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일까.

1.
요즘 체중이 엄청 늘어버렸다. 폭식과 운동부족으로 배가 볼록해지니까 허리가 뒤로 젖혀지고 걸음걸이도 허우적허우적 뒤뚱뒤뚱 할때가 많다. 예전에 입던 옷도 맞지 않아서 중국에서 구입한 헐령한 소수민족 치마 같은 걸 입고다닌다. 그래서 얼핏 보면 임산부 같은 이미지, 가임기 여성이 이러고 다니니까 오해받기 쉬웠다.

2.
아는 언니의 남편과 처음 만나던 날에도 바로 그 소수민족 옷을 입고 앉아서 열심히 돼지목살을 주워먹었더랬다. 친하게 지내요. 그럼 형부라고 부를게요. 오케이 메이메이야(여동생이란 뜻).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술잔을 기울였었다. 그러고서 며칠 뒤에 만났는데 언니야가 조심스레 묻더라.

"나무씨 애 가졌어?"
"애 생겼는데 술처마시고 담배피고 그러겠어요."
"그렇지."
"왜 그러는데?"
"신랑이 물어보라 그래서. 아무래도 자기 애 생긴 거 같다고..."

하긴. 내가 그 날 무지막지하게 먹어대긴 했다. 두 사람 몫은 먹은 것 같다. 한번쯤은 그저 재미있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

3.
그런데 이런 일이 또 있었다. 회화수업을 같이 듣는 중년부인이 있는데 얼마 전 함께 계단을 내려가게 되었다. 그날 그분은 나에게 난간 쪽을 양보하고 바깥쪽으로 걸으시더니 자연스럽게 내 배를 손바닥으로 감싸는 시늉을 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들었어요?"

똥과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은 들었지만 애는 안 들어있습니다. 풋.... 웃었지만 웃을 기분은 아니었다. 솔직히 좀 심란해졌다. 중년의 부인이 자신의 임신출산 경험담을 들려주며 하루라도 젊었을 때 애를 낳아야 한다고 조언까지 보태주자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4.
같은 날에 같은 일이 또 일어났다. 오후에 곰과 함께 과일가게에 갔다. 과일을 파는 중국인 할머니는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온 친절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분이다. 그날도 과일을 저울에 올려놓고는 친절한 미소를 띈 얼굴로 말을 걸어오셨다.

"니 훼이런마?"

회임(懷妊)을 중국어론 "훼이런"이라고 발음하는데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몰랐다. "뭐라구요?" 다시 물어봤더니 할머니가 당신의 아랫배를 감싸쥐면서 싱글싱글 웃으며 다시 또박또박 말해주더라. 그제서야 감이 왔다. "아니에요. 그냥 좀 살이 쪘을 뿐이에요."라고 답했지만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회임인 것 같다고 말하시더라.

5.
그렇게 공포가 왔다. 아이를 하나 낳은 젊은 부부와, 아이를 둘 낳아 키우는 중년 부인과, 임신여부나 횟수는 모르겠으나 여튼 그동안 무수히 많은 산모들을 보아왔을 과일가게 할머니, 이 경험자들의 추측이 일치했다.

어쩌면 나는 임신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밤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곰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곰도 역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사실 임신의혹을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그쪽이었다.

"지난번 생리 언제였어?"
"5일."
"이번에도 그쯤 하겠네."
"조금 늦어질 수도 있고. 불규칙하거든."
"그렇구나..."
"............."
"내일 아침에 약국 가서 임신테스터 사자."
"임신테스터를 중국말로 뭐라 그러지?"
"사전 찾아보면 나오겠지."
"오빠가 사와."
"알았어."

아이를 낳고싶다는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우리는 아직 부모가 될 준비 같은 건 되어있지 않았다. 무서웠다. 무서웠지만 잠이 왔다.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6.
아침에 무거운 마음으로 임신테스터를 사러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곰이 나가기 직전에 내가 화장실에 갔고 속옷에 피가 뭍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예정일에 맞춰서 생리가 시작된 것이다. 다행이다.

7.
생리가 시작되었다고 기뻐했던 것도 잠시. 지금은 극심한 생리통에 시달리며 끙끙대고 있다. 생리통을 이유로 수업도 빼먹었다. 핫팩에 허리 기대고 따듯한 물주머니 아랫배에 끌어안고 징징징징. 징징대니까 곰이 발마사지를 해주었는데 한시간 마사지받고 좀 괜찮았다가 한시간 지나니까 다시 아프더라.

