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고양이 키우.

동네에 유학 와 있는 열여섯 여자애가 있음다.
일 관계로 알고지낸지 오륙년 되는 지인의 따님인데
딸만 중국땅에 두고 왔다갔다 하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괜찮은 식당에서 밥 사주시면서 챙겨주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더군요.
저도 딸이라 딸가진 아버지 마음보다는 그 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죠.
애들은 강하게 키워서 얼른 현지적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 라고 하면 사실 저의 무신경에 대한 변명이지만.

그 뒤로 집으로 불러서 책 몇권 안겨주면서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잔소리 좀 했구요
자주 오라고 필요한 거 있음 그랬는데 한 두어번 왔나...
열살이상 차이 나니까 어려웠는지 학교다니고 중국어 공부하고 바빠서 그런지 여튼
데면데면 동네에서 마주치면 인사나 하고 지나가는 사이였어요.

그랬는데,
이 친구가 새끼 고양이를 데려왔다는 겁니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꾸 따라오더래요.
사람을 따르는 폼이 아무래도 가출냥이나 유기냥이 같아서
일단 집으로 데려와서 씻기고 먹이고 했다네요.

저야 사실 냥이네 안에서는 미숙하고 걱정많은 초보집사에 불과하지만
현실계에서는 고양이 오타쿠로 알려져있는 터라... (다들 그렇지 않나요?ㅎㅎ)
생각이 났는지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더군요.
일단 전화로 사료와 모래부터 체크한 뒤에
자질구레한 용품이랑 장난감, 간식 같은 것들 싸들고 부랴부랴 달려갔음다.

통화할 때 그 친구 말이 여자 아이인것 같다고 하길래
어릴 때부터 잘 해줘서 나중에 며느리 삼아야겠다...는 흑심을 품었으나
가서 직접 보니 아직 땅콩이 여물지 않은 남자애더라구요.
내 팔자에 며느리 들여 손주새끼를 볼 수 있을꼬........ -.,ㅜ;; 에 더해서
우리애기 꼬추보자~ 까지 했더니 어쩐지 팍 늙어버린 기분이었음다.

세달이나 됐을까... 집 나온지 오래되었다고 생각하면 네달까지 볼 수 있을 것 같은
비척 마른 아깽이가 어찌나 까불거리면서 애교를 부리는지 혼이 나가더군요.
이름은 키우 (내가 키울래...에서 키우 -ㅂ-;)
터키시앙골라로 보이는 흰 털을 가졌음다.
중국에서 키우는 고양이 품종이 그리 다양하지 않거든요.
제가 사는 동네는 페르시안과 터키시앙골라가 대부분이에요.

믹스가 아닌 걸로 보면 분명 어떤 사람의 의지로 교배를 시켜서 태어난 아이일 터인데
이 작은 아깽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듭니다.
엄마는 어디 있을지, 보통 가정집에서 태어났을지, 가게에서 교배로 태어난 아이일지
어쩌다가 집을 나왔는데 길을 잃고 헤맨 건지, 아니면 너무 활동적인 수컷이라 주인이 내버린 건지...
어쨌든 새 주인이 생겨서 사랑받으며 살게 되었으니까 잘 된 일이라고 위안해봅니다.

지금까지 상황은 그렇구요.

이 친구가 사정이 생겨서 당분간 저희 집에 키우를 맡기게 되었음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굳이 탁묘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긴 한데 제가 막 꼬셨음다.

아가 냥이 장난질을 받아줄 수 있는 상대는 같은 고양이 뿐이거등...
아가들은 어른 냥이가 하는 걸 보고 배워야 몸단장을 깨끗하게 하거등...
고양이도 사회성이 있는 동물이라 동족을 만나야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끼거등...

이런 뻥을 쳐서 저희 집으로 데려오게 했음다. -_-;;

세금도 내고 보험료도 내고 투표도 하는 성인이
아직 고등학교도 안 들어간 소녀에게 이런 뻥을 쳐도 되는 걸까...
하는 도덕적인 판단은 물 탄 우유처럼 흐려졌음다.

오직 아깽이.
오직 아깽이.

잠도 못자고 기다렸어요.
앞으로 아홉시간만 더 기다리면 아깽이가 와요.
두근두근두근...............

------- 아침에 써놓고 깜빡 잠들었는데 점심때 키우가 왔음다.

아기 고양이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특별 인테리어로 -ㅂ-;
집안의 모든 박스를 꺼내서 작업실 여기저기 펼쳐놨는데
이건 뭐 봄봄이가 더 좋아하네요.
캣타워 동굴 텐트 다 필요없고 박스가 제일 좋은 저렴한 근성임다.
키우 녀석도 이 근성을 배워가면 미성년 집사의 주머니 사정에 보탬이 되겠군요. 풉... 남걱정.

