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사랑이야기.

얼마 전에 소개했던 키우의 주인 되는 중학생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어제 새끼고양이를 데려왔는데 밥도 안 먹고 울기만 한다고 걱정이란다. 일단 집으로 데려오라고 말했고 한시간도 되지 않아서 친구가 도착했다. 한손에는 키우를 안고 다른손에는 이름 없는 새끼고양이를 고양이 텐트에 담아 들고왔다.(전에 만들었던 냥이텐트 키우가 엄청 좋아하길래 같이 들려보냈음)

천방지축 키우녀석은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펄떡펄떡 뛰어다녔다. 봄봄은 하악질 한방으로 키우를 외면해버렸고 아깽이 무무는 십분동안 당황해서 도망다니다 키우의 도발에 넘어가 우다다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사나이의 스포츠 우다다가 아니라 성장기 소년소녀의 건강증진을 위한 우다다... 두배로 정신 사나웠다.

이름 없는 새끼고양이는 태어난지 한달이 되었다는데 아무래도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입을 열어보니 앞니도 나지 않아서 스스로 음식물을 씹어 소화시키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친구는 어제 오후에 데려왔는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했다. 건사료를 놓아두었는데 아무래도 키우가 다 먹은 것 같다고 했다.

급한대로 집에 남아있던 동물 분유를 더운 물에 타서 놓아주었는데 스스로 핥아먹지 못해서 결국 슬픈 추억의 젖병을 꺼냈다. 젖꼭지를 입에 물려주자 몇번 힘차게 빨아먹다가 이내 뱉더라. 어미젖을 먹던 아이가 분유를 거부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거의 스무시간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아이라 억지로 분유를 조금 먹였다. 그리고 어두운 곳에 고양이 텐트를 두고 새끼를 그 속에 넣어두었다. 조금 우는 소리가 들리다 이내 소리가 멎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서 배가 고픈데 배고파서 울어대니 더 배가 고픈 악순환으로 탈진한 녀석이 갑자기 죽은 것은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겁이 나서 텐트를 들춰보지 못했다.

한달 된 새끼고양이를 어미와 떼어놓는 것도 이른데 한달도 채 되지 않은 새끼를 다른 사람 손에 넘기다니 대체 이 고양이 전주인은 어떤 몰상식한 사람이냐 물었더니 시장의 과일가게에서 받아왔단다. 그 과일가게 아줌마는 나와도 구면이었다. 지난 겨울에는 강아지 두마리를 키웠는데 올 여름에는 고양이라니 취향도 참 자주 바뀐다 싶어 화가 났다. 친구가 키우를 안고 내가 새끼고양이를 안고 시장으로 향했다. 날씨가 더웠다.

그런데 과일가게에 가보니 어미고양이가 딱 봐도 길냥이었다. 아마도 길냥이가 가게 한구석에 새끼를 낳아놓은 것을 내치지 않고 거두었을 것이다. 한낮에 손님 없는 가게에 그새 무럭무럭 자란 강아지 두마리와 새끼고양이 대여섯마리가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놀고있었다. 내가 안고있던 새끼를 보자마자 어미가 다가왔고 새끼를 내려놓자 어미가 녀석을 핥아주기 시작했다. 사람 냄새가 배어서 제 새끼를 내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과일가게 아줌마는 키우를 못마땅한 눈치로 보고있었다. 키우가 아니라 그 주인인 친구가 못마땅했겠지. 새끼고양이를 데려간지 하루만에 돌려다놨는데 그 품에 다른 고양이가 안겨있으니 말이다. 눈치없는 중학생 친구는 새끼고양이가 너무 어리다, 엄마 젖을 더 먹고 커야 한다, 한달뒤에 데려가겠다, 열심히 설명했으나 아줌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결국 내가 끼어들어 이 고양이는 원래 키우던 것이라고 알려주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한달뒤에 꼭 데려가라고 다짐을 받더라.

바나나와 자두를 조금 사들고 시장을 벗어났다. 한근에 육원하는 사과가 비싸서 내려놓고 싼 과일을 집어든 녀석, 이동장 하나 장만할 여유가 없으면서도 고양이를 한마리 더 들이려는 중학생 친구가 안타깝긴 하지만 한심하지는 않았다. 얼마 안 되는 용돈 쪼개서 고양이 사료며 모래 값 대는 것만으로 기특한데 그 고양이가 외로울까봐 친구를 만들어줘야겠다 생각하다니 대단한 결심이다. 무책임하게 식구 늘리지 말고 스스로의 경제력을 생각하라고 잔소리를 해대자 어린 친구는 한달동안 키우가 외로워서 어쩌지요 한다.

고양이 비린내가 진동을 하는데도 어미와 새끼들을 거두고 있는 과일가게 아줌마도 대단하다. 생선가게도 아니고 과일가게인데 말이다. 과일 몇상자 밑천으로 장사하면서 고양이 먹으라고 생선 반찬을 바닥에 떨궈주는 아줌마에게 고양이에게 염분은 해로워요, 전용사료를 먹이셔야 해요, 이렇게 말할수가 없었다.

나와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나와 같은 방식으로 고양이를 사랑하라고 감히 말해도 괜찮은 걸까. 나는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걸까. 글쎄. 모르겠다.


by 작나무 | 2008/05/24 20:08 | 일상잡설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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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5/25 00:3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5/25 13:39
네. 저도 그래서 안심했습니다. ^^ 그런데 왜 비공개로;;; ㅎㅎ
Commented by i_jin at 2008/05/25 06:27
제대로 사랑을 한다.. 이게 참 어려운것 같아요. 마음은 한가득인데, 잘 알지못해서 저지르는 실수도 많고..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5/25 13:44
저희 동네에 상한듯한 생선이랑 만토(우리나라 만두랑 한자는 같은데, 속에 암껏도 안 들은 밀가루 빵) 같은 거 고양이 먹으라고 내놓는 분이 있는데 그 마음은 참 아름답지만 제가 알기론 문제가 있는 먹거리라서 참 안타깝더라구요.
그런데 한마디 못하겠는게 그분이 오해하지 않게 중국어로 충분히 설명할 자신도 없고 그나마라도 음식물 쓰레기 뒤지는 것보단 낫지 않겠냐 싶기도 하구요.
저도 길냥이용으로 사료를 조금씩 내놓기는 하는데 이게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 온동네 길냥이를 다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애들이 너무 많이 번식해버리면 그것도 문제고......
길냥이 뿐 아니라 집냥이도 그렇죠. 제가 애들한테 잘 하고 있는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 말씀대로 어릴 때 돌봐주다 발정이 오면 자유롭게 살게 내보내주길 원하는 지도 모르죠. 참 모를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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