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어머니의 고향은 이북이랬다. 아버지의 고향은 이남이고 말이다. 만약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두 분이 만날 일은 없었을테고 그러면 나도 태어나지 않았을테지.
그렇다고 내가 그 전쟁을 지지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전쟁을 일으킨 북괴의 수령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꽃을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말도 안된다. 그 결과로 내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해서 나의 존재 의의를 원인에서 찾는다면 바보.
2.
이슬람에서 남녀를 엄격하게 나누었던 이유는 본래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었다고 하더라. 여성의 역할과 남성의 역할이 다르기에 남성은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런 식의 이야기들. 물론 보호의 대상이 되는 것과 착취의 대상이 되는 건 예속된 상태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 대상이 처한 생활에서는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선지자 무함마드가 남녀차별을 주장했던 것은 아닐진데 지금은 그가 남긴 순수한 이념이 남녀차별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여자들이 부르카를 뒤집어쓰지 않으면 집밖으로 외출도 하지 못하고 그나마도 혼자 나돌아다니다 걸리면 채찍으로 죠낸 얻어맞는 미친 현실을 그분이 책임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튼 현대의 무슬림 페미니스트 중 일부는 여성들이 동등하게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고 경제와 정치활동에 참여했으며 역사의 기록에도 동참했던 선지자 시대를 지향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그때의 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베일을 쓰고 이슬람의 율법에 더욱 충실하자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글쎄... 나는 이 운동 반댈세(응?)
3.
경계긋기 사유의 비슷한 예. 유학의 건곤남녀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그저 남녀의 역할을 구분하고 경계를 나누려는 순수한 시도였을 것이다. 세상의 여러 요소에 이름을 붙여 구분하는 데 있어서 대립쌍을 설정하는 것만큼 유용하고 편리한 방법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도 건곤남녀 이념을 근거로 남성상위 체위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진짜 문제. 이런 꼴통들은 태극이 곧 무극이니 음양은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이므로 누가 올라타고 누가 눕는가의 고정적 체위에서 벗어나자고 권유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게 정말 문제다.
게다가 여자가 올라타든 남자가 올라타든 서서치든 뒤로치든 떡은 떡이고 색은 색이라고 고차원적 선문답을 던지면 이에 화답하여 힘차게 허리를 움직이기는 커녕 잽싸게 자지를 제거하고 보지를 빨갱이 취급하니 이쯤되면 이건 사회적인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그렇다고 태극사상을 논하고 건곤남녀를 설명했던 유학자들에게 국가적 오르가즘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죽은 양반들은 말이 없으니 항변을 들을 수도 없다.
4.
경계를 긋지 않고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경계긋기의 결과를 개선하는 데 있어서 그 원인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것 이상의 논리를 펼칠 수는 없는 걸까. 과거의 생각과 말들이 우리를 이토록 집요하게 붙잡고 있는데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기는 한걸까.
우리 어머니의 고향은 이북이랬다. 아버지의 고향은 이남이고 말이다. 만약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두 분이 만날 일은 없었을테고 그러면 나도 태어나지 않았을테지.
그렇다고 내가 그 전쟁을 지지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전쟁을 일으킨 북괴의 수령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꽃을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말도 안된다. 그 결과로 내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해서 나의 존재 의의를 원인에서 찾는다면 바보.
2.
이슬람에서 남녀를 엄격하게 나누었던 이유는 본래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었다고 하더라. 여성의 역할과 남성의 역할이 다르기에 남성은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런 식의 이야기들. 물론 보호의 대상이 되는 것과 착취의 대상이 되는 건 예속된 상태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 대상이 처한 생활에서는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선지자 무함마드가 남녀차별을 주장했던 것은 아닐진데 지금은 그가 남긴 순수한 이념이 남녀차별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여자들이 부르카를 뒤집어쓰지 않으면 집밖으로 외출도 하지 못하고 그나마도 혼자 나돌아다니다 걸리면 채찍으로 죠낸 얻어맞는 미친 현실을 그분이 책임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튼 현대의 무슬림 페미니스트 중 일부는 여성들이 동등하게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고 경제와 정치활동에 참여했으며 역사의 기록에도 동참했던 선지자 시대를 지향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그때의 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베일을 쓰고 이슬람의 율법에 더욱 충실하자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글쎄... 나는 이 운동 반댈세(응?)
3.
경계긋기 사유의 비슷한 예. 유학의 건곤남녀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그저 남녀의 역할을 구분하고 경계를 나누려는 순수한 시도였을 것이다. 세상의 여러 요소에 이름을 붙여 구분하는 데 있어서 대립쌍을 설정하는 것만큼 유용하고 편리한 방법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도 건곤남녀 이념을 근거로 남성상위 체위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진짜 문제. 이런 꼴통들은 태극이 곧 무극이니 음양은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이므로 누가 올라타고 누가 눕는가의 고정적 체위에서 벗어나자고 권유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게 정말 문제다.
게다가 여자가 올라타든 남자가 올라타든 서서치든 뒤로치든 떡은 떡이고 색은 색이라고 고차원적 선문답을 던지면 이에 화답하여 힘차게 허리를 움직이기는 커녕 잽싸게 자지를 제거하고 보지를 빨갱이 취급하니 이쯤되면 이건 사회적인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그렇다고 태극사상을 논하고 건곤남녀를 설명했던 유학자들에게 국가적 오르가즘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죽은 양반들은 말이 없으니 항변을 들을 수도 없다.
4.
경계를 긋지 않고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경계긋기의 결과를 개선하는 데 있어서 그 원인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것 이상의 논리를 펼칠 수는 없는 걸까. 과거의 생각과 말들이 우리를 이토록 집요하게 붙잡고 있는데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기는 한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