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사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나라.

재작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삼개월 정도 태국을 여행했습니다. 방콕 근교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어느 사원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고양이를 한 마리 만났어요. 이름은 모르지만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쪼르르 달려오더군요. 한국에선 처음 본 사람이 나타났을 때 길냥이가 다가오긴 커녕 도망치기 바쁘겠지요. 이넘 참 개 같은 고양이로세, 신기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개냥이가 이 녀석 뿐이 아니더군요.

방콕에서 조금 떨어진 소도시 깐짜나부리에서 이번에는 고양이 가족을 만났어요. 양식을 그럴듯하게 하는 졸리프록이란 식당이었는데 주방과 식당 일부만 구획된 건물이고 나머지는 지붕만 씌우고 테이블을 놓은 곳이었지요. 이 야외식당에서 어미와 네 마리 아기들로 구성된 가족이 이리저리 오가며 사람들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더군요.

해변 휴양지로 갔다가 보름 정도 뒤에 다시 깐짜나부리로 돌아왔을 때에도 여전히 그 식당에 있었어요.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전에는 수척해 보였던 어미도 많이 살이 올랐더군요. (핸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많이 구립니다만 인증샷이 구릴수록 사람 말을 믿어주는 미덕을.ㅎ)

태국은 고양이는 물론이고 개가 살기에는 더욱 좋은 나라인 것 같습니다. 위에서부터 방콕, 깐짜나부리, 꼬창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모두 다른 개들이지만 공통점은, 날씨가 더워서 찬 바닥에 배 깔고 늘어져있다는 점과 늘어져있는 동안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다는 점.


태국 여행하는 삼개월동안 사람이 개나 고양이를 괴롭히는 장면은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었어요. 개한테 신경쓰는 사람은 저 하나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ㅂ-; 길에서 개나 고양이 만나면 일단 말을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지라.

(여행 중에는 시크한 캐주얼에 내추럴한 논-메이크업 패션을 고수하는지라 부끄러운 마음에 사진을 흐리게 처리했음다.)

푸른 벌판이 아니라 주차된 오도방 위를 활보하는 래쉬 +ㅂ+; 알고보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명견.

태국 개들 중 최고는 이 트리오였는데,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세븐일레븐 편의점 앞에 줄지어 배깔고 누워있는 개들이었음다. 나름대로 서열이 있는지 문틈으로 냉기가 나오는 차가운 타일바닥 위에 있는 녀석, 그 아래로 타일에 등만 대고 있는 녀석, 마지막으로 시멘트 바닥에 누워있는 녀석, 이렇게 셋이에요. 일주일 동안 관찰한 바로 여기가 지정석이더군요.

편의점으로 사람이 지나갈 때는 이렇게 비켜감다. 눈 보이는 사람이라면 가뿐하게 비켜주는 센스!

일반적인 애완동물은 아니지만, 태국에서 가장 흔한 동물인 개코 사진도 첨부합니다. 일종의 도마뱀인데 현지어로 개코라고 부르더군요. 벌레 잡아먹는 애들이라 그런지 행운의 상징이라고. 자세히 보니 은근 귀엽대요. 여기저기서 수시로 보이는 개코한테 해코지하는 사람은 한 번도 못봤음다.

태국은 불교신자가 많은 나라라 채식인구도 많고, 육식을 하더라도 식용이 아니라면 동물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종교적 배경이있는데다, 현실적으로 농사가 잘 되는 기후에 기름진 토양에 먹거리 걱정하는 인구가 별로 없으니 굳이 이것저것 잡아먹을 이유는없었을 겁니다. 한반도의 사정과는 많이 다르죠. 연중 삼사개월은 농경이 불가능한 열악한 기후와 전국토의 칠할이 산지인 나라에서벼농사 짓고 악착같이 살면서 수년간 농사일로 부려먹었던 소부터 집에서 키우던 개까지 잡아먹었던 우리 선조들이 특별히 잔인했다고말하기는 어렵죠.(그렇다고 현대의 비인도적인 개도살에 찬성하는 건 아닙니다.)


