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맺음.

어제, 아침에 눈을 뜨기도 전에 고양이를 사러 가겠노라 결심했다. 일어나서 수정과를 마시고 삶은 달걀을 하나 먹고 양치질만 하고 밖으로 나갔다. 인근에 애완동물을 파는 시장이 세 군데 있는데 그 중 가장 환경이 낫다고 하는 "동방대문화시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중국에선 무슨무슨 문화시장이라고 이름 붙은 데가 꽃나무를 파는 원예시장이나 금붕어, 개, 고양이, 토끼 같은 애완동물을 파는 시장일 가능성이 많다. 골동품이나 기호식품, 일테면 특별한 담배 같은 것을 파는 노점도 있고. 여튼 한시간쯤 지나서 시장에 도착했다.

애완동물 시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대략 두 블럭 정도에 상점이 밀집해 있었다. 입구 쪽에는 물이끼가 시퍼렇게 낀 수조 안에서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가 많았다. 다음으로 알록달록한 새들을 파는 집이 있었다. 새장이 주렁주렁 달려서 바람이 불면 흔들렸다. 그 뒤로는 개를 파는 상점이 대부분이었고 토끼를 파는 집도 있었다. 개와 토끼를 모두 파는 상점에서 고양이를 보았다.

조그만 철장 속에 하얀 고양이가 일고여덟마리가 데글데글 모여있었다. 철장 바닥으로 배설물과 오물이 떨어져 있었고 한켠에는 더러워 보이는 물그릇이 놓여있었다. 한 배에서 나온 새끼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고만고만한 크기의 어린 고양이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주인은 두 달 된 아기들이라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갓 태어난 고양이는 대개 청록색의 눈을 가지고 있고 삼개월 정도는 지나야 자신만의 눈 색깔이 정해지는데 그 철장 안의 아이들은 눈 색이 제각각이었다. 봄봄과 닮은 오드아이 아가들도 보였다. 작고 작은 노랑 파랑 눈동자들.

좀 보자고 말하자 주인이 철장을 열였다. 고양이들의 엉덩이와 다리에는 오물이 범벅되어 있었다. 주인은 원래 색을 짐작할 수 없는 회색빛 천조각으로 오물을 대충 닦아내고 나에게 건네주었다. 너무 작고 가벼워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생명이었다. 어떤 애들은 얼굴에도 오물이 묻어있었다.

여러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꺼내놓고 그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되자 기분이 이상했다. 룸싸롱 같은 유흥업소에서 여자들을 줄세워놓고 파트너를 고르는 아저씨들은 어떤 기분일까. 나는 하룻저녁의 술상대를 고르는 게 아니라 일상을 함께 할 고양이를 골라야 했다. 대체 어떻게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

가게에는 계속 새로운 손님이 드나들었고 주인은 나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이 작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중 오직 하나를 골라야 한다니 그건 너무 가혹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중국어가 짧아서 다행이었다. 주인의 채근을 들으며 작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중 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 아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옥색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갑자기 앞발을 들어올렸다. 손짓하는 고양이 도자기 인형처럼 말이다. 그 고양이가 나를 선택했다.

건강해요? 병은 없어요? 암컷이에요? 밥은 잘 먹나요? 주인은 건성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뚜이 뚜이, 이 말은 정성스럽게 해도 건성으로 들리는데 건성으로 말하니까 진짜 무성의하게 들리더라. 주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갈색 주사액을 아이에게 투여하고 종이박스를 찾아서 아이를 담아주었다.

적당한 합의 끝에 돈을 지불하고 상자를 받았다. 고양이가 아니라 상자를 구입하는 기분이었다. 뭐가 들어있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버스정류장에 갔고 마침 바로 온 버스를 탔고 사람이 없는 뒷자리에 앉았다. 무릎 위에 놓인 상자의 무게는 너무나 가벼워서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상자가 벌어진 틈으로 아기 고양이의 옥색 눈이 보였다. 그 아이는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기진맥진해 있었고 아마 고양이도 그랬을 것이다. 고양이를 상자에 둔 채로 작은방 침대 위에 얇은 이불을 대여섯 장 깔아서 혹이라도 고양이가 실례했을 때에 대비했다. 그리고 고양이를 꺼내서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에 더운 물을 채우고 작은 고양이의 몸을 북북 씻겼다. 물에 젖은 고양이의 몸뚱이는 정말 작았다. 갈비뼈가 드르르 드러나 보일 정도였다.

작은방에서 전열기를 켜놓고 아이를 끌어안고 수건으로 문질러서 털을 말렸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아이를 필사적으로 붙잡고서 바싹 마를 때까지 몸을 문질러댔다. 추위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아이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캔사료에 건사료를 섞어서 작은 밥그릇을 만들어주고 물그릇과 함께 두었다. 작은 상자에 모래를 넣어 화장실을 만들어놓고 방 구석에 두었다. 그리고 고양이를 혼자 있게 두었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가서 봄봄과 함께 잠을 자려고 했다. 봄봄은 새끼고양이 냄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였다. 킁킁대며 불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도 좀 불편했다.

