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재를 싫어한다.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비비틀린 작은 식물의 몸뚱이를 보면 그런 악취미를 가진 사람의 손목을 비틀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관상용으로 인위적인 모양을 만들어낸 화초도 싫어한다. 눈물나게 갸냘픈 몸뚱이를 가진 파키라를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꽈배기 모양으로 얽어 키운 까닭이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관음죽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 역시 사람의 의도에 따라 쉽게 여러 모양으로 고정된다는 까닭이었다. 한국식 정원이 동아시아 최고라고 과감하게 주장했던 까닭은 일본식 정원의 돌 배치에 질리고 중국식 정원의 식물관리에 치를 떨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난을 즐겨 키우셨고 매 년 이맘때면 일부의 화분을 분갈이 하셨다. 화분에서 난의 몸뚱이를 꺼내어 난석을 털어내고 갈색으로 마른 뿌리를 잘라내고 웃자란 뿌리도 잘라주곤 했는데, 나는 잘 자란 길고 촉촉한 뿌리를 잘라내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뿌리를 잘라내면 그에 맞게 보기 싫은 잎줄기도 잘라줘야 하는데 별수없이 아버지의 지시를 따라 작업을 하면서도 속이 상했었다. 이 녀석들이 더 큰 화분이나 아니면 풍족한 토양의 대지에서 자란다면 쑥쑥 잘 클텐데. 이런 생각 때문에 말이다.
지금 나는 스킨답서스와 아이비 화분을 키우고 있는데, 덩굴식물은 물을 적게 주며 키워야 한다는 지침을 들었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어린 묘를 감상하는 것이므로 물을 충분히 주지 않아야 한다... 이건 뭐 미니어처 강아지 개량종 만드는 것도 아니고 말야. 나는 얼마든지 잘 자란 스킨답서스를 감상해 줄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이놈의 덩굴이 마구 잘 자라니 감당이 안 되더라. 줄기가 저희들끼리 엉키면서 잎이 마르고, 뿌리가 마구 뻗어 공기도 물도 잘 통하지 않는 상태인데 분이 조밀하니 물은 금방 빨아들여서, 과습과 건조의 중간상태를 아슬아슬 유지하고 있었다. 스킨답서스 같은 건 누구나 쉽게 키우는 화초인데도 과하게 자라니 신경이 이만저만 쓰이는 게 아니었다. 한 화분에서 자랄 수 있는 식물의 그루 수는 한계가 있는 터라 적당량을 솎아내거나 다른 분으로 번식시키지 않으면 다 함께 죽어버릴 것이다.
결국 어젯밤에 적당한 줄기를 잘라내어 물꽂이를 해주었다. 작은 걸이화분 세 개를 손질하면서 사회도 그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자유롭고 자신의 뿌리를 뻗고 줄기를 펼쳐내고 새 잎을 돋우기에 우리가 살고있는 땅은 너무 좁은지도 모른다.
예전에 나는 내 소유의 화분이 생기면 아버지의 지침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자라게 해주겠노라 생각했었다. 허나 내 소유의 화분이 몇 개 생기자 춘분 전에 이 중 몇 구를 어떻게 손질해야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더라.
그때는 나도 아나키스트였는데, 숨 헐떡헐떡 하면서도 섹스피스톨스 노래 따라부르고 어려운 이론서 하나도 이해 못하면서 줄 쳐가며 읽는 수준의 아나키는 됐는데 말이지, 지금은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는 그 사람에게 맞는 화분 딱 그만큼의 공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고 있다.
아버지는 난을 즐겨 키우셨고 매 년 이맘때면 일부의 화분을 분갈이 하셨다. 화분에서 난의 몸뚱이를 꺼내어 난석을 털어내고 갈색으로 마른 뿌리를 잘라내고 웃자란 뿌리도 잘라주곤 했는데, 나는 잘 자란 길고 촉촉한 뿌리를 잘라내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뿌리를 잘라내면 그에 맞게 보기 싫은 잎줄기도 잘라줘야 하는데 별수없이 아버지의 지시를 따라 작업을 하면서도 속이 상했었다. 이 녀석들이 더 큰 화분이나 아니면 풍족한 토양의 대지에서 자란다면 쑥쑥 잘 클텐데. 이런 생각 때문에 말이다.
지금 나는 스킨답서스와 아이비 화분을 키우고 있는데, 덩굴식물은 물을 적게 주며 키워야 한다는 지침을 들었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어린 묘를 감상하는 것이므로 물을 충분히 주지 않아야 한다... 이건 뭐 미니어처 강아지 개량종 만드는 것도 아니고 말야. 나는 얼마든지 잘 자란 스킨답서스를 감상해 줄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이놈의 덩굴이 마구 잘 자라니 감당이 안 되더라. 줄기가 저희들끼리 엉키면서 잎이 마르고, 뿌리가 마구 뻗어 공기도 물도 잘 통하지 않는 상태인데 분이 조밀하니 물은 금방 빨아들여서, 과습과 건조의 중간상태를 아슬아슬 유지하고 있었다. 스킨답서스 같은 건 누구나 쉽게 키우는 화초인데도 과하게 자라니 신경이 이만저만 쓰이는 게 아니었다. 한 화분에서 자랄 수 있는 식물의 그루 수는 한계가 있는 터라 적당량을 솎아내거나 다른 분으로 번식시키지 않으면 다 함께 죽어버릴 것이다.
결국 어젯밤에 적당한 줄기를 잘라내어 물꽂이를 해주었다. 작은 걸이화분 세 개를 손질하면서 사회도 그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자유롭고 자신의 뿌리를 뻗고 줄기를 펼쳐내고 새 잎을 돋우기에 우리가 살고있는 땅은 너무 좁은지도 모른다.
예전에 나는 내 소유의 화분이 생기면 아버지의 지침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자라게 해주겠노라 생각했었다. 허나 내 소유의 화분이 몇 개 생기자 춘분 전에 이 중 몇 구를 어떻게 손질해야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더라.
그때는 나도 아나키스트였는데, 숨 헐떡헐떡 하면서도 섹스피스톨스 노래 따라부르고 어려운 이론서 하나도 이해 못하면서 줄 쳐가며 읽는 수준의 아나키는 됐는데 말이지, 지금은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는 그 사람에게 맞는 화분 딱 그만큼의 공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