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학생이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좋다. 어떤 사람들은 학창시절의 낭만을 추억하면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더라. 그러나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우울한 전망에 괴로웠던 학창시절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만약 다시 어느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면 예전처럼 불확실한 목표를 위해 헐떡이지 않을 거란 생각도 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글을 써서 먹고살수 있을까 하는 불안도 없다. 적게 먹고 적게 움직이니 그럭저럭 살만 하더라. 뭐든지 해보기 전이 불안하지 막상 해버리고 나서 일상이 되어버리면 괴롭지 않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그리 잘 쓰지 못하지만 그래도 예전의 나보다는 잘 쓰고 있으니까 앞으로의 나는 더 잘 쓰게 될 거라고 믿어버리면 울면서 각성하지 않아도 직업의식이 투철해지더라.
나에게 관심이 있는 타인, 특히 가족에게 이 불확실한 직업에 대해 납득시키는 일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고난의 과정이 아니었다. 아무리 불안한 길이라 할지라도 마구 걸어가버리면 아무도 말릴 수 없고 걱정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본래의 불안감은 어느정도 해소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지금은 엄마한테 미안하지가 않다. 아빠한테는 아직도 조금 미안하다.
2.
한창 연애질에 바빴을 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일기장에 불만족의 기록만이 가득했던 것은 그때의 내가 행복의 가치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전혀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감정을 처리하지 못했고 타인의 감정에는 경기를 일으켰던 감정과잉 섹스는 클리토리스를 관통하는 피어스에 불과했다. 그것은 화려하고 자극적이지만 타인에게 내보이기 적당하지 않았으니 어떤 타인과도 소통하지 못했다. 아마도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했겠지만 그 진심이란 참으로 조악했다.
그때는 어떤 연애관계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을 때 채였든 찼든 깊숙한 곳에서 자기모멸감이 솟구쳤다. 그 까닭은 관계에 충실하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분노나 자괴감 때문이 아니라 소통에 또다시 실패하고 홀로 남겨진 자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뒤에는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으면서 관계를 정리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다른 사람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분노가 없어지자 추억도 사라지고 과거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피부의 탄력이 떨어지고 허리둘레가 두꺼워지고 꾸밈새가 갈수록 소박해지고 나서야 가장 좋은 사랑을 하고있다. 이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을만큼 낭만적이지는 못하지만 나에게 영원을 바랄 자격은 있노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은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나자 비로소 그것이 나의 일부가 되었다.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좋은 점이 하나 더있다. 이제는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따위의 농담을 아무도 하지 않는다. 특별히 예의바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더라. 이렇게 서른고비만 무사히 넘기면 그런 식의 농담에 맞장구치며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 비슷한 농담을 개발해서 안 웃긴데도 낄낄거리며 늙어가겠지. 참 좋다.
3.
얼마 전 새끼고양이들이 모두 설사를 해대고 있을 때 나를 가장 괴롭혔던 건 생사의 불확실성이었다. 그들이 모두 죽어버린 뒤에는 술에 잔뜩 취해서 의료보험 민영화나 노숙자 문제 같은 주제를 놓고 엉엉 울었다. 지금은 그때의 눈물이 누구를 위해 흘렸던 것이었는지 깨달았고 내가 충분히 울었노라 인정하고 나니 그 이상 울지 않을 수 있었다.
아가들 동영상 보면서 웃음이 나온다. 그저 아름답고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 동영상은 업로드하려면 밤 새워야 할 듯. 사진으로 다시보는 귀염둥이 샤샤.
나는 학생이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좋다. 어떤 사람들은 학창시절의 낭만을 추억하면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더라. 그러나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우울한 전망에 괴로웠던 학창시절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만약 다시 어느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면 예전처럼 불확실한 목표를 위해 헐떡이지 않을 거란 생각도 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글을 써서 먹고살수 있을까 하는 불안도 없다. 적게 먹고 적게 움직이니 그럭저럭 살만 하더라. 뭐든지 해보기 전이 불안하지 막상 해버리고 나서 일상이 되어버리면 괴롭지 않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그리 잘 쓰지 못하지만 그래도 예전의 나보다는 잘 쓰고 있으니까 앞으로의 나는 더 잘 쓰게 될 거라고 믿어버리면 울면서 각성하지 않아도 직업의식이 투철해지더라.
나에게 관심이 있는 타인, 특히 가족에게 이 불확실한 직업에 대해 납득시키는 일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고난의 과정이 아니었다. 아무리 불안한 길이라 할지라도 마구 걸어가버리면 아무도 말릴 수 없고 걱정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본래의 불안감은 어느정도 해소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지금은 엄마한테 미안하지가 않다. 아빠한테는 아직도 조금 미안하다.
2.
한창 연애질에 바빴을 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일기장에 불만족의 기록만이 가득했던 것은 그때의 내가 행복의 가치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전혀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감정을 처리하지 못했고 타인의 감정에는 경기를 일으켰던 감정과잉 섹스는 클리토리스를 관통하는 피어스에 불과했다. 그것은 화려하고 자극적이지만 타인에게 내보이기 적당하지 않았으니 어떤 타인과도 소통하지 못했다. 아마도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했겠지만 그 진심이란 참으로 조악했다.
그때는 어떤 연애관계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을 때 채였든 찼든 깊숙한 곳에서 자기모멸감이 솟구쳤다. 그 까닭은 관계에 충실하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분노나 자괴감 때문이 아니라 소통에 또다시 실패하고 홀로 남겨진 자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뒤에는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으면서 관계를 정리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다른 사람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분노가 없어지자 추억도 사라지고 과거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피부의 탄력이 떨어지고 허리둘레가 두꺼워지고 꾸밈새가 갈수록 소박해지고 나서야 가장 좋은 사랑을 하고있다. 이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을만큼 낭만적이지는 못하지만 나에게 영원을 바랄 자격은 있노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은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나자 비로소 그것이 나의 일부가 되었다.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좋은 점이 하나 더있다. 이제는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따위의 농담을 아무도 하지 않는다. 특별히 예의바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더라. 이렇게 서른고비만 무사히 넘기면 그런 식의 농담에 맞장구치며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 비슷한 농담을 개발해서 안 웃긴데도 낄낄거리며 늙어가겠지. 참 좋다.
3.
얼마 전 새끼고양이들이 모두 설사를 해대고 있을 때 나를 가장 괴롭혔던 건 생사의 불확실성이었다. 그들이 모두 죽어버린 뒤에는 술에 잔뜩 취해서 의료보험 민영화나 노숙자 문제 같은 주제를 놓고 엉엉 울었다. 지금은 그때의 눈물이 누구를 위해 흘렸던 것이었는지 깨달았고 내가 충분히 울었노라 인정하고 나니 그 이상 울지 않을 수 있었다.
아가들 동영상 보면서 웃음이 나온다. 그저 아름답고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