여기는 인도 기차역, 사년 전 일이네요. 한국에서 온 언니 둘이 "기차 역에 소가 다녀, 꺄악꺄악~" 요리찍고 조리찍고 신났었죠. 물론 이 사진을 찍었던 저도 초 흥분상태였구요. 우리가 꺅꺅대며 관심을 보이자 소님들이 친절하게 자리잡고 앉아서 포즈도 잡아주시더군요.

그런데 한달동안 인도를 여행해보니 산에도 소, 들에도 소, 거리에도 소, 동네에도 소... 한가롭게 어슬렁대는 소를 보기는 소똥 보기만큼 흔한 일이더군요. 아니, 소똥보다 소가 더 흔해요. 소똥은 연료로 쓰기 때문에 누군가 잽싸게 주워가니까요. 나중에는 소 사진 같은 건 찍지도 않았어요. 인물사진 찍다 보니 소가 나온 사진이 몇 장 있어 편집해 올려봄다.

소 뿐 아니라 개도 흔하게 돌아다녀요. 주인 없는 녀석들인지 약간 꼬질꼬질하지만 사람에 대한 적개심은 찾아볼 수가 없었음다. 요 아래 누렁이 녀석은 우리가 한국사람 만난 기념으로(또한 버스가 고장난 기념으로) 사진 찍는데 저도 따라와서 자리잡더군요.

인도는 원숭이가 살기도 좋은 나라입니다. 도시의 원숭이떼가 사람들이 널어놓은 빨래를 집어가고 먹을 것도 훔쳐가지만 그렇다고 원숭이에게 독약을 살포, 몽땅 잡아들여서 안락사, 같은 무서운 일이 벌어지지는 않아요.

하누만이라는 원숭이 신이 있는데 이분 덕분에 어떤 사람도 원숭이에게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네요. 그런데 인도에 신이 좀 많습니까, 소나 코끼리는 물론이고 가보지는 못했지만 쥐를 섬기는 사원도 있다는군요. 신의 형상으로 숭상받는 특정 동물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동물이 영혼을 가지고 환생한다고 믿기 때문에 죽이거나 괴롭히는 일은 거의 없어요. 윤회를 믿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극한 상황이라도 생명있는 존재를 죽이거나 먹어버리기 쉽지 않겠죠.

아래는 도시의 원숭이들 사진, 그리고 원숭이를 섬기는 사원의 안 뜰 사진임다.

좀 쌩뚱맞지만, 멧돼지 가족과 멧돼지 키우는 할머니 사진임다. 보통 인도사람들은 돼지를 안 키워요. 돼지고기는 힌두교도든 무슬림이든 안 먹거든요. 그런데 산에서 멧돼지가 내려와서 집 앞에 새끼를 낳아 놨다는 거에요. 사진에서 보듯 단촐하게 소똥바른 시골집, 작은 화덕에 물통 몇개가 부엌살림의 전부인 가난한 집인데 새끼돼지에게 먹이를 주시더군요.

멧돼지가 밭을 망쳐놓는 것보다는 마을에 와서 먹을 것을 나눠달라는 편이 낫다. 농사를 지어서 돼지에게 나눠줄 것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인도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이었음다. 인생은 어쩌고 신은 어쩌고 주절대는 구루(수행자,현자)들은 다 무릎 꿇어야 함다. 저야 당연히 무릎 꿇었구요, 할머니를 따르겠노라 결심한 나의 손은 할머니를 따라 소똥을 물에 개서 방바닥에 바르고 있었다능... -_-;;

