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총선때 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에게는 보수당 지역의 투표권보다 고양이 새끼들이 더 중요하다. 어느 지역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재외국민 투표는 언제쯤 가능할까?

고양이 새끼들 먹이고 쌔우고 재우느라 절망의 개표방송을 실황으로 보지 못했다는 사실은 돌이켜 생각해보니 고마운 일이다.

총선에서 진보신당이 참패를 거두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인터넷으로 보았다. 그 날 새벽에 샤샤가 죽었고 아침에 주석이와 샤오띠가 죽었다. 아직도 따듯한 아가들의 시신을 앞에 놓고 울면서 슬픔을 고갈시켜버렸기에 총선결과를 보았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만약 잔혹한 절대자가 나에게 이재오의 당선과 아가들의 부활을 한세트로 실현시켜 주겠다고 제안한다면 망설임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천사도 악마도 나의 값싼 영혼에 접근하지 않았고 아기들은 차가운 흙 속에 묻혔다.

만약 기독교의 하나님과의 친분을 자랑하는 대통령이 나에게 대운하건설을 지지하는 조건으로 아기들을 되살려주겠노라 제안한다면 역시 받아들일 것이다. 그래도 의료보험 민영화는 안된다. 내가 샤샤와 주석이와 샤오띠를 사랑하는 정도는 이만큼이다. 미안하다.

이 세상에 없는 아이들을 이런 실현불가능한 더러운 거래를 상상하며 떠올려도 괜찮은 걸까. 나는 지금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잠이 부족하고 체력이 떨어졌고 새끼들이 울어대는 환청이 들린다. 병원에 가고싶다.

증상과 잠복기간 등을 보면 아이들 사인으로 파보바이러스가 의심된다. 남아있는 두 마리도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수의사에게 전화해보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병원으로 데려오지 말라고 하고는 어미를 격리시키라고 조언했다. 너무 솔직해서 밉다. 올해들어 처음으로 개자식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욕해도 속이 풀리지 않아서 후회했다.

봄봄이 걱정이다. 전염병인 파보가 아니라 단순한 세균성 장염이기를 바라면서 방바닥과 고양이 식탁과 화장실을 락스로 닦아냈다. 장미가 병원에서 돌아온 직후 봄봄의 화장실을 썼고 봄봄의 사료를 먹었기 때문이다. 백신을 맞았지만 설사증상을 보이는 장미도 걱정이다.

샤샤가 죽은 뒤에 피곤하게 자는 듯한 시신을 앞에 두고 엉엉 울다가 장미에게 화를 냈다. 울다 지쳐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장미가 샤샤의 시신을 핥아주고 있었다. 샤샤는 침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장미는 계속해서 죽은 자식을 핥았다. 장미가 제일 불쌍하다. 내가 왜 화를냈는지 모르겠다. 신경이 날카롭다. 다들 날카롭다.

남자친구는 아이들을 편안하게 보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고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이들이 외롭지 않게 저세상으로 가도록 옆을 지켜주는 것뿐이다. 그런데 옆에 있기가 너무 힘들다. 이 시간을 견뎌내기가 너무 힘들다. 희망없는 절망은 잔혹하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헬렌 니어링은 그녀의 남편 스콧 니어링이 백세를 넘겨 장수하고 저세상으로 떠나겠노라 결심한 뒤 그의 죽음을 한달정도 지켜봤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는 그녀만큼 강하지 못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락사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 내가 밉다.


by 작나무 | 2008/04/11 18:58 | 일상잡설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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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ehi at 2008/04/11 19:39
아흑. 그래도 기운내삼..ㅜㅜ
바이스와 황띠만 살아남은건가 이제.. 흰둥이 노랭이가 살아나서 무럭무럭 자라면 슬픔도 곧 사라질겨..
-재외국민 투표권 운동하는 단체를 본적이 있는데, 정말 언제쯤 투표할 수 있을지..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으니까, 싸워서 얻어내야겠지..유럽에서는 편지로 투표하고 그러던데. 흑. 게다가 웃기는건 재외국민이 후보에 등록할 권리는 있다는거. 후보등록은 되나 투표는 안되는 기이한 상황.
-두번째 거래에 대해서.. 나라면 대운하는 끝까지 양보할 수 없을 거 같아. 사회보장제도는 적어도 나중에 다시 고치면 되는데, 나라 반쪽내고 땅파고 굴파고 어항물 흘려보내는건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희박해서리. 대운하파는 건 새끼고양이들 다 하늘나라 보내는 것처럼 Ctrl Z가 안되는거 같아..
//기운내고, 남은 핏덩이들에게 내 사랑두 전해주삼.!! Kopf Hoch!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4/12 01:40
방금 바이스도 세상을 떠났어. 황띠도 오늘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아. ㅠ ㅠ
휴...우... 자기의 사랑은 반드시 전해줄게. 외롭고 힘들게 죽지 않도록 도와줄게.

그리고 대운하냐 사회복지냐의 문제는 논쟁거리도 아닌 것 같아.
우리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권력은 그들이 쥐고 있으니까.
Commented by mehi at 2008/04/12 04:31
에고고. ... ㅜㅜ ...
오늘밤을 넘기기 어려울거 같다는 말은 말어 ㅜㅜ 말이 씨가 된다고, 내가 여기서 황띠에게 기운을 불어줄게, 오늘 밤안에 금방 도착할겨...

이건 별도움이 안되는 덧글이겠지만, 낼 아침 황띠 잘 숨쉬고 있으면 사람용 우유 따뜻하게 중탕해서 줘보는건 어떨까해서.(중국산, 혹은 중국유통의 수입산, 그것도 미국에서, 분유가 자꾸 내 맘에 걸려서..) 소우유 소화시키는게 어려울뿐이지, 신선한(비교적) 소우유가 분말가공된 초유보다 낫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든다.(괜히 중국탓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밤 음식 잘못먹고 죽은 고양이꿈때매 더 그런듯...) 아는 사람중에 소우유 맥이고 네마리 잘살려낸 사람도 보았구, 울집냥이도 비록 3개월 이후에 데려온거지만 소우유 5개월동안 먹고도 탈없이 잘지냈거든..(8개월 이후엔 자기도 어른이라고 우유입에도 안대더라.) 여튼 그냥 맘에 걸려서 해본말이니 너무 신경쓰지말구.. 슬프고 힘들고 정신없겠지만, 그래도 힘내..
Commented by 레비 at 2008/04/12 12:59
ㅠ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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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예거마이스터 at 2008/04/12 17:25
파보라니요.. 그 무서운 병이 걸리다니..
친구 녀석 냥이가 파보 걸렸을 때, 바늘을 제거한 주사기로 강제로 입을 벌려서 분유를 쏘아대는 식으로 억지로 먹여서 살려낸 경험이 있습니다. 일단, 억지로라도 먹여야 해요.. 애기들이라 체력이 받쳐줄까 걱정되네요.. (아, 사람용 고급 분유가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아니마 at 2008/04/1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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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4/13 15:41
울어주고 격려해줘서 고마워요.
나는 괜찮고 봄봄이도 괜찮아 보여요.
아기들 묻어주러 가야하는데 장자 옆에 묻어줄까 아니면 장미가 사는 집 마당에 묻어줄까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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