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장미
팔불출 집사의 탈을 뒤집어쓰고 벗을 생각을 않는 작나무의 눈에 어느 고양이가 예쁘지 않겠냐마는 장미에게는 아주 특별한 매력이 있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심지어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장미와 함께 십여분의 시간을 보내면 선입관에 변화가 생긴다. 묘신님이 역사하시는 놀라운 은총은 눈으로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의 고백을 열거해본다.
나도 고양이 기를래요. - 19세 W양
장미 새끼 낳으면 한 마리만 줘. - 37세 J언니
이런 고양이라면 키울만 하겠어요. - 30세 G군
우리 고양이도 장미 같았으면... - 42세 S씨
장미... 제가 데려갈게요! - 작나무 +ㅂ+;;
이런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카리스마 고양이 장미는 장미여사님의 자랑이며 자존심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순하면서 도도하고 영리하고 듬직하며 요구사항이 확실하지만 애교도 확실하며 호기심이 많은 만큼 조심성도 많은 백퍼센트의 고양이 장미가 우리 집에 온 지도 한달이 되어간다.
잠결에 얼결에 시집와서 어리버리한 흰둥이 남편을 만나서 고생이 많았다 ;ㅅ;

2. 봄봄
처음 봄봄을 보았을 때 나는 그의 오드아이에 눈이 멀었고 하얗고 보드라운 털에 손이 떨렸다. 그러나 봄봄의 실체는 개냥이었다.
그 덩치로 무릎 위에 올라앉아 집사의 종아리에 감각이 사라지고 발가락이 차가운 소세지로 변할 때까지 뜨끈한 콧김을 뿜어내며 만져달라고 떼를 쓰는 응석받이 고양이, 화장실 모래는 박박 긁어서 온 집안에 흩뿌리고 그 옆에 둔 모래봉투까지 쏟아놓고 모래먼지를 폴폴 날리면서 뛰어다니는 미운 세살 고양이, 거울을 보고 말을 걸고 이불을 살포시 물고 베개를 상대로 붕가붕가를 해대는 음란 고양이(주인을 닮은 게지... -_-;) 사람이 옆에 없으면 잠을 못자서 작업실로 건너와 앵앵대며 보채는 통에 작나무의 수면주기를 직장인에 가깝게 변화시키고 낮에는 아예 책상 위에 자리잡고 누워서 말똥말똥 바라봐서 담배도 맘대로 못 피우게 하는 건강지킴이 고양이(아놕.. 아빠보다 고양이가 더 신경쓰이는 건 뭐래 -_-;;;)
봄봄을 돌보다 보면 애를 하나쯤 낳아도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 강아지 당통과의 하룻밤
춘절 전야의 어느 밤, 강아지 <쌩 베르나르 당통 오귀스트 베르베르>가 나를 따라왔다. 원래 우리집에서 키웠던 강아지였으나 워낙 발랄한 성격이라 아파트에선 감당이 안돼 마당이 있는 장미여사 댁에서 기르기로 했었는데, 전 주인에 대한 사랑은 여전해서 밤길에 언놈이 작나무를 습격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인지 우리집까지 따라와버린 것... 아니면 그저 산책하고 싶었던 걸지도 -ㅂ-;
아무리 조용한 동네라도 폭죽이 언제 터질지 모를 위험이 있는 춘절연휴 기간이라 강아지만 내보내기 불안하여 그 댁에 전화를 하고 강아지를 하룻밤 우리집에서 재우기로 했다. 당통이 집안으로 들어오자 구면인 장미는 아무 거리낌 없이 당통에게 접근했다. 장미는 당통에게 다가가서 엉덩이 냄새맡고 놀자고 시비걸고 신나게 추격전을 벌였다.

그런데 장미가 당통과 활기차게 어울려 놀았던 그 시간

잔뜩 겁에 질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하악질을 해대면서...
4. 봄봄의 상처
춘절 연휴, 동거인이 없는 틈을 타서 그동안 잠잠했던 작나무의 외박이 계속되었다. 새벽까지 술을 쳐마시고 아무데서나 퍼져자고 대낮에 일어나 집으로 돌아와서 옷도 안 갈아입고 다음 술약속을 잡은 뒤 밤외출을 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고양이 두 마리가 함께 있으니 외롭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며 밥,물,모래만 챙기고 나갔는데 어느날 집에 돌아와보니 봄봄의 하얀 콧잔등에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상처가 생긴 경위를 유추해보니 세 가지 가설이 나왔다.
A. 그루밍하다 지 콧잔등을 지가 긁었다.(그렇게 바보는 아니다.)
B. 집안의 어딘가 위험한 물건에 긁혔다.(그 정도로 바보도 아니다.)
C. 장미한테 까불다가 긁혔다.
몇 번의 섹스 이후로 장미의 발정은 완전히 멈췄고 요즘 장미는 평소의 두세배가 넘는 음식을 먹어대고 있다. (응가도 두세배로 배출...) 작나무와 장미여사는 장미가 임신한 것이 확실하다고 믿고있으나 봄봄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그래도 장미보다 덩치가 크고 근력도 좋으니 함 해보자고 덤벼들었다가 제대로 한 대 얻어맞았을 그 상황이 눈에 그려진다. 이넘아... 붕가붕가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5. 마님과 머슴
콧등상처사건 이후로 장미와 봄봄의 관계는 마님과 머슴의 관계라고 할까. 봄봄도 장미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건지 아니면 맞을까봐 무서워서 더이상 들이대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개냥이로서의 본분을 다해 충직하게 장미를 모신다.
장미가 늘어져 자고 있는데 침입자가 나타날까 경계보초를 서질 않나, 저도 고양이라고 낮잠을 퍼자다가도 장미가 나타나면 배를 드러내고 발랑 눕기 애교를 보여주질 않나, 하는 짓이 귀엽다. 진작에 좀 잘할 것이지 꼭 한 대 맞고 정신을 차린다.

마님 장미와 머슴 봄봄의 단란한 사진이다. 장미의 카리스마는 임신한 뒤 더욱 빛을 발하는데 우리 봄봄이는 갈수록 맹구가 되어간다. 얘들의 아기들은 어떤 녀석들일까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