인도는 전통적으로 인구 대다수가 채식주의자입니다. 인도항공에서는 기내식 줄때도 "비프 오어 치킨?"이런 식으로 묻는게 아니라 "베지 오어 논베지?"라고 묻더군요. 잘 차려입고 비행기 탄 인도사람들은 태반이 베지테리언이대요. 인도에서는 상류층일수록 고기를 안 먹는다고.(근데 나한테는 채식하냐고 안 물어보고 그냥 양고기 주더라능.-_-;)

왜 간디 할아버지가 영국 유학하던 시절에 영국 제국주의자들을 이기려면 이넘들처럼 튼튼해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소고기를 먹어봤대더라 하는 이야기 있잖습니까. 이 이야기가 우리 보기에는 그랬는가보다,지만 인도 사람들 보기에는 극한도전 육식체험,인 겁니다. 상류층이 아닌 보통 사람들도 닭고기 정도는 드물게 먹지만 달걀, 우유, 유제품, 콩과 곡식을 주식으로 먹고 대신 요리에 식물성 기름을 많이 사용하더군요.

쓰다 보니 길어졌는데, 낯간지럽게 못사는 사람들이지만 마음은 부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역시 사람을 낳으면 미국으로 보내고 동물을 낳으면 태국이나 인도로 보내야 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님다.

위 사진들은 여행자의 눈으로 아름다운 장면만 담아온 것임다. 들여다보면 이 동네 사람들도 문제가 많다고 해요. 요즘 태국에서도 애완동물 유기 문제가 큰 사회문제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불교국가니 애완동물을 사원에 갖다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네요. 설마 스님들이 강아지 곤양이를 죽이겠습니까 데려가서 죽이라고 관청에 신고하겠습니까, 뭐 그런 심리가 있겠죠. 실제로는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편 인도에서도 소를 신성시하는 전통 때문에 소 도축도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최근에는 육식인구가 늘고 힌두교가 아닌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소고기를 먹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대요. 법적으로 농사일을 할 수 없는 다친 소는 도축이 가능하다는 예외조항이 있어서, 편법으로 소 다리를 막대기 같은 것으로 때려서 골절시킨 뒤 공무원의 허가를 받고 도축한다고 해요. 소 다리 부러뜨리는 직업이 생길 정도로 성행하는 방법인데 생각해보면 이게 더 비인도적이죠. 소 입장에서는 다리가 부러져서 고통스럽게 며칠을 보낸 뒤 죽는 거니까요. 이건 소를 두번 죽이는 거죠.-_-;; 그렇다고 이 나라에서 소 도축을 인도적인 방법으로 합법화할 수 있느냐하면 그것도 아니거든요.

앞에서 예로 든 두 나라가 사회시스템이 정교하지 않다는 건 사실입니다. 법률에 구멍많고 제도에 헛점많고 법제보다는 인정(때로는 뇌물-_-;)이 유용하니까요. 그런데 이 나라들에서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동물보호법 같은 거 없어도 동물이 보호받아요. 종교적인 배경이 강하다보니 지나가던 나쁜놈1이 지나가는 개를 걷어차면 주변 사람들이 막 욕하고 말리고, 옆집사는 나쁜놈2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를 학대하면 이웃에서 평판이 확 떨어지니까요. 헌법보다 위대한 국민정서법이 위력을 발휘하는 겁니다.

동물보호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는 소위 선진국에서도 제도적인 헛점은 많이 있지요. 국민에게 소고기 싸게 공급한다고 소한테 소뼈 먹이는 무식한 미국 축산업자 넘들(너네 나라에서만 처먹어, 샹놈들아!), 푸아그라 드시겠다고 거위를 지방간 만들어버리는 프랑스 미식가 넘들(개고기 갖고 한국만 까대지 말지어다!), 치렁치렁한 털옷 걸쳐보겠다고 밀렵꾼이 어리디 어린 밍크 머리에 못질하고 산채로 껍질 벗기게 만드는 국적불문 부자넘들(야생밍크 입고 공식석상에 나타나는 년놈들은 홀딱 벗겨서 알래스카에서 일년씩 유배시켜야 함!) 개는 인류의 친구라고 광고하는 나라에서도 이런 저런 문제는 있죠. 동물과 사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나라는 참 드뭅니다. 하늘나라 가면 그럴까효? 죽기 전이니 모르겠네효.

