르면서 그곳 편의점에 있던 열두병의 몰트위스키를 모두 마셔버린 뒤로 물량이 더 들어오지 않아 할 수 없이 구입한 스카치위스키였다. 게다가 거의 매일 술을 사러 가느라 낯이 익은 편의점 점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반적인 700밀리리터 병이 아니라 대용량 1리터짜리를 건네주는 바람에 그냥 사들고 왔다가 다 마시지 못한 것. 위스키를 꺼내와서 태국인들이 하듯이 얼음에 위스키와 소다수를 타마시기 시작했다.
나의 옆자리에는 뚱뚱한 태국인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무기력한 표정으로 맥주를 마시면서 나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의 영어는 주로 명사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가 나열한 명사 사이의 관계를 추측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먹은 저녁을 만든 요리사이고 그의 이름은 오웬이며 그의 성은 보. 그러니까 인디펜던트 보의 보는 그의 이름이었던 셈이다. 당신이 이곳의 주인이로군. 그래. 형제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지. 그럼 인디펜던트는 무슨 의미? 그저 인디펜던트. 그런 식의 대화.
그곳은 그의 말대로 독립된 공간이었다. 파도소리를 가릴 수는 없었지만 주변의 다른 소리는 충분히 묻어버릴만한 볼륨으로 하드락이 흘러나오고 술에 취한 사람들과 대마에 취한 사람들이 무력하게 웃어대는 공간. 이 무기력함은 한 여성의 등장으로 완전히 전복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린다. 아리안계의 혈통이 섞였는지 커다란 눈망울과 또렷한 이목구비가 조각처럼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그녀가 입은 순백색의 원피스와 어깨에 걸친 숄은 다갈색 피부를 더욱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했다. 그녀는 큰 목소리로 연신 웃으면서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린다는 방콕의 한 호텔에서 댄서들의 매니저로 일한다고 했다. 그녀의 동행이었던 중년의 백인 아저씨들은 호텔의 관계자들로 그녀의 보스라고 했다. 휴가 차 온 것인지 일 때문에 온 것인지는 묻지 않았지만 린다는 그 백인 아저씨들을 접대하는 입장으로 보였다. 그녀는 우리의 대화가 모두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지만 백인 아저씨들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새처럼 가볍게 입술을 부딪힌 뒤에 그녀의 가느다란 혀가 내 입술 사이로 스르르 밀려들어왔다. 미녀의 기습키스를 받는 일은 나쁘지 않았으나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그 돌발적인 상황을 설명하면서, 나는 아름다운 소녀들을 사랑해, 라고 말했다. 미녀로부터 아름다움을 인정받은 기분은 더욱 나쁘지 않았으나 역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키스가 그녀의 만족이나 나의 만족과는 무관한 것이었으리라 짐작한다.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서아시아 계통의 성숙한 여성과 누르스름한 피부를 가진 동아시아의 어린-사실은 어리게 보일뿐인- 소녀의 농밀한 입맞춤은 레즈비언 포르노에서나 나올만한 광경이었다.
실제로 린다의 동행인 백인 아저씨들의 표정은 조금 더 흐뭇해졌고 린다는 의기양양해졌다. 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해서 린다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에 동참함으로 나도 역시 공범이 되었다. 우리는 당신들이 보고자하는 것을 알고 있지. 린다와 나는 그렇게 음험한 키스를 몇 차례 더 나누었다.
나는 춤을 추었다. 린다도 춤을 추었다. 음악은 나른한 하우스로 바뀌었고 바에서 술을 마시던 다른 백인들도 두 동양 여성이 몸을 흔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린다와 나는 춤을 추다가 키스를 했고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다시 춤을 추었다. 린다의 의도대로 그녀의 일행이었던 백인 아저씨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는 가볍게 몸을 부딪히기도 했는데 분위기가 수습할 수 없을 지경이 되기 전에 나는 그만두었다.
내가 자리에 돌아와 앉자 그 아저씨도 자리에 앉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햇살에 붉에 달아오른 주름지고 늘어진 그의 피부와 적당히 그을렸지만 탄력있고 매끄러운 나의 피부를 비교해보면 그가 나에게 매우 매우 고맙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오만하게 미소지었다. 참으로 어리석은 미소였다고 생각한다.
