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

간밤의 기묘한 꿈. 예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꿈에서 돌아가셨다. 나는 파란색 도포와 하얀 바지를 입고 무당이 쓸 것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고 우리 엄마도 역시 무속적인 알록달록 빨간 옷을 입고있었다. 예전에 연애했던 남자가 와서 함께 술을 마시다가 그가 술을 쏟아서 그 술상을 들고 밖으로 나갔는데 어째서인지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핸드폰이 휘어졌다. 술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 손에는 고무찰흙처럼 구부러진 바형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그걸 반대 방향으로 펴려고 했는데 뚝 부러지고 말았다. 핸드폰이 부러진 자리에서 피가 철철...

꿈에서 피 본 날에는 침대에서 뒹굴뒹굴 졸면서 좋은 꿈을 꿀 때까지 잠을 자야 하는데, 오늘은 집안일을 하느라 하루종일 분주했다. 그동안 한국에 가 있었던 동거인이 내일이면 돌아오는데 어수선한 집안꼴을 보여주긴 싫었단 말이지.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같은 날 가정부 아줌마가 일이 있어서 일찍 들어가보셔야 한다고...

망가진 커튼걸이를 보수하려다 포기하고 대충 줄을 묶어서 커튼을 달고 먼지 먹은 커튼은 떼어내고 고양이털로 뒤범벅된 침구를 세탁기에 돌리고 베갯보랑 이불보랑 침대보랑 새걸로 갈아씌우고 수납장 정리해서 어수선한 것들 치우고...

그러다가 손가락을 칼에 베고 말았다. 커터칼이 박힌 자리는 정확하게 왼손 검지 첫번째 마디, 반창고를 고깔모양으로 붙여도 아슬아슬 떨어지려고 하는 그 자리, 아놕... 눈물나게 아팠다.

피를 한 번 봤으면 이쯤에서 멈춰야 하는데 집안은 아까보다 더 엉망... 대충 벌려놓은 것만 치우고 떡실신해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런데 이번엔 일기장을 넘기다 오른손을 베었다. 종잇날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는 정확히 오른손 검지 첫번재 마디. 이번에도 고깔모양으로 반창고를 붙이면서 피뭍은 일기장을 노려봤다. 남의 책도 아니고 내 일기장이 나를 공격하다니 이건 배신감을 떠나 허탈감이 들 정도.

아아. 양손 검지에 반창고 감고 있으려니 타이핑하기도 힘들구나. 고양이 밥줘야 하는데 알루미늄 캔 같이 위험한 걸 만지다간 손가락이 절단될지도 몰라, 미안하지만 건사료로 만족해주렴. 봄봄이는 이해해줄거야.


by 작나무 | 2008/02/16 21:56 | 일상잡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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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2/16 23:3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2/18 18:48
비공개 님. 님도 인대관리 ;ㅅ; 잘 하시고 빨리 나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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