동물과 공존하자고 주장하는 입장에서 인도와 태국의 종교적 배경이 참으로 부럽지만, 그렇다고 개잡을 때 흠씬 두들겨패던 우리 선조들을 과감하게 쌩까고 없었던 전통을 발굴해낼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근데 전통문화 없으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양복입고 햄버거 먹은지 백년도 안 됐음다. 문화라는 건 만들어가는 거니까요.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동물을 좋아하게 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그러나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고양이를 학대하는 일만은 막아야죠. 우리 사회에는 종교적 배경도 없고 애완동물 보호 법규도 미약하고 시민들의 의식도 희박한 아스트랄한 상황이니만큼 동물을 학대하는 넘한테는 조직의 쓴맛을 화끈하게 보여줘야 함다.

오마이뉴스에서 동물학대, 처벌이 어려운 이유는? 이란 기사를 읽고(일년 전 기사 -_-;; 즐겨찾기에 넣어둔 거 지금 발견;;) 우다다다 마구 써버렸음다만 그리 발전적인 결론은 없군요. OTL

길냥이가 "사람은 우리의 친구"라고 착각했다 억울하게 죽임당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밥주다가 우연히 마주쳤을 때는 하악질을 해서 쫒아버려야 한다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한국사회가 참 슬픕니다. 애완동물용품점에 고양이 코너 제품이 늘어나고 온라인 쇼핑몰도 우후죽순 문을 열고 고양이를 소재로 한 캐릭터 상품이 유행하는 걸보면 고양이 애호가는 이미 충분히 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반대급부로 유기묘도 늘어나고 냥이에게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예비 연쇄살인범 색퀴들도 늘어나는 한국사회가 두렵습니다.

어쨌거나 TNR 문제로 구청에 민원 넣고 임보하시고 개 도축 문제로 시위하고 투쟁하시는 여러 운동가 여러분들 힘내세요. 늘 응원하고 있어요. (맨날 말만 해서 미안해요. ㅜ ㅜ;)


by 작나무 | 2008/04/23 22:47 | 봄봄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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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늑대별 at 2008/04/23 23:42
잘 읽었습니다. 저도 동물 무지 좋아합니다..네발달린 놈들만...^^ 답방을 했는데 흔적을 남기는 것은 처음이네요..링크해도 되지요? 자주 들르겠습니다.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4/24 07:22
저도 네발달린 동물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ㅎㅎ 링크 환영입니다. ^^
Commented by blus at 2008/04/24 14:26
정말 멋진 사회의 모습이네요. 짐승을 애완하는 것이 아닌 동반하는 사회.
Commented by 아니마 at 2008/04/26 09:54
길냥이로 살아가기란 세계 어딜 가도 똑같이 빡센 일이겠지만, 로마에서 동네냥이들 모여서 반상회(?)하는 곳마다 냥이 먹이그릇이 놓여져 있던 걸 보면서 기분이 훈훈해졌던 기억이 나네요. 길냥이 돕는 자원봉사단체도 만나봤고. 그런데 여기서도 서러운 길냥이 처지에 대해 동정해주고 배려해 주는 사람들은 거의 80%가 중년 넘긴 아주머니 할머니들이었다는 게 참...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4/26 19:22
blus님. 함께 사는 사회.

아니마양. 우리나라에선 길냥이 먹이 몰래줘야 한다능 ㅠ ㅠ;; 아무것도 안 훔치는 애들이 도둑 소리 들어야 하구 ㅠ ㅠ;;
+ 세상이 그나마 살만한 곳으로 유지되는 건 역시 아줌마와 할머니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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