그와 흡사한 상황의 다른 남성 둘도 분명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 세명의 늙은 백인 남성은 아마도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할 값비싼 리조트에서 묵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묵고 있는 바람이 새는 값싼 방갈로에서 밤을 보내기에는 너무 늙은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고 대마를 피우고 춤을 추는-그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바에서 함께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한 것 같다.
그 바에 함께 있던 다른 백인 젊은이들은 백인 아저씨들과 어울려주지 않았다. 그 독일인 아저씨들과 함께 어울린 젊은이는 한국인 커플 뿐이었다. 나는 춤을 춰주었고, 나와 동행의 남자는 대화를 해주었다. 실제로 그들은 이런 자리에서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 왔다. 북한이냐 남한이냐? 남한이다. 그리고 난 뒤에 남북정세와 통일에 대한 정치적 의견을 토론하는 일은 인디펜던트 보에 어울리는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가고 평화가 찾아왔다. 전쟁이나 통일이나 미국의 압박은 사라지고 하드락과 마리화나와 여자를 유혹하는 남자의 과장된 몸짓과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의 절제된 몸짓만이 남았다. 이런 것이 진정한 평화일까를 생각하는 동양인 여자는 혼자 위스키를 마셨다. 어느새 위스키병이 비었고 태국인들이 즐겨마시는 럼주가 나왔다.
쌩솜. 그것은 이곳의 주인인 오웬이 호기롭게 꺼내준 것이었다. 그는 그 달콤한 술에 콜라를 섞어서 마셨고 나의 잔에 연거푸 따라주었다. 하지만 나는 달콤한 맛이 나는 럼주를 좋아하지 않았고 특히 쌩솜의 도안은 맘에 들지 않았다. 나는 코끼리가 그려진 맥주 창을 꺼내왔다.
창 맥주의 마크에는 분수처럼 솟아오른 나무 도안 아래 코끼리 두 마리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모양이 그려져있다. 그는 이 아이콘의 코끼리가 맘에 들어. 라고 말했다. 그러자 피오나가 말했다. 아이콘이 아니라 심볼이야. 컴퓨터 때문에 사람들이 아이콘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아이콘 다르게 말하자면 이콘은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형상을 말하는 거야. 그 마크는 그냥 심볼이야.
스코틀랜드 식 억양으로 들으면 아무리 친절한 설명이라도 강의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감히, 나도 알아요. 나는 도상해석학-iconology-을 배웠어요, 나는 러시아 정교회의 이꼰화를 좋아해요,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꼬창은 왜 코끼리 섬이라는 이름을 가졌나요? 피오나는 안경을 벗고 말했다. 섬의 모양이 코끼리를 닮았거든. 조감도로 그러니까 지도에 그려진 모양이 아니라 육지에서 본 모양이 코끼리의 목과 등의 모양을 닮았어. 역시 스코틀랜드식 억양으로 들은 이 말은 노트에 적어야 할 것 같았다.
꼬 창:코끼리 섬. 조감도가 아니라 섬의 단면이 코끼리의 모양을 닮았다고 함.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곳에는 대장금을 좋아하는 큰형님 보, 요리사인 둘째 오웬, 건들거리지만 몸매가 끝내주는 조나단, 태국인 삼형제와 독일 출신의 히피 아티스트 프랭크, 고지식한 스코틀랜드 출신 여성 피오나가 있었다. 그리고 마리화나에 취한 프랑스인 부부와 중년의 독일인을 끌고왔던 화려한 언니 린다가 놀다갔었다.
그리고 그리고, 친절하지만 번번이 여자에게 채이는 순박한 덴마크 청년 로니, 로니가 점찍었던 여자를 늘 채어가는 미국인 마이클, 로니에게 코끼리 모양 튜브를 선물받은 다음 날 마이클의 방에서 잠들었던 독일인 처녀 조앤, 조앤에게 언제나 영어로 말해,라고 윽박지르듯 말했으며 어떤 남자와도 섹스하지 못했던 영국인 앨리가 있었다.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더 적어내려갈 수 있을까. 기억이 아득하다.
20061226 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