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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2   며칠 힘들었어. [14]
2008/08/27   썩은 사과와 엄마. [6]

며칠 힘들었어.

1. 중국어
중국어를 제대로 공부하겠다고 결심했는데 너무 너무 너무 어렵다. 중국어 넘 어려워요를 중국말론 한위헌난이라고 하는데, 대학교 때 학점 메꾸느라 들었던 초급중국어 시간에 배웠던 이 말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중얼거리게 된다. 성조는 뭐 언제나 어렵고 힘든 거니까 내가 지금 말하는 게 아니라 노래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속이 편하다. 진짜 사람 죽이는 게 어휘. 빌어먹을 한자어의 압박인데 매일매일 진도 안의 단어를 뇌주름 속에 끼워넣다 보면 머리가 터질듯한 기분이 든다. 그림쟁이들은 그림이나 그릴 것이지 어째서 문자의 영역에 손을 대어 상형문자 같은 걸 창작했느냐고 모더니스트 같은 분노를 터뜨리는 한편으로 이 표의문자로 여러가지 사상을 만들어내서 의미를 복잡하게 분화시킨 위대한 학자들을 저주하게 되는 것이다. 싯파. 겨우 이틀 지났는데...

2. 거류허가
중국에는 거류허가라는 제도가 있다. 아무데나 살고싶은 데 적당히 기어들어가 살면 안된다. 일정한 주거지 없이 친구네 집을 떠돌며 산다든가 노숙을 한다든가 이러면 안된다. 학교나 회사같은 소속기관에 신고할 필요 없는 보통의 여행자라도 여기저기 떠돌면서 살면 불법이다. 호텔도 일정등급 이상의 지정된 곳에서 묵어야 한다. 안그러면 벌금내고 추방당한댔던가. 여튼 기본적으론 공산주의 국가니까 자국인민이든 외국인민이든 공산당의 일당독재 통제 하에서 지내야지. 그러나 집주인이랑 한판 붙어 조작된 서류를 받아들고 경찰서로 달려가고 학교에 달려가고 조속한 서류처리를 위해 어느놈의 아가리에 들어갈지 모를 뒷돈을 찔러넣다 보면 짜증이 솓구친다. 내일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또 공안국에 갈 생각을 하면 공산당이 실허요오오를 외쳤다는 어느 소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3. 먹고살기
아침에 일어나기가 전쟁이다. 어제는 내가 늦잠을 잤고 오늘은 곰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연장 이틀 택시타고 학교로 고고싱. (돌아올때는 나름대로 잔뜩 지쳐서 택시로 컴백홈. 이달 결산 늦어져서 돈없는데 왜이런대.) 아침은 햄버거 소세지 이딴 걸로 대충 때우고 있고 점심은 적당히 사먹고 저녁은 맛있게 사먹느라 집에서 요리는 전혀 해먹지 않았다. ... 다이어트는 당분간 보류.

4. 환율
원화는 자꾸 떨어지는 분위기인데 위안화는 죠낸 올라가는 추세다. 얼마 전 환전출금 할 때도 토나왔는데 요즘 환율 올라가는 걸 보면 피를 토할 지경이다. 환율방어는 어찌된거지!!! 조금이라도 미리 찾아놓아서 다행이라고 자위한다.

5. 위안
맛있는 신장요리 전문점을 발견했다. 양꼬치랑 난이랑 먹어봤는데 향신료 범벅인 기름진 양고기에 역시 향신료 범벅인 밀가루빵을 곁들여서 먹으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신장위구르 자치구 독립투쟁 테러와 강경진압으로 세상은 피투성이 진흙판이지만 이 음식점은 평화롭다. 커다란 스피커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위구르족의 전통음악이 흘러나오고 하얀 모자를 쓴 잘생긴 위구르족 총각은 큰 목소리로 노래에 추임새를 넣으며 숯불에 양꼬치를 굽는다. 뜻모를 위구르 문자와 어느 왕 또는 종교지도자의 초상화와 플라스틱 포도넝쿨로 장식된 실내에서 스카프를 두르고 서빙을 하는 위구르족 언니는 나만큼 한족말을 못해서 우리는 눈빛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족과 종교와 국가 따위는 모두 순결한 양고기에 뿌려진 향신료로 정화되었노라 자위한다. 그렇다고 억울한 죽음과 남들은 알아주지 않는 죽음의 명분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by 작나무 | 2008/09/02 23:34 | 트랙백 | 덧글(14)

썩은 사과와 엄마.