오늘 아침에 새끼고양이 방에 들어가보니 밤새 사료를 거의 다 먹었더라. 그리고 바닥에 오줌과 똥을 싸놓았다. 아무래도 모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먼지 날리는 게 싫어서 크리스탈 모래를 쓰는데 좀 더 가늘고 무게감이 있는 벤토나이트 모래를 사오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대형마트에 가서 고양이용 캔 스무개와 캣산 모래, 아기용 물티슈를 사왔다. 상자의 모래를 바꾸고 바닥의 오물을 닦은 휴지 조각을 상자에 넣어놨다. 아기는 커튼 뒤에 숨어있었다. 커튼을 젖히자 가는 목소리로 울어댄다. 나가라고 위협하는 걸까 놀아달라고 보채는 걸까 도통 모르겠다.

남자친구가 한국에서 돌아올 시간이라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야 했다. 예약한 택시가 집앞에 와 있었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한국에서 전화가 한번와서 받았고 다음에는 한국으로 전화를 한번 걸었다. 둘 다 새로 시작하는 일에 관한 전화였는데 어쩐지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호의적인 통화를 했다. 새끼고양이가 행운을 가져다준 걸까.

공항에서 남자친구를 만났다. 입국수속하고 짐 찾는 데 삼십분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빨리 도착해서 남자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말로는 기장이 미친놈이라 미친듯이 날았다고 한다. 폭주비행기를 타고서도 무사히 돌아왔으니 이것도 행운일까.

집에 돌아와서 남자친구와 함께 새끼고양이를 만났다. 남자친구는 고양이의 하얀 이마 위에 검정색과 흰색의 얼룩이 있는 모양을 보고 "흰 털에 봉황이 강림했다"는 의미로 "황강백모"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일단 황강이. 황강은 아침에 두었던 음식을 거의 다 먹었고 기특하게도 모래상자 위에 똥을 싸놓았다. 이번에는 어제보다 단단한 똥이라서 안심했다. 밥을 더 놓아두고 남자친구와 식사를 하러 나갔다.

밥을 먹으면서 남자친구가 한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와 그동안 새로 진행된 일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주고받고서 주제는 다시 고양이로 돌아왔다. 우리는 아주 멋진 여자아이의 이름을 정해주고 싶었는는데 일테면 유럽 어느 나라의 공주 같이 "라르헨 까트린 드 메디치"라고 부르자거나, 고양이의 검은색과 황색의 얼룩을 두고 현무의 머리 둘이 싸우는 모양새를 연상해서 "현무두투", "현투"라고 부르자거나, 봄봄의 뒤를 이어 새 바람을 불어일으킬 신세대라는 의미로 "춘풍"이나 "레볼루션"이라고 부르자거나. 뭐.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무당"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우리는 이 이름을 능가할 멋진 여자 이름은 없을 거라고 합의를 봤다. 술상을 앞에 두고 악수를 하며 이 이름으로 결정한 직후에 "무당의 춤"이라는 의미로 "무무"는 어떻냐는 의견이 나왔다. 이거야말로 킹왕짱이라고 다시 한 번 악수를 했다. 그래서 우리 고양이 이름은 "무무"가 되었다. 음메음메 무무가 아니라 무당의 춤이다.

무무는 이제 조금씩 겁을 상실해가고 있다. 작은 방에서 우다다 뛰어다니고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다닌다. 등을 쓸어주면, 정말 딱 세번만 쓸어주면 골골골골 소리를 모터처럼 낸다. 내 손가락을 핥아주기도 했고 손가락에 장난을 치기도 했다. 이 녀석 어찌나 귀여운지 요물이다.

봄봄은 여전히 무무를 반기지 않는다. 나와 남자친구의 관심이 작은방 괴생물체에 쏠려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거다. 애교작렬과 무관심내숭을 번갈아 보여주며 우리를 자극하려고 든다. 봄봄의 서브 놀이터였던 작은방 출입이 통제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녀석은 우리가 방 안에 들어가있으면 문앞에서 사냥자세로 대기한다. 언제든지 튀어들어갈 기세인데 그렇게 무모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 이 일기를 쓰면서 내내 담배를 피웠는데 의자 등받이 위에 올라가 졸고있던 봄이가 갑자기 나를 툭툭 친다. 돌아보니 발톱을 세워 내 왼손 검지를 낚아채더니 코 앞으로 끌고가서 킁킁 냄새를 맡고 인상을 찌푸린다. 담배냄새 싫다 이거지. 절연에는 아빠보다 고양이가 효과적이다.

by 작나무 | 2008/05/20 01:51 | 일상잡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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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뇌를씻어내자 at 2008/05/22 11:43
건강히, 잘 자라길 바래요, 무무.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5/22 15:36
무무 녀석 과식을 해서 그런가 약간 설사를 하는 것 말고는 잘 뛰어다니고 놀고 있어요. 곧 사진찍어서 올릴게요. 그런데 확실히 둘째는 첫째만큼 사진을 많이 찍지 않게 되더라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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