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육아.

아기고양이들을 키우면서 온갖 우여곡절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살리지 못했지만 우리들이 얻은 것이 한 가지 있으니 출산과 육아에 대해서 생각하고 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동거중인 상황에서 결혼 이후에도 한참 지나서야 생각할까 말까 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눌 수 있었다는 건 어쨌든 수확이다.

곰 군: 작나무야. 우리 결혼하더라도 애는 낳지 말자.

작나무: 왜? 애 낳아주면 자기가 잘 키울 거 같은데...

곰 군: 함 해보니까 이게 할 짓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어.

작나무: 걱정마셔요. 대여섯마리를 낳아버리지는 않을거라능.

곰 군: 님하 -_-

작나무: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기껏해야 하나 둘, 걱정 마셔.

곰 군: 고냥이는 길어야 두 달 고생이지만 사람은 이십년 고생.

작나무: 일년만 고생하고 그 뒤는 방목하지.

양몰이 개 쉽독을 훈련시켜서 애몰이 개로 진화시킨 뒤 그넘에게 애를 떠맡기고 들판에 풀어놓을 계획에 대해서 논의하려고 했는데 둘 다 피곤에 쩔어서 대화는 여기까지. -ㅂ-;;

말은 저렇게 하지만 실제로 곰 군이 고양이들 육아에 보여준 노력과 정성을 생각하면 애 낳아서 키우는 것도 괜찮겠다는 인류애적 감상이 치솟아 오르더라.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고양이 기르기 책을 달달 외울만큼 읽어대는 노력과 잠 많은 작나무를 깨우지 않고 밤을 새우며 젖을 먹이고 애기들 뒤치닥거리를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전열기와 전기장판을 켰다 껐다 반복하는 정성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운동화끈도 꽉 못 묶어서 맨날 풀리는 투박한 손으로 아기들 분유를 먹이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웠는지. 물론 그 사이사이에 무턱대고 고양이를 맡아 온 작나무와 작나무에게 고양이를 떠넘긴 장미여사를 원망하는 말을 반복하긴 했지만-ㅂ-;; 곰 군이 아빠가 된다면 제법 훌륭한 역할을 해낼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투덜거리면서 할 일은 똑바로 하는 열성아빠 이미지.

작나무의 경우에는 고통스러운 육아생활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스스로가 새끼고양이에게 종속당하기를 즐기는 매저키스트가 아닐까 의심하는 한편으로 만약 애를 낳는다면 반드시 모유수유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되었다. 분유 타서 먹이고 젖병 세척하는 일이 귀찮았기 때문. 게다가 사람새끼는 고양이새끼의 몇배로 많이 먹잖는가, 분유값 비싸더라. -_-;;

+ 다 쓰고나서 쭉 읽어봤는데 이걸 진지한 사색과 대화라고 불러도 되는걸까 의심스럽다. 돌이켜보면 웃기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진지했다능.


by 작나무 | 2008/04/22 05:29 | 일상잡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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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니마 at 2008/04/23 16:54
이십년 고생해서 키워놨더니 저처럼 되면 큰일이라 저도 낳고는 싶지만 안 낳으려고...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4/23 22:51
내 말이... "꼭 너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는 울 엄마의 저주가 실현될까봐 두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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