키우가 워낙 겁이 없는 성격이라 그런지 어려서 아직 개념형성이 덜 된건지
낯선곳에 와서도 제 집 안방마냥 쫄래쫄래 잘 돌아다녀요.
세살이 되도록 막내자리를 고수했던 봄봄이가 되려 더 놀라서 하악하악!

키우는 하악질이 뭔지도 모르는지
봄이한테 가볍게 어퍼컷을 날리더니
잽싸게 도망을 가버리더군요.
몸 길이는 봄봄이 삼분의 일도 안 되는 쬐끄만 녀석이 싸움을 겁니다. 웃겨...!

그루밍하는 봄봄형을 관찰하는 키우
성묘의 그루밍법을 학습하기는 커녕

사냥자세로 내려본다능.
봄봄은 깜딱 놀라서 도망질... -_-;;


수컷 냥이는 봄봄이 처음이라서
역시 숫놈들은 거칠고 시끄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까지의 봄봄은 수컷의 본성을 감추고 있었던 겁니다.
까불대는 남동생이 들어오자 봄봄도
형 노릇을 제대로 하는 건지 당하는 건지 -_-;;
엄청 격렬하게 놀아제끼는군요.

온집안이 놀이터가 되어버렸고 먼지가 미친듯이 날리고
이제까지 들어본 고양이 울음소리 총량의 서너배에 달하는 냥냥소리를
오늘 몇시간만에 몰아서 듣고 있다능.

냥냥 갸릉갸릉 우와앙 앙앙 골골골 캬르륵 미야옹 냐앙 갸르륵 캭...

넘 시끄러워서 밥을 먹였는데 딱 삼분동안 조용해지더군요.

키우는 바닥에 쌍식기 놓고 챱챱
봄봄은 식탁에 그릇 놓고 챱챱
먹는 속도가 세배속으로 빨라졌음.

키우 녀석은 봄이보다 더 빨리 먹어치우고
또 놀자고 형아한테 시비거는 중...

지금은 다시 진정한 사나이의 스포츠 우다다를 즐기고 있다능.

+ 냥이가 저희들끼리 노느라 나한텐 관심이 없어서 어쩐지 외롭다능.

by 작나무 | 2008/05/09 18:21 | 봄봄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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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알비☆ at 2008/05/09 20:27
밸리에서 보고 왔어요^^

하앜 키우도 봄봄이도 둘다 너무 귀엽네요 >.<
'진정한 사나이의 스포츠 우다다' 란 문구도 재미있구요 ㅎㅎ
포스트 잘 읽고 짧게 덧글 남겨 봅니다 ^^
Commented by 늑대별 at 2008/05/09 22:39
거 참...자꾸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진다는..^^
봄봄이와 키우를 중계방송하는 작나무님의 멘트가 예술입니다...^^
Commented by blus at 2008/05/10 04:46
으흐하하하!! 계속 웃으면서 보다가 사나이의 스포츠 우다다에서 폭소했습니다!! 이런 표현은 고냥이 오탁후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ㄱ;/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5/10 16:28
알비 님. 반가워요. ^^ 키우랑 봄봄이 둘 다 건강한 사나이들입니다.ㅋ

늑대별 님. 저도 본가에서는 강아지를 키웠는데 집떠난 이후 고양이를 키운 소감은 멍이보다 냥이가 쉽다는 거에요. ㅋ 확실히 손이 덜 가서 부담이 적어라구요. (물론 그래서 주의깊게 관찰해야 할 필요가 많지만요.) 두마리가 되니 서로 노느라 바빠서 사람한테 놀자고 하지도 않더라구요. 요녀석들 귀여워서 오늘 까무라치는 줄 알았어요. 사진 많이 찍어서 올릴게요. ^^

blus 님. ㅎㅎㅎ 그 말은 사실 남자친구한테서 나온 말이었어요. 남친과 봄봄이 하루에 삼십분 이상 집안을 뛰어다니는데, 그렇게 뛰면 재미있냐고 물어봤더니 남친씨가 의미심장하게 남긴 말. ㅎㅎ
Commented by 아니마 at 2008/05/22 23:04
진정한 사나이의 스포츠 우다다를 12살때부터 즐기고 있는 저는...쿨럭
절친한 괭이님과 함께 우다다 해보고싶네요 ㅡ.ㅠ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5/23 00:38
아니마양도 역시 진정한 사나이였군. 풉.
우리집에 놀러오면 단체로 우다다할수 있어.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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