1.
오래된 이야기. 동생이랑 쓸데없는 주제로 굉장히 심각한 토론을 많이 했었는데 썩은 사과의 딜레마 라고 이름붙인 주제가 있다.

사과가 한 상자 가득 있는데 그 중에 일부는 멍이 들고 상해서 곧있으면 썩어서 먹지 못한다고 할 때, 싱싱한 사과와 상한 사과 중 어느쪽을 먼저 먹을것인가?

싱싱한 사과부터 골라 먹는다면 맛좋은 사과를 즐길 수 있지만 절반 정도의 사과는 다 썩어서 먹지 못하게 될 것이고, 조금 상했지만 아직 먹을 수 있는 사과부터 골라서 먹는다면 사과 전부를 먹을 수는 있지만 전부 다 맛없는 상태로 먹게되는 것이다.

이것은 식탁에 여러 반찬이 놓여있는데 가장 좋아하는 것부터 집어먹는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남겨뒀다 식사를 즐겁게 마무리할 것인가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단순한 미식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관 전체를 대표할만한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동생과 내가 토론을 하다 엄마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엄마는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싱싱한 건 두고 먹고 곯은 사과는 잼 만들면 돼지."

와. 엄마는 대단해. 싱싱하든 상했든 사과는 그 나름대로 다 쓰임이 있는 거구나. 우리가 이 발상의 전환에 감탄하고 있는 동안 엄마가 비수같은 말을 추가하셨다.

"늬들은 살쪄서 잼 만들면 안되겠다."

커헉. 쉰이 넘은 나이에도 오오사이즈 입으면서 사사사이즈 입던 시절을 회상하는 우리 엄마는 잼을 먹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우리는 사과 앞에서 그저 고민이나 해야 하는 뚱뚱한 청춘이었다. 흑흑.


2.
엄마 이야기 하나 더.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여튼 엄마의 생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완경(배려없는 말로는 폐경)을 맞으면서 엄마의 심리는 누구도 종잡을 수 없는 상태였는데, 어느날 엄마가 나를 불러다 앉혀놓고는 진지하게 물으시는 거였다.

너 요새 그거 얼마나 자주 하니?

들은 이야기로는 중년여성은 생리가 멈추면 호르몬의 불균형에 더해서 여자로서 인생이 종결된 것 같은 압박감과 불안감을 느낀다고 하는데 울 엄마도 욕구불만 상태가 되어서 딸의 섹스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걸로 대리만족을 느끼는 상황이 오신 걸까 싶었다. 그래도 그렇지 여기가 미쿡이나 유럽도 아니고 남한인데 모녀가 앉아서 담백하게 섹스 이야기를 하는 건 좀 그렇잖나. 엄청 당황스러웠다.

이거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야 하나...

조금 과장 섞어서 육덕진 음담패설을 들려드릴까...

그러면 엄마가 질투하거나 우울해하지는 않으실까...

믿지는 않겠지만 처녀인 척 시치미 뗄까...

남자친구 없다고 둘러대면 어떨까...

오만가지 상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데, 엄마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결국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어째서인지 엄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심지어 엄마는 내 어깨를 토닥토닥 해주고 안아주는 시늉까지 하시더니 기쁜 표정으로 이러시는 거다.

거봐 니코틴 패치 효과 있지? 곧있으면 끊겠다!

그러니까 엄마가 말한 그거는 그게 아니라 담배였던 거다. 어쩐지 매우 죄송스러워져서. 그날밤엔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밤엔 딸딸이도 치지 않았다.


by 작나무 | 2008/08/27 18:03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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