살이 찌니까 생리통도 심해지는 걸까. 뭔가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극심한 고통이 아랫배를 점령하고 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자궁이 질밖으로 쏟아져 나갈 것만 같다. 흑흑.



by 작나무 | 2008/09/06 02:32 | 일상잡설 | 트랙백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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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9/06 03:0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9/06 18:55
사실 숙취도 좀 있고 설사도 했어요. ㅠ ㅠ; 설사와 생리가 동시에 진행되니까 죽겠더라구요.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평소와 달리 아픈지도 모르겠네요. 흑흑.
님의 회생경험을 희망으로 삼고 버티겠습니다. ^^; 아자~!!
Commented at 2008/09/06 07:2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9/06 18:57
생리통이 너무 심하면 생리가 아니라 초기유산일 수도 있군요. ㅠ ㅠ;; 그리 말씀하시니 불안하네요. 콘돔을 쓰긴 하는데 중국에서 구입한 거라 짝퉁일 가능성도 막 떠올라요. (실제로 얼마 전에 중국에서 짝퉁콘돔 제조업체가 적발되었다는 기사를 봤거든요... ㅠ ㅠ;;)
주말 지나고 나서도 아프면 병원으로 달려갈게요. 흑흑.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석원 at 2008/09/06 09:39
왠지 모르게 긴장하고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9/06 18:58
극적인 대 반전... +ㅂ+;;
일상이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거라니까요. 흐흐흑.
Commented by savoury at 2008/09/06 22:52
살이 찌면 생리통이 심해지긴 해요. 특히 허리 아픈 증상이... 저도 원래 살이 많지만(;;) 특히 요즘 좀 불었네- 싶으면 바로 생리통이 그 전보다 심해지고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만약 초기유산이면 병원에 빨리 가셔야 할텐데... 계신 곳 병원 사정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그냥 심한 생리통이길 빕니다.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9/09 01:19
역시 살과 생리통이 관련있었던 거로군요. 흑흑. 그나마 다행인 게 이틀-사흘 째 죽어라고 아프더니 지금은 멀쩡해진걸로 봐서 초기유산은 아닌 것 같아요.(전문가와 상의 없이 막 자가진단 해버렸어요;;;) 며칠 완전히 술을 끊었더니 소화기도 좋아졌구요. 역시 술 탓이었나 생각도 듭니다. ㅎㅎ
Commented at 2008/09/06 23:0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9/09 01:20
말씀 감사합니다. +ㅂ+ 다행히 지금은 좋아졌어요. 초기유산일 경우에는 생리혈에 일종의 건더기...-_-;; 같은 게 보인다고 하던데 저는 그런 조짐이 안 보여서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ㅎ
Commented by alex at 2008/09/07 00:40
가끔 지하철에서 앉아있을때 앞에 서있는 분이 배가 볼록하면 자리를 양보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조낸 고민하는데..(임신이 아니면 너무 부끄러워하실듯하여...). 맨날 훔쳐보다 이제 첫 댓글 남기네요. 반가워요~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9/09 01:21
만약 누가 저에게 자리를 양보하거나 하면 그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릴 거여요. 흑흑. 다행히 중국에선 그런종류의 양보의식 같은 거 많지 않아서 아무도 양보 안해주대요. ㅎㅎㅎ
댓글 반갑습니다. ^^
Commented by Amelie at 2008/09/07 21:40
생리가 늦어져도 생리통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9/09 01:22
맞아요!! 묵직하게 나오는 느낌이랄까... 굉장히 우울하고 끈끈한 기분이죠. ㅠ ㅠ;
Commented by i_jin at 2008/09/08 10:18
임신을 해서도.. 왠지 자릴 양보받으면 기분이 편칠 않던데요;; ㅋ 그렇게 티나?? 요런 기분? ㅎ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9/09 01:24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저희 외숙모가 환갑을 앞두고 오랜만에 지하철 탔다가 어느 친절한 젊은이로부터 자리양보를 받으신 뒤에, 내가 그리 늙어보이나, 하는 마음으로 목적지에 내리자마자 당장 미용실로 달려가 염색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요. 좀 비슷한 기분일 것 같아요. ㅎ
Commented by blus at 2008/09/08 14:14
여기 긴장하고 읽은 사람이 일인분 추가!=ㅂ=/
어떤 위로로도 달거리의 고통을 위로할 수 없다고 하지만 딸기등 맛있는거 많이 드시고 힘내세요! 건강이 최곱니다!ㅠㄱㅠ;;;;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9/09 01:25
위로를 해주면 고통이 줄어들어요. 진짜루. 고마워요. +ㅂ+
과일 많이 먹고 술 전혀 안 마시고 단백질 위주로 식사했더니 통증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이제 거의 끝났음. 아이좋아. ㅋ
Commented by 레비 at 2008/09/09 05:20
초기유산 아니어도 그냥 생리혈에 덩어리 섞여나오기도 하더라고.
몸을 혹사시키거나 피곤할 때 많이 그러는 것 같어. 스트레스나. (내가 요즘 orz)
난 별로 긴장은 안했다만.
자기야 관리들어가자. -_-
갑작스럽게 살이 많이 찌는 것도 몸을 혹사시키는거지. 생리통이 갑자기 너무 심한 것도 그 증거닷
Commented by 작나무 at 2008/09/09 18:17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번에는 반대로 때깔이 곱지 않고 묽은 피가 나왔어. 너무 묽어서 오줌싼 거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_-;;;
경험있는 언니 말로는 아주 붉고 끈적거리면서 미끈거리는 손가락 두 개 합쳐놓은 것 만한 크기의 덩어리가 나왔대. 이건 좀 주의할 필요 있을 듯.
여튼... 나 오늘부터 관리 시작했어. 키키 +ㅂ+ 인생 최초의 다이어트 시도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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