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와의 하룻밤.

하나뿐인 동생은 동물을 광적으로 극적으로 좋아한다. 그는 스무해를 채 살기도 전에 이미강아지,고양이,병아리,토끼,거북이,이구아나,잠자리,개미,달팽이,사슴벌레,메기 따위를 거실에 풀어놓았던 전적이 있다. (아,메기는 대야에 풀어놨다.)

무턱대고 동물 들이기에는 나도 상당한 전적이 있으나 어느 정도 철이 든 뒤에는 직접 행동에 나서 부모님의 눈총을 사는 대신우회작전을 택했다. 동물을 사들이기엔 용돈이 부족한 동생에게 뒷돈을 찔러주거나, 동생이 동물을 껴안고 잠입하는 순간 시시콜콜한대화를 신청해서 엄마의 눈치 레이다를 교란시키거나, 동물의 존재를 파악하고 분노한 엄마가 동생에게 실컷 잔소리를 늘어놓고 난 뒤풀이 죽은 때를 노려 저 불쌍한 짐승을 어찌 내다버리겠냐고 첨언을 한다거나.

동생이 어느날 검은 고양이 한마리를 주워왔다. 아주 작은 새끼고양이였다. 동생은 이전에 그 녀석이 동네 화단에서 비틀비틀걷는 모습을 목격하였으나 차마 데려오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주일 뒤 동네 꼬마들이 바로 그 고양이를 둘러싸고 막대기로찌르고 돌을 던지는 광경을 보고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내 동생은 덩치가 크다. 같이 다니면 어지간한 양아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넘이 조수석에 앉으면 사이드미러가 잘 안보이기때문에 나는 언제나 동생에게 운전을 맡겼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운전에는 전혀 재능이 없다 -_-;) 여튼 그 덩치가달려들자 동네 꼬마들은 겁을 먹고 도망, 동생은 고양이를 냉큼 주워들고 집으로 달려왔다.

고양이의 검은 털은 지저분했다. 생후 삼사주 정도 지난 아주 작은 새끼였다. 나는 동물병원으로 달려갔고 고양이용 젖병과 분유를사들고 돌아왔다.(시판 우유 먹이면 설사한다. 고양이나 강아지용 분유가 따로 있다.) 그 동안 동생은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열심히 고양이를 수건으로 문질러주고 있었다.

엄마는 동생과 내가 고양이를 들여놓은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젖병을 물릴 줄도 모르는 꼴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두 자식을 키워낸 프로페셔널 마마가 소독해주신 젖병은 퍼펙트, 구멍을 뚫어주신 젖꼭지는 그레이트, 뜨끈한 물에 풀어놓은 분유온도는 원더풀, 냥이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텀을 두면서 젖을 물리는 솜씨는 러블리.

우리는 고양이의 작명을 위한 토론을 시작했다. 동생과 나의 지저분한 토론에 어떤 이름들이 거론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최종의 결론은 <마오>였다. 고양이를 뜻하는 한자 描의 중국어 발음이 <마오>였기 때문이다. 동생과 나는 중국어 기초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당시에는 사전을 뒤져 얻은 단어에 자부심까지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고양이를 고양이라 부르는 게 무슨 작명인가 싶다.)

마오는 젖을 먹었고 소리 내어 울었고 내 손바닥 위에 올라앉아 꾸벅꾸벅 졸았고 동생에게 이를 드러내며 매달렸으며 어머니의 발걸음을 부지런히 따라다녔고 아버지의 가죽구두에 싸움을 걸었다. 그렇게 하룻저녁이 지났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작은 바구니를 하나 내어 주었는데 아마도 얇은 수건이 깔린 그 바구니는 추웠던 것 같다. 그 밤의 어느 순간에 마오는 동생의 침대로 파고들었고 아침에 동생의 등 뒤에서 납작하게 눌린 채 발견되었다. 앞에서 썼듯이 동생의 덩치는 상당히 크다.

나는 마오가 암컷이었는지 수컷이었는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성묘가 되기 전에는 생식기가 돌출되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 봐서는 잘 알 수가 없다.) 얼어붙은 땅을 모종삽으로 후벼파면서, 눈물콧물을 목도리로 닦아내면서,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마오는 암컷으로도 수컷으로도 자라지 못하고 죽었으니까 사실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다.

레비가 키우는 까만 고양이 레비주니어를 보면 우리 마오 생각이 난다. 마오가 오래 살았더라면 꼭 그런 모습이었을텐데. 가끔 길고양이 중 까만 털을 입은 녀석들을 보면 또 마오 생각이 난다. 단 하룻밤을 함께 살았을 뿐인데 그 하룻밤이 잊혀지지 않는다.

길에서 본 까만 고양이. 우리 마오 사진은 없다.

함께 살았던 고양이에 대한 동거인의 글.
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 1
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 2
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 3

by 작나무 | 2008/01/22 00:50